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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Oct 04. 2024

고구마꽃, 100년 만에 볼 수 있는 귀한 꽃

피기만 기다릴 순 없다

고구마꽃을 보고 싶어 고구마 순을 옮겨 심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오래전에 산책하다 고구마꽃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 파일의 날짜를 보니 2015년 6월 27일 오전 9시 46분이다. 그 후로 고구마밭을 지날 때면 유심히 살펴보곤 했으나 10년 동안 다시 보지 못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고구마꽃이 피면 언론에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다. 지난 기사를 검색해 보니 보도 내용은 주로 2가지였다. 하나는, 고구마꽃은 춘원 이광수가 회고록에서 '100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귀한 꽃'이라고 언급할 만큼 드물고, 꽃이 피면 좋은 일이 있을 징조이며 꽃말도 이에 맞게 행운이라는 내용이다. 둘째는, 고구마는 원산지인 중남미 아열대 식물의 특성이 남아있어 온대지역인 우리나라에서는 고온 현상이 지속되어야 꽃이 피기 때문에 기후 변화를 염려하는 내용이 함께 실렸다. 그러니 고구마꽃은 행운과 염려의 상반된 뉴스거리였다.

백 년에 한 번 본다는 고구마꽃… 꽃말은 '행운' | 연합뉴스 (yna.co.kr) 2015.7.22.


올해는 추석이 지났는데도 30°가 넘는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되었다. 고구마꽃이 필 수 있으리라는 바람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더위도 견딜 만했고 더위가 더 지속되어도 괜찮다는 생각도 은근히 가졌다. 밭에 갈 때마다 기대감으로 꽃봉오리가 있는지 꽃이 피는지 살폈다. 옆 텃밭에서 자라는 고구마 덩굴도 기웃거리고 이웃 텃밭지기에게 고구마꽃이 피었는지를 묻곤 했다. 그러나 기다림과 달리 꽃소식은 지금껏 없다. 10년 전 꽃을 만나던 감동도 기억도 희미해지고 사진만 남았을 뿐이니 다시 보고픈 마음은 간절한데 말이다.

     

고구마꽃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고구마를 육종 하는 연구자들이다. 신품종 개발이나 기존 품종의 개량은 원하는 형질을 가진 개체끼리 교잡을 통한 육종으로 이루어진다. 교잡육종은 선택된 대상 품종 사이에 인공수분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먼저 많은 꽃이 피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조건 상 고구마꽃이 잘 피지 않으므로 인위적으로 개화를 유도해야 한다.

      

개화 유도는 여러 방법이 있으나 단일처리와 접목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고구마는 낮 길이가 일정 시간보다 짧아야(실제로는 밤의 길이가 개화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밤 시간이 길어야) 개화가 촉진되는 단일(短日)식물인데, 농진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8~10시간의 단일처리가 가장 효과적이단다. 접목은 나팔꽃 줄기(대목)에 고구마의 순을 접목하면 대부분 꽃이 핀다. 나팔꽃은 고구마와 달리 땅속에 커다란 덩이뿌리를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뿌리로 갈 탄수화물이 줄기에 남아 개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단다.

  

또 다른 방법으로, 고구마 뿌리 근처의 줄기 밑동에 칼로 상처를 내거나 줄기 껍질을 돌려 벗겨(환상박피) 낸다. 그러면 나팔꽃에 접목한 효과처럼 땅속뿌리로 가는 양분 전달이 억제되어 개화에 도움이 된다. 고구마 순을 초가을에 포트에 심고 물을 제한하면서 월동시키면 꽃이 피는 방법도 제시되었다. 이는 월동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단일처리 효과가 일어난다고 한다.(『식용작물학-전작』 383쪽 참고)


올해는 이미 수확기에 접어들어 자연 상태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할 수 없으며, 단일처리로 개화를 유도한다고 해도 효과가 나타나려면 60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므로 이미 늦었다. 내년에는 나름대로 개화 유도를 하며 연구자 흉내를 내보아야겠다. 여러 방법 중에 절상을 내거나 환상박피는 비전문가라도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된다. 그런데 고구마꽃이 피었다는 것은 그만큼 뿌리로 갈 영양분이 꽃으로 간 결과이니 고구마 덩이뿌리가 커다랗게 크는 건 포기해야 한다. 그래도 괜찮다. 올해는 꽃대신 큰 고구마를 얻었으니 내년에는 꽃을 보고 싶다.

<고구마와 같은 메꽃과 식물 꽃 : 메꽃(위), 나팔꽃(아래)>

고구마는 메꽃과 집안 식물이다. 그래서 나팔꽃과 메꽃처럼 덩굴성이고,  모양도 같고 이른 아침에 개화하여 오후에 지는 습성도 비슷하다. 꽃은 통꽃으로 나팔 모양이며 안쪽은 보라색이다가 위로 갈수록 엷어져서 가장자리 부분 흰색에 가깝다. 나팔꽃과 메꽃 안쪽 아랫부분이 흰색에서 가장자리로 갈수록 분홍 또는 빨강으로 진해지는 모습에서 차이가 있다. 암술 1개를 가운데 두고 수술 5개가 빙 둘러싼 형태다.

     

또한 고구마는 메꽃이나 나팔꽃처럼 덩굴손으로 다른 식물이나 물체를 타고 오르지 않고 땅 위를 포복하듯이 긴다. 땅속에 커다란 덩이뿌리를 형성하는 점도 다르다. 고구마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덩이뿌리를 더 크게 키워 사람 곁에 머물렀다면, 나팔꽃과 메꽃 오랜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야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개와 늑대처럼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도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지 않았고 뒤돌아보며 후회하지도 다른 삶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스스로 내일을 만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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