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이름을 묻다 Ⅳ

이름 속에 동물을 담은 식물들

by 이른아침

식물의 이름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동물을 만난다. 바람에 살랑이는 이삭을 보는 순간 누구나 단번에 주인을 향해 반갑게 흔드는 강아지의 꼬리를 떠올리는 강아지풀부터, 이름 속에 담긴 사연을 알아야 비로소 그 정체가 또렷해지는 파리풀까지 그 유형도 다양하다.


이름을 매개로 동물과 식물이 이어진 관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어떤 식물 이름은 생태나 모양과 관련된 동물의 이름을 그대로 빌려 오는가 하면, 어떤 경우엔 동물 신체의 특정 부위를 닮아 가져온 이름도 있다. 심지어는 동물의 배설물에서 비롯된 해학적인 이름까지 다채롭다. 식물 이름 속에 깃든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씩 살펴보자.


식물의 생태 등을 동물과 연결한 경우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에 꽃을 피우는 ‘제비꽃’이나 닭장 주변에서 흔히 자라는 ‘닭의장풀’은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본 뒤에야 얻어진 이름이다. 이른 봄에 솜털이 뽀얗게 난 잎에서 노루의 귀를 발견한 ‘노루귀’는 새순이 돋는 순간을 놓치지 않은 관찰의 산물이다. 잎 가장자리에 돋은 가시에서 호랑이 발톱을 읽어낸 ‘호랑가시나무’와 커다란 잎에서 펼쳐진 박쥐 날개를 떠올린 ‘박쥐나무’에서는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가시털이 듬성듬성 한 줄기로 미꾸라지를 잡는 데 썼다는 ‘미꾸리낚시’처럼 해당 동물과 관련된 쓰임새에 때문에 지어진 이름도 있다. ‘쐐기풀’은 잎이나 줄기에 난 털에 피부가 닿으면 쐐기 애벌레에 스친 것처럼 따갑고 붉게 부어올라 붙여졌다. 그리고 열매를 해당 동물이 즐겨 먹어 이름 붙여진 ‘까치밥나무’, ‘까마귀밥나무’, ‘꿩의 밥’이 있다. 올챙이가 먹는 ‘개구리밥’이나 고양이가 배탈이 났을 때 찾아 먹는다는 ‘괭이밥’ 역시 먹이를 매개로 한 이름이다. 이들은 식물과 동물의 먹고 먹히는 관계가 이름에 녹아든 사례다.


동물의 신체 일부(꼬리, 발톱, 발)를 빌려 온 경우

식물의 어느 한구석이 동물의 꼬리를 닮으면 이름 앞이나 뒤에 꼬리가 붙는다. ‘꼬리진달래’는 수술이 꼬리처럼 길게 뻗어 나왔고, ‘꼬리풀’과 ‘범꼬리’, ‘쥐꼬리망초’의 꽃차례는 작은 꽃들이 줄기를 따라 길게 모여 핀 모습이 꼬리를 닮았다. 반면에 ‘거북꼬리’는 잎끝이 길게 뻗는 모습을 거북이의 꼬리에 비유했고, ‘다람쥐꼬리’는 줄기에 비늘 같은 잔잎이 다닥다닥 붙은 모양이 영락없이 꼬리 같다. 길게 뻗은 깃꼴 모양의 잎을 전설 속 봉황의 꼬리에 비유한 ‘봉의꼬리’도 있다.


다음으로는 발톱이다. 꽃이나 잎, 가시 등에서 발톱을 닮은 형상이 발견되면 이름에도 그것을 가져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매발톱’이다. 꽃잎 뒤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꿀주머니의 구부러진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낚아채려는 매의 발톱을 그대로 빼닮기 때문이다. ‘매발톱나무’는 줄기를 따라 1~3cm에 달하는 날카로운 가시가 세 개씩 모여나는데 그 기세가 매 발톱에 뒤지지 않는다. ‘개구리발톱’은 의외다. 실제로 개구리는 발톱이 없는데도 비유했기 때문이다. 이 식물의 잎에서 개구리의 물갈퀴 달린 발을 떠올리며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잎이 노루의 발 또는 발자국을 닮은 ‘노루발’과 지네의 발처럼 생긴 잎을 가진 ‘지네발란’은 잎을 발에 비유했다. ‘낙지다리’는 곡선으로 휜 꽃줄기와 이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모여 핀 꽃들이 영락없이 낙지의 다리와 흡사하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정도로 닮아있다. 줄기가 가늘고 길어 꿩의 다리 같은 ‘꿩의다리’, 줄기의 마디가 부풀어 오른 모양을 소의 무릎에 빗댄 ‘쇠무릎’은 모두 동물 다리의 생김새에 비유했다.


동물의 배설물에 비유한 경우

이번에는 식물의 향기나 열매 모양을 동물의 똥이나 오줌에 빗댄 이름들을 살펴보자. 가을에 까맣고 동그랗게 익은 열매가 쥐의 똥을 그대로 닮아 붙여진 ‘쥐똥나무’나 잎겨드랑이에 붙은 살눈을 말똥에 비유한 ‘말똥비름’이 있다. 줄기나 잎을 비비면 개똥 같은 냄새를 풍기는 ‘개똥쑥’,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유액을 방아깨비가 위험에 처했을 때 싸는 똥에 비유한 ‘방가지똥’은 똥의 모양과 냄새를 포착하여 이름에 데려왔다.


노루오줌, 여우오줌, 쥐오줌풀, 계요등, 말오줌나무 등은 모두 식물 잎이나 뿌리 등 식물체에서 나는 향을 오줌 냄새에 비유한 것들이다. 우리에게도 역하게 느껴지고 초식동물이 싫어할 만한 냄새를 풍겨서 가까이 오지 않게 하여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동물 이름을 빌려 온 식물의 세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족제비싸리, 까치박달, 여우구슬, 여우주머니, 여우콩, 괭이눈, 돼지풀, 병아리풀 같은 포유동물은 여전히 많다. 개미자리, 땅빈대, 벼룩나물, 나비나물 같은 곤충은 물론 새우나무, 조개풀처럼 어패류도 있고 파충류인 뱀을 비유한 뱀딸기와 배암차즈기도 있다. 용머리와 기린초처럼 상상 속의 영물까지도 우리 곁으로 데리고 왔다.


마지막으로 파리풀의 유래를 살펴보자. 이 식물 어디를 보아도 파리를 닮은 구석이 없다. 생태 역시 파리와 연관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이름이 붙은 건 쓸모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파리풀의 뿌리를 찧어 짜낸 즙을 밥에 묻혀 파리를 잡는 데 사용했다. 실제로 이 추출물은 곤충에게 독성이 있어 천연 살충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식물 이름에 동물을 가져다 쓴 건, 이름을 쉽게 설명하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긴산꼬리풀> <범꼬리> <봉의꼬리>
<다람쥐꼬리> <호랑가시나무> <금괭이눈>
<노루발> <지네발란> <낙지다리>
<박쥐나무> <쥐똥나무> <여우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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