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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Sep 06. 2021

핀테크 기획 주니어가 느낀 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신입 연수가 끝나고 가고 싶은 부서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선택한다고 무조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당시 나는 고민하다가 핀테크를 할 수 있는 부서를 선택했고 운이 좋게 그대로 가게 되었다. 그때 내가 핀테크를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한참 핫했다.

이직할 때 좋은 분야라 들었다.

같은 부서를 선택한 경쟁자가 없었다.


그렇게 핀테크 분야에 와서 여태까지 일하고 있다. 온 지 2년 정도 되었을까.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느낀 점들은 분명 있다.


느낀 점은 그때그때 남겨야 입체적이니 감상이 따끈따끈할 때 글로 옮겨적으려 한다.



여긴 어디?


1. 시퀀스 다이어그램


회사에 들어오기 전 나는 앞단, 즉 화면 기획에 관심이 많았다. 사용자와의 직접적인 접점이다보니 피드백을 받기 쉬웠고 그만큼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핀테크 기획은 조금 달랐다. 물론 앞단 기획도 있지만 뒷단 기획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 처음엔 조금 무서웠다.


특히 시퀀스 다이어그램이라는 게 나올 때마다 거부감이 들었다. 각 객체(요소) 간 상호작용 순서를 정의한 도표인데 익숙하지 않다보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퀀스 다이어그램 예시

그래서 처음엔 눈에 잘 들어오는 앞단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먼저 보려했다. 결제 화면, 결제 내역 화면 등을 정리한 명세를 살펴봤다.


하지만 그런다고  문서가 이해될  없었다. 문서에서 중요한  버튼이 어디에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버튼이 눌린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중심적으로 봐야하는 건 뒷단 부분을 정의한 시퀀스 다이어그램이었다.


시퀀스 다이어그램.. 볼 때마다 어지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치 영어 지문을 해석하듯이 위에서부터 조금씩 끊어가면서 독해했다. 막대기 옆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시퀀스 다이어그램을 하나씩 해석하며 사용자에게 간편한 결제를 제공하기 위해 뒷단에서 참 많은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결제하기 버튼을 누르고 결제 완료 화면에 가기까지 약 1초 정도의 시간. 이 1초의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갔을까.


기존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내가 그동안 반쪽짜리 기획을 해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자에게 주목받는 멋진 앞단은 든든한 뒷단 기획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특히 핀테크 분야에선 더더욱!


이후 혁신적인 핀테크 서비스를 봤을 때 예전보다 한 가지 생각을 더 떠올리게 되었다.

토스 증권

와 어떻게 이런 멋진 UI를 만들었을까!

+

이걸 만들기 위해 뒷단에선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어떤 나라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는데 뒷단 기획의 언어는 시퀀스 다이어그램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문서에 시퀀스 다이어그램이 나타나면 움찔하긴 하지만 그래도 찬찬히 읽으며 뒷단 기획에 대한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



2. 돈이 오간다는 것의 무게


핀테크가 돈이 오가는 분야라는 건 부서 선택하기 전에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가서 일을 해보기 전까지는 그 무게감을 알지 못했다.


또 부서에 처음 왔을 땐 주니어한테 돈이 오가는 민감한 일을 시키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천진난만했다.


적응 기간이 끝나고 내게 아주 간단한 일이 주어졌는데 그것마저도 돈이 오가는 일이었다. 적은 돈이라 부담이 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내 돈이 아니었기에 긴장됐다.


부서에 들어오는 CS 사례를 봤을 때 금액이 아무리 적어도 일단 누군가의 잘못으로 자신에게 손실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한 사람이 많았다.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기에 작은 돈들이 모여 거금이 될 수도 있었다. 내 돈은 티끌모아 태산이 안되는데 다른 사람들의 돈은 모여서 그렇게 되는 게 신기했다.


어쨌든 그렇게 주로 작은 돈을 다루는 일을 하다가 언젠가 비교적 큰돈을 다뤄야 하는 일이 내게 맡겨졌다. 내가 몇 년을 벌어도 못 모을 돈을 다루는 일이었다.


내가 뭔가 일을 잘못하면 고객 혹은 회사가 금전적 손해를 본다는 사실이 걱정됐다. 물론 그전에 했던 일도 마찬가지였지만 손해의 스케일이 달랐다.


