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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Feb 19. 2024

함께 기다리는 봄

큰개불알풀은 겨울에도 꽃을 피며 기다린다

겨울에는 꽃을 보기 힘들다. 식물원에서 자라는 열대식물이 아닌 이상 자생식물은 들과 산 같은 야생에서는 꽃을 피우기 어렵다. 그래도 찾으면 볼 수 있다. 큰개불알풀은 한겨울에도 야생에서 꽃을 피운다.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남쪽을 향한 양지바른 언덕이나 비탈진 돌 틈에서 볼 수 있다. 햇볕이 잘 들고 찬 북풍을 막아주는 곳이라 겨울을 견디면서 어쩌다 꽃까지 피운다. 한겨울에 큰개불알풀 꽃이 보고 싶으면 가는 곳이 있다. 절이다. 절은 햇볕이 잘 들고 경사진 곳에 자리하기에 풀이 겨울을 지내기에 맞춤한 장소이다. 30여분을 운전해야 닿을 수 있는 거리이고 기대와 달리 꽃이 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꺼이 나선다. 작은 꽃이라도 보아야 겨울을 견딜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큰개불알풀은 한두해살이를 한다. 봄이 아닌 가을에 싹을 틔우면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나야한다. 줄기는 땅에 붙이고 잎과 줄기에 짧은 털이 듬성듬성 난다. 땅에 깊게 내린 뿌리도 추위를 견디는 힘이 된다. 큰개불알풀이 겨울을 나는 생존전략이다.

     

봄에는 크고 화려한 꽃이 많아 개불알풀 꽃이 눈에 지 않으나 겨울에 피면 작지만 푸른 빛의 꽃이 도드라져 잘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여느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 4개로 갈라진 꽃잎은 색깔이 진하고 옅어지기가 오묘한데 더 짙은 꿀안내선과 조화롭다. 마침 수술에서 하얀 꽃밥이 터져있으면 눈부시도록 고와 무릎과 허리를 굽히고 들여다볼 수밖에 없고 곤충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작고 가벼운 벌이라도 꽃에 앉으면 가느다란 꽃줄기가 휘청이 벌은 겨우 매달리는 형국이 된다. 그러면 벌은 떨어지지 않으려 꽃을 붙잡게 되고 그 순간 꽃가루가 떨어져 벌에 묻는다. 벌은 다른 꽃에 또 매달린다.

      

큰개불알풀 꽃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시든다. 여러 날 피면서 곤충을 기다리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는다. 몇 날 계속 피어있으려면 꽃잎도 견고하고 밤 추위도 견뎌야 하므로 그만큼 영양분이 필요하다. 대신 그 양분으로 많은 꽃을 피우는 전략을 택했다.


거기에 더해 꽃 피는 시간이 짧아 곤충을 만나지 못한 경우도 대비한다. 꽃잎이 시들면서 수술을 감싸 안으며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스스로 묻히는 제꽃가루받이를 한다. 그러니 곤충이 없는 겨울에 피더라도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다. 이중삼중으로 대비책을 세워놓는다.

    

이런 여러 생존전략 때문인지, 큰개불알풀은 귀화식물이면서도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집 주변이나 길가와 들에서도 삶터를 탓하지 않고 어디서든 잘 자라 흔히 만날 수 있다.

      

큰개불알풀과 이름을 같이하는 개불알풀, 눈개불알풀, 선개불알풀, 좀개불알풀이 있다. 모두 외국에서 건너와 우리 땅에 적응하여 야생하는 귀화식물이다. 개불알풀이 개체수도 많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크기도 커서 그중에서 가장 잘 보인다. 그래도 관심이 있어야 보인다.

      

큰개불알풀의 이름은 열매 생김새가 개의 불알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부르고 듣기 민망하다거나 일본에서 쓰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이유를 들어 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실제로 봄까치꽃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름을 둘러싼 이견이 논쟁거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열매 모양이 닮은 건 사실이고 오래전부터 널리 불러온 이름이며 해학이 있어 정겨운 건 분명하다.

     

이름이 뭐든 아랑곳하지 않고 큰개불알풀은 바람 부는 들판에서 햇볕과 땅에 기대어 추위를 견디며 꽃까지 피우고 있다. 꽃을 피워 봄을 기다리는 내게도 겨울을 보내는 힘을 다. 함께 기다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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