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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핀 제비꽃

겨울을 앞두고 찾아온 봄의 기척

by 이른아침

제비꽃을 만났다. 길섶이나 산어귀에 드문드문 피어있었다. 봄이라면 흔히 만날 수 있는 꽃이라 무심히 지나쳤겠지만 오늘은 반가웠다. 몸을 낮춰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잎은 생각보다 풍성하고 싱싱했으며 꽃잎은 보랏빛으로 맑고 또렷했다. 작은 열매도 단단히 여물고 있었다. 입동이 지난 찬 바람 속에서 핀 제비꽃은 마치 봄인 듯했다.


겨울을 앞둔 지금, 나무는 잎을 떨구고 풀들은 뿌리에 모든 기운을 모으며 긴 쉼에 들어갔다. 그런 계절의 끝자락에서 만난 꽃핀 제비꽃이다. 뜻밖이라기보다 오래 기다려온 반가운 만남이다. 이맘때면 봄에 제비꽃이 많이 자랐던 자리를 떠올리며 그곳을 다시 찾아가곤 한다. 오늘처럼 들길을 걸을 땐 길 가장자리나 양지바른 산기슭을 더 유심히 살핀다. 그런 곳이라도 가을 제비꽃을 만나기는 쉽지 않기에 만날 때마다 반갑다.


계절은 겨울로 향해 가지만, 지금의 제비꽃은 그 흐름을 잠시 거슬렀다. 남은 기운과 짧은 햇살을 모아 다시 한번 피어났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몸으로 안간힘을 다해 꽃을 피웠다. 이렇게 가을에 꽃을 피우고 나면 뿌리에 남은 양분이 고갈되어 내년 봄에는 꽃을 피우지 못할지도 모른다. 된서리에 꽃잎은 얼어버릴 수 있고 열매를 맺었더라도 영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제비꽃은 피어났다.


봄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다시 한번 봄의 따뜻함을 떠올리게 하려는 듯이, 겨울을 견디고 나면 봄이 찾아온다는 것을 일깨워주려는 듯, 지나간 계절을 되새겨 보라는 듯, 늦가을 제비꽃이 피었다.


<늦가을에 만나는 제비꽃에서는 꽃과 열매와 꼬투리를 한꺼번에 보는 일이 흔하다.>
<이 글을 쓴 이후로도 12월에 꽃이 피었다. 햇살이 맑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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