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보랏빛 유혹에 빠진다. 보라색에 사로잡혀 해마다 가지를 심어 기른다. 가지의 상징은 보라다. 꽃도 열매도 보라색이고 잎과 줄기도 어릴 때는 진보라다. 잎은 돋아나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보랏빛을 유지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광합성을 위해 초록으로 서서히 변해 가고 잎맥의 보랏빛은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열매와 꽃받침은 검정에 가깝고 꽃은 얼핏 붉은빛을 띠기도 한다. 보는 방향에 따라, 날씨에 따라, 햇살의 방향에 따라 다르고 내 기분에 따라서도 보랏빛은 다르다. 아침엔 보라 꽃이 두드러지고 낮엔 잎의 보라가 반짝이고 석양엔 열매가 짙게 빛나기도 한다.가지의 보라는 획일적이지 않아 더 끌린다.
<꽃, 열매, 잎, 줄기의 조금씩 다른 보랏빛>
올해도 보라를 즐기기 위해 시장에서 가지 모종을 고른다. 가지는 초반 성장이 더디므로 파종보다 모종을 사서 옮겨 심는 것이 좋다. 모종은 줄기와 잎이 진한 보라색인 것이 건강하고 꽃이 피어있으면 더 좋다. 고추처럼 추위에 약해 냉해를 입을 수 있으니 조금 늦게 심는다. 그래도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상당기간 수확할 수 있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모종을 옮겨 심고 한 달쯤 지나면 옮겨진 땅에 적응한다. 자리를 잡고 새로운 줄기를 내고 꽃을 피울 때쯤 지지대를 박고 줄기를 묶어 준다. 줄기도 많이 뻗고 열매도 많이 달리므로 바람이 거세지 않아도 쓰러지기 십상이다. 여름이 되면 지지대를 두세 개를 더해 묶어 주어야 할 정도로 왕성하게 자란다. 이렇게 세력이 강하고 자기 그림자를 싫어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햇볕을 좋아하므로 가지치기를 적절히 하여 줄기가 빽빽하지 않게 해 준다. 그래야 키도 크고 열매도 더 많이 열린다.
<보라꽃 유혹에 빠진 네발나비(가을형)>
꽃은 가장 기본적으로 갈래꽃과 통꽃으로 구분할 수 있다. 2장 이상의 꽃잎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 갈래꽃, 서로 붙어 한 장으로 이어지면 통꽃이다. 가지꽃은 통꽃이며 밑동에서 바깥 테두리로 갈수록 넓게 퍼진다. 같은 가지과 집안 식물인 고추꽃은 가장자리가 깊게 갈라져 있으나 가지꽃은 조금 갈라져 있는 점에서 다소 다르다.
가지꽃은 꽃잎이 수평으로 넓게 퍼지면서 굵게 굴곡이 지며, 굽이마다 보랏빛의 짙음과 옅음에 차이가 난다. 그래서 다른 꽃에 비해 근육이 아름다운 남성미가 느껴진다. 꽃은 땅을 향해 아래로 피는데 위로 올려다보면 하늘이 배경이 되어 색의 농담(濃淡)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꽃잎은 시들 때까지 며칠 동안 저녁에도 오므리지 않고 펼쳐있다. 기어이 꽃가루받이를 하겠다는 끈기가 느껴진다.
가지를 소개하면서 꽃받침을 언급하고 싶었다. 역할에 비해 그동안 꽃받침에 대해 무관심했다. 일반적으로 꽃을 볼 때, 꽃잎을 가장 눈여겨보고 다음으로 암술과 수술을 본다. 꽃받침은 대부분 꽃잎 뒤에 위치하고 색도 초록이라 잘 보이지 않아 존재를 잊곤 하지만 꽃잎, 암술, 수술과 함께 꽃을 이루는 중요한 기관이다. 이들 네 기관이 다 있으면 ‘갖춘꽃’,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안갖춘꽃’으로 구분한다. 안갖춘꽃이라면 부족하거나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여길 수 있으나 이는 단지 학술적 구별일 뿐 꽃의 역할이나 완성도에 부족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꽃받침은 꽃의 맨 바깥쪽에 위치하면서 꽃봉오리를 감싸고 꽃과 씨방을 보호는 역할을 한다. 식물에 따라 화려하게 변신하여 곤충을 유인하는 꽃잎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고, 꽃이 진 이후에도 남아 열매가 성장할 때까지 보호하기도 한다. 가지의 꽃받침은 꽃봉오리 때부터 꽃이 피고 열매가 익기까지 모양과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며 제 역할을 오랫동안 해낸다. 가지과 식물인 고추, 토마토도 가지와 마찬가지로 꽃받침이 끝까지 남아 열매 뒤에 붙어 있다.
가지는 가을에 더 맛있다. 대부분 열매채소는 처음으로 수확하는 맏물이 연하고 맛도 있다. 그런데 가지는 여름에는 강한 햇볕을 많이 받아 껍질과 과육이 두껍고 수분이 많은데, 가을에는 볕이 약해지면서 더 연하고 수분이 적어 단맛도 더해져서 맛있다. 그래도 어느 계절이든 익으면 육질이 단단하고 씨앗도 생기므로 미숙할 때 수확해야 좋다. 그리고 가지는 30° 이상 기온이 오르는 한여름에는 잘 열리지 않고 더위가 수그러드는 가을에 많이 열리니 이래저래 가지의 제철은 가을이다.
텃밭에 가지 2그루가 자라고 있다. 요즘 수확량이 많아 다 먹지 못하고 냉장고에 두는데 며칠 만에 쭈그러지고 겉뿐 아니라 속살도 색이 변한다. 신문지에 싸고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보관하면 변색도 막고 수분 손실도 줄어 보관기간을 늘릴수 있다. 그래도 남으면 세로로 잘라 말린다. 가지는 속살의 물컹거림과 껍질의 질긴 식감 때문에 호불호가 엇갈리는데, 굽거나 튀기면 수분이 적어지고 겉은 바삭해지고 속은 쫄깃해져서 씹는 맛이 생긴다. 무르익어 가는 가을, 가지의 맛과 유혹에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