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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Nov 01. 2024

밭에 핀 꽃, 연재를 마치며

식물이 살아가는 순간을 함께 해서 행복했다

이 연재를 여기서 마무리한다. 글을 시작할 때는, 텃밭에서 직접 기른 작물을 대상으로 열개 남짓 생각했으나 쓸수록 생각이 꼬리를 물어 글이 더 많아졌다. 옆 밭에서 자라는 땅콩, 도라지, 호박은 꽃이 남다르고 추억이 되살아나서 빼놓을 수 없었고, 고구마꽃은 보려고 애써도 피지 않아 10년 전에 딱 한 번 본 기억을 되살려 보았으며, 메밀꽃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없어 멀리 찾아갈 정도로 마음을 끌었다.

     

연재 글 마무리를 앞두고 밭에 왔다. 별다른 보살핌 없이도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꽃이 피도록 터전이 되어준 고마운 밭이다. 5평 좁은 땅에 생각보다 많은 작물이 자랐 꽃을 볼 수 없는 작물도 있었다. 토란, 생강, 마늘은 우리나라 재배 환경에서는 꽃이 거의 피지 않아  수 없었고 갓, 무, 배추는 월동해야 꽃이 피는데 김장하기 위해 뽑기 때문에 꽃을 보지 못했다. 이처럼 내 텃밭에서 재배하면서도 꽃을 보지 못해 글로 옮기지 못한 아쉬움도 크다.

     

내가 밭에 한 거라곤 봄에 흙을 깊게 파서 뒤집어 고랑과 이랑을 만들고 발효 퇴비 2포대를 뿌린 것이 전부다. 그래도 밭은 땅심 바닥까지 가진 모두를 내어 작물들에 강인한 생명력을 주었다. 밭은 봄에는 싱그러웠고, 여름엔 활기찼고, 가을엔 풍성했다. 여전히 계절은 가을이지만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지나면서 오후 햇살에도 쌀쌀한 기운이 느껴져도 밭은 생기가 있다.


가을에도 배추, 무, 아욱, 상추, 쪽파가 텃밭에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배추는 속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무는 덩치를 키우고 있으며, 가을 잠깐 먹으려고 파종한 아욱과 상추는 봄에 비할 정도는 아니나 잎이 그득하다. 쪽파는 김치를 담으면 맛있을 한창 시기인데 거름이 부족하여 잎끝이 말랐지만 곧이어 닥칠 추위를 견뎌낼 힘을 뿌리와 잎에 모으는 중이다.


고추와 가지는 봄부터 지금껏 꽃을 피워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다. 그마저도 서리가 내리면 힘을 잃게 되고 더 이상 밭에서 꽃을 볼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더 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을 밭은 어설픈 친정보다 낫다>

서문에서도 말했듯이, 어느 봄날 문득 고추꽃이 눈에 들어왔고, 꽃이 산과 들뿐 아니라 밭에도 꽃이 피고 지고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꽃에 대한 내 관심은 들꽃부터 시작하여 산에서 귀하게 피는 꽃으로 갔다가 도시의 빈터나 도로변 아무 곳에서나 자라는 풀로 이어졌다. 이제 밭에서 피는 꽃으로 옮겨왔다. 이 꽃들을 더 알고 싶었고 글로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는 더 자주 들락거리고 더 오래 머물면서 더 자세히 살피게 되었으며 그만큼 더 많이 보았다.


첫 번째 글쓰기 대상은 완두였다. 이른 봄에 꽃이 피는 데다 밥에 자주 넣어 먹는 콩이고 꽃이 제법 예뻤던 이유도 있었다. 나비모양꽃으로만 알고 있던 완두꽃을 하나하나 떼어서 관찰하고서야 콩과 식물의 꽃 형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고 제꽃가루받이가 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도 체득했다.


시금치는 여러 차례 파종해서 길렀어도 제대로 키운 적이 없는데 올해도 흉작이었다. 이렇게 시금치 재배는 연이어 실패했어도 올해는 암꽃과 수꽃이 달리 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상추의 한살이가 어떠한지,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이 어느 부위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지, 호박의 덩굴손이 팽팽해지는 원리가 무엇인지, 땅콩이 땅속에 열매를 맺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도라지꽃이 제꽃가루받이를 피하려고 어떤 전략을 세웠는지, 고구마꽃을 피우기 위해 연구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연재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을 깨우쳤다.


식물은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고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 다양한 생존전략을 동원한다. 평소 관심거리였기에 한 식물에 전략 하나쯤은 언급하고 싶었다. 관련 지식이 깊지 않아 책에서 찾아 익혔어도 한계가 있었고, 동일한 과에 속한 식물은 생태가 비슷하여 생존전략도 유사할 수밖에 없어서 내용이 중복되어 아쉽기도 하다. 전문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옳지 않은 정보를 담았으리라는 염려도 있으며, 기꺼이 의견을 받아 수정 보완해야 할 미완성의 부끄러운 글이기도 하다.


꽃을 관찰하다 보면 으레 곤충이 찾아온다. 꽃송이가 탐스럽고 하늘을 향해 넓게 펴진 왜당귀꽃은 내려앉기 편하고 쉬기 편한 곳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곤충까지 찾아와 오래 머물렀다. 옥수수 수꽃에는 이른 아침부터 몰려온 많은 벌이 내는 왱왱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럽다. 고추에는 노린재가 꽃이 아닌 줄기에 무더기로 밀집하여 살아갔고, 들깨꽃에는 꿀도 많고 향기도 진해서 다양한 곤충이 몰려왔고 이들을 노린 거미와 사마귀까지 수선스럽게 들끓었고 한편 은밀했다. 곤충들까지 이야기에 담을 수 있어서 글이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고맙게도 연재 글에도 많은 분이 찾아와 ‘좋아요’와 구독과 댓글로 응원하며 내게 글 쓰는 힘을 주었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식물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라도 더 보여 주고 싶었고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더 깊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이제 연재가 끝난다. 농사도 가을 끝자락에서 끝난다. 그러나 밭에 남겨질 부추와 쪽파에게는 겨울이 남아 있다. 잘 견뎌내길 바란다.

<겨울 끝에는 늘 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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