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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Dec 28. 2023

빈 둥지가 말하길

비워야 날 수 있다고


새의 삶은 무소유에 가깝다.      


둥지는 잠시 머무를 거처일 뿐이다.

번식기 이외에는 둥지에서 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둥지에서 알을 낳아 품고 새끼를 키우고 나면 떠난다. 고쳐서 다시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새로 둥지를 짓는다. 둥지에 대한 미련이 없다. 스스로 둥지를 만들지 않고 빼앗는 습성이 있는 파랑새도 잠시 새끼를 키울 뿐 내내 자기 것으로 하지 않는다.

     

임시 거처이지만 진심이다.

종마다 습성이나 상황에 따라 둥지터로 선호하는 곳이 있다. 공통적인 것은 가장 안전하고 먹이가 많은 곳이다. 둥지의 재료도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둥지를 만드는 까치를 지켜보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최선을 다했더라도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버리고 떠날 줄도 안다.

철새는 번식지와 월동지를 찾아 수천 km를 이동한다. 지금 머무르는 곳이 익숙하더라도 일정한 시기가 오면 떠난다. 삶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떠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원래 겨울 철새인 흰뺨검둥오리나 민물가마우지가 여름이 되어도 떠나지 않고 머물게 되었고 이렇게 텃새화된 개체가 꾸준히 늘고 있는 현상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몸을 비워냈다.

날 때는 쉴 때보다 30배가량의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새는 비행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가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다. 무거운 턱과 이빨은 버리고 가벼운 부리만 있다. 대신 부리와 혀가 발달해 먹이를 처리하는데 특별한 기능을 발휘하고, 이빨이 없으니 주로 통째로 삼키며 강한 근육의 모래주머니에서 먹이를 으깨어 소화한다.

     

뼛속도 비웠다.

새는 뼈의 개수가 다른 동물에 비해 적으며 뼛속도 비워내어 가볍게 하고 뼈조직을 치밀하게 하여 단단하다. 이렇게 버리고 비워냈으니 날 수 있는 거다.

      

날기 전에 또 비운다.

산짐승이나 길짐승보다 날개 가진 동물은 관찰하기 어렵다. 새는 경계심도 많고 날아가는 속도도 빨라 나비나 벌보다 관찰이 더 어렵다. 새 중에서도 산이나 들에서 사는 새들은 쉼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물에 사는 오리류보다 관찰에 더 어려움이 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면 관찰하기 좋은 순간이다. 그러다 똥을 싸는 순간이 오면 관찰은 끝이다. 그다음은 날아가기 때문이다. 날기 전에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한 행동이다. 새는 장이 짧고 방광이 없어 묽은 똥을 싸니 비둘기가 앉아있는 나무 아래를 지난다면 조심해야 한다.

     

오늘 빈 둥지를 보았다.

지난봄 우거진 나뭇잎 속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느라 은밀하게 바빴을 둥지다. 겨울 햇살이 한가히 비치고 바람이 무심하게 지나고 있다. 둥지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비우라고 그래야 날 수 있다고 빈 둥지가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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