그래서 서비스를 기획할 때 받는 부담이 전보다 컸다. 빈틈없는 기획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머릿속으로 참 여러 케이스를 고려했던 것 같다.


또 돈과 금융 정보가 오가는 일이라 법무, 정보보호면에서도 챙길 게 참 많았다. 그런 부분을 제때 못 챙겼다가 한 번은 서비스를 전면 재수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추출/집계할 때 놓친 게 없나 더 꼼꼼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맞는 테이블에서 적절한 쿼리문으로 추출한 것일지 불안했다.


우당탕탕의 연속이었지만 선배들의 도움 덕분에 큰 문제없이 일을 마무리할 수는 있었다. 새삼 이런 일을 쭉 해오고 지금은 훨씬 큰 금액이 오가는 서비스를 담당하는 선배들이 더 멋있게 느껴졌다.


돈이 오간다는 것의 무게


사실 지금껏 살아오며 다른 사람의 돈을 다뤄본 적이 많지 않았다. 동아리나 그런 곳에서 총무 같은 것도 안 해봤으니까.


그래서 지금의 일이 낯설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경험을 통해 기획자로서의 성장은 많이 하는 것 같다. 기획하며 신경써야 할 제약 조건이 많기에 그만큼 훈련이 많이 된다.


마치 록리가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하는 것처럼..?


실제로 선배들도 핀테크 기획자를 하면 다른 곳에서 일할 때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라 말씀해주셨고 그분들의 커리어가 확실한 근거였다.

록리 모래주머니 훈련법

물론 내가 선배들처럼 멋진 핀테크 기획자가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이 좋은 기획자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은 든다.


이곳에서 록리는 과연 마이트 가이처럼 될 수 있을까?



나는 누구?


내게는 여러모로 낯설고 새로운 핀테크 기획. 그런 만큼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배울 점이 참 많다. 그런데 배울 점이 많다와 재미가 있다는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다.


핀테크 기획 얘기를 할 때 반짝반짝거리는 선배들의 눈빛을 보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저렇게 눈빛 초롱초롱하며 핀테크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이드 프로젝트할 때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회사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설레는 마음보다는 성장한다는 느낌으로 일하는 것 같다.


근데 선배들처럼 성장하려면 설레는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한 거 같은데 재미 붙이기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가끔은 이대로 영영 재미를 못 붙이는 거 아닐까 걱정할 때도 있다.


사실 이런 걱정은 대학생 때도 했다. 내가 선택해서 중국어과를 갔지만 도무지 중국어와 중국에 흥미가 붙지 않았다.


주변 애들은 중국에서 살다왔거나 어려서부터 중국어를 배워 이미 잘했다. 초급 회화 시간인데 원어민 교수와 프리토킹 중인 학생도 있었다.


지금 회사에서처럼 내 존재가 참 작아보였다. 내가 쟤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전과를 고민했지만 비참한 학점 때문에 불가했다.


그땐 괜히 중국어와 중국이 미워서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항상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닐 내 전공이었기에 놓아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교환학생을 가기로 선택했다. 중국어과를 나온 기본적인 요건은 갖춰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이 가지 않는 곳에 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 참 무서웠다. 보통 교환학생은 설렘 반, 걱정 반이라는데 나는 걱정 100%였다.


그런데 중국에 도착하고 얼마 안 가서 중국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의 간편결제, 공유경제 등을 경험하니 마음이 두근두근거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땐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중국어 기사를 읽고 중국 관련된 글을 썼다.


교환학생 가기 전 2~3년 동안 중국과 중국어를 미워했는데 간 지 얼마 안 돼서 생각이 완전 바뀌었다. 오랜 기간 묵은 때도 어떤 계기를 통해 순식간에 벗겨져나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핀테크 기획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설레는 마음이 없지만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 빠져드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몸을 던져야할 것이다. 단순히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닌 파고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중국 교환학생 때처럼 핀테크 기획에 빠지는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앞서 말한 것처럼 핀테크 분야는 얻을 게 많은 분야다.


그러니까 지금 보다 더 관심을 가져보자. 매일매일 1mm만큼이라도 더 신경써서 다가가보자.


내가 좋아하는 중국 명언으로 글을 마친다.


不怕慢, 只怕站

느린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멈춰있는 것을 두려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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