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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Feb 03. 2024

겨울을 견뎌내 봄

봄은 늘 온다

겨울은 시금치와 봄동이 맛있는 시기다.

겨울에 노지에서 자란 시금치는 단맛이 강해 인기 있으며 재배지역에 따라 섬초, 포항초, 남해초 같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봄나물인 냉이도 늦가을에 싹이 돋아 월동 중인 지금이 향도 진하고 더 달고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이유는 추위에 얼지 않기 위해 잎에 당분을 많이 저장하기 때문이다. 당분이 많을수록 어는점이 내려가 추위에 잎이 얼지 않고 겨울을 견디면 봄을 맞이할 수 있다. 겨울을 견디는 채소를 우리는 맛으로 즐긴다니 좀 모질다는 생각도 든다.

    

배추는 겉잎이 속잎을 차례로 둥글게 싸면서 보통 타원형을 이룬다. 배추를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심어 속이 차기 전에 겨울이 오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잎을 땅에 바짝 붙여 펼친다. 이를 봄동이라 한다. 봄동은 원래 겨울 끝자락인 설 무렵부터 먹는 채소인데, 최근에는 주로 불결구형 배추 품종을 심어 겨울 초입부터 이른 시기에 수확한다. 늦은 봄이 제철인 딸기가 하우스 재배로 겨울에 가장 많이 출하되는 실태와 비슷하다.

    

봄동 이외에도 시금치, 냉이도 잎을 땅에 최대한 가까이 붙이고 넓게 퍼져있다. 가을에 심어 봄에 수확하는 쪽파도 겨울이 오기 전에는 잎을 곧추세우고 있다가 겨울 동안은 땅에 닿을 정도는 아니나 잎을 한껏 펼치다가 봄이 오면 다시 하늘을 향해 곧게 선다.

  

겨울을 나는 풀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잎을 넓게 펼치는 전략을 쓴다. 뿌리에서 바로 잎을 내고 방사형으로 펼치는 모양이 마치 장미꽃 같아 로제트(rosette)라 한다. 로제트는 더위나 건조 등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되기도 하나 겨울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왼쪽부터 달맞이꽃, 배암차즈기(곰보배추), 지칭개, 개망초의 로제트>


로제트로 월동하면 여러 이점이 있다.  

    

먼저, 잎이 서로 겹치지 않고 펼쳐있어 햇볕을 고루 받아 광합성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활발한 광합성으로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당분을 얻는다. 또한 땅 위에 붙어 있어 상대적으로 따뜻한 땅의 열을 이용할 수 있고 찬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니 로제트는 햇빛을 잘 받으면서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일석이조 전략이다.

     

풀들이 겨울을 보내는 방법은 각기 다르나 대부분 씨앗이나 뿌리 형태로 땅속에서 따뜻하고 안전하게 휴면하면서 보낸다. 그러다 봄이 오면 씨앗이나 뿌리에서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로제트 식물은 이미 잎이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이므로 누구보다 먼저 햇빛을 차지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생존에 가장 필요한 햇볕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다른 식물은 피하고 싶었던 겨울에 로제트 식물이 일부러 잎을 내어 월동하는 이유다.

     

로제트 식물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민들레나 질경이처럼 겨울뿐 아니라 생존 기간 내내 줄기 없이 뿌리에서 잎 내고(뿌리잎, 根生葉)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우는 부류가 있다. 다른 하나는 달맞이꽃, 개망초와 같이 생애 초기나 겨울 같은 특정 시기에만 로제트 형태로 살다가 뿌리에서 줄기를 내고 줄기에서 잎(줄기잎, 莖葉)과 꽃을 피우는 부류가 있다.

     

귀화식물이 적응하고 번성하려면 여러 경쟁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으나 자기만의 생존방식이 있다. 달맞이꽃, 개망초, 서양민들레, 서양금혼초, 콩다닥냉이는 로제트식물이다.

    

추위는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고 혹독하다. 풀과 나무는 한번 뿌리를 내리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다. 어떤 환경변화도 서 있는 자리에서 견뎌내야 한다. 추위도 마찬가지다. 견디다 보면 늘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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