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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Jan 25. 2024

봄을 준비하는 봄

겨울눈

겨울 한가운데 와있다. 바람은 거칠고 추위는 때로 매섭다. 어느 때보다 햇살이 반갑다. 길어진 오후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와 발등으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면, 작은 움직임에도 잠잠하게 가라앉아 있던 솜털 같은 먼지가 떠오르며 들뜬다. 그리운 사람이 찾아온 듯 나도 들썩인다.

     

햇살에 이끌려 밖으로 나온다. 햇볕을 받은 나무를 둘러보러 가까이 공원으로 간다. 다른 나무와 달리 벌써 목련은 기운차다. 겨울눈이 긴 햇살을 비스듬히 받아 반짝이면 생명력이 느껴진다. 두툼하고 기다란 겨울눈이 붓을 닮아 목련은 목필(木筆)이라고도 불린다. 사철나무, 마가목 가지 끝에 돋아난 겨울눈에도 햇살이 밝다. 아직은 추위에 잠들어 충분히 크지 않다.

      

겨울눈(winter bud, 冬芽)은 다가올 봄에 필 잎이나 꽃을 키우고 보호하는 기관이다. 겨울눈을 잉태하는 것은 생존과 번식의 첫걸음으로 나무에게 미래가 달린 일이다. 이름이 겨울눈이라 겨울에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광합성을 활발히 하여 생명력이 왕성한 봄부터 이미 기 시작한다. 봄에 다음 봄을 준비하는 셈이다.

     

겨울눈은 여름과 가을에는 무성한 잎에 가리고 강렬한 꽃에 못 미쳐 잘 보이지 않다가 잎과 꽃이 떨어진 겨울에 눈에 띈다. 얼마 전부터 겨울눈을 관찰하고 있다. 무슨 나무인지 이름을 알기 위해서다. 풀이나 나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먼저 해당 식물의 이름이 궁금해진다. 이름을 알아야 그 식물의 식생을 알아가고 가까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이나 여름에는 초보자라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면 잎과 꽃으로 어렵지 않게 구분해 낼 수 있고, 가을에는 열매와 단풍으로 가려내어 이름을 알 수 있다. 겨울철에는 겨울눈, 나무껍질, 잎이 떨어진 가지에 생긴 흔적(잎자국), 전체적인 나무 모양(수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나무마다 모양과 특징이 있기에 구별하는 식별 요소가 된다.

    

겨울눈 안쪽에는 여러 장의 꽃과 잎이 겹겹이 포개져 있고 바깥쪽은 눈비늘(아린, 芽鱗)이 빈틈없이 싸고 있다. 눈비늘은 추위와 습기, 곤충 같은 극한 환경과 알 수 없는 위협으로부터 눈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매우 질기다. 비늘 안팎에는 솜털이 나거나 나무진으로 덮여있다. 나무마다 눈비늘의 개수, 모양, 재질, 색깔 등이 다양하므로 이를 통해 구분할 수 있다.

     

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칠엽수의 겨울눈은 겉에 나무진이 묻어있어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린 데다 커서 눈에 잘 들어온다. 고로쇠나무의 겨울눈은 검은빛이 돌고 물푸레나무 겨울눈은 왕관 모양으로 다른 나무와 구별된다.

     

겨울눈은 대부분 눈비늘로 싸여있는데, 눈비늘 없이 노출된 눈으로 겨울을 이겨내기도 한다. 이런 눈을 맨눈(裸芽)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중요한 겨울눈을 무작정 노출하지 않고 황갈색 털로 덮여있다. 쪽동백나무, 작살나무, 때죽나무, 붉나무, 개옻나무 등이 이렇게 맨눈으로 겨울을 지낸다.


<위부터 사철나무, 마가목, 매화나무, 산수유, 은행나무, 벚나무의 겨울눈>



장차 봄에 무엇이 되느냐에 따라, 꽃이 될 꽃눈, 잎이 되는 잎눈, 꽃과 잎이 될 눈이 함께 있는 섞인눈이 있다. 꽃눈은 일반적으로 둥글고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인 매화나무, 진달래, 산수유에서 잘 관찰된다. 잎눈은 광합성으로 양분을 만드는 잎이 되므로 영양눈(vegetative bud)이라고도 하며 보통 꽃눈보다 가늘고 길다.


섞인눈은 모양만으로 구별이 어렵고 어느 정도 싹이 나오는 모습을 보아야 알 수 있다. 잎, 꽃, 가지까지 함께 나오기 때문에 다른 눈보다 조금 크다. 감나무, 은행나무, 딱총나무에서 섞인눈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눈이 달리는 위치에 따라 끝눈, 곁눈, 겨드랑이눈 등으로 구분한다.


겨울철에 나무를 관찰하는 재미가 있고 구별하기도 쉽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분명 전문가다. 아직 나는 겨울에 나무를 보고 가려내는 눈을 갖지 못했다. 겨울에 나무를 구분하려면 세심히 살피는 습관과 공부가 쌓여야 하며 알더라도 끊임없이 익히는 꾸준함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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