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신성 2편
언제쯤 이 가혹한 몸뚱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볍다 못해 날아다닐 수도 있었던 아름다운 몸은 어디 가고 이런 추한 모습을 갖게 된 건지. 브리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 거울 앞에 가서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했다.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엔 허무의 연속이었다. 시간 맞춰 드론으로 배송되는 세끼의 식량 배급을 받아먹고 거실의 모니터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을 접한다. 이것 외에는 사람의 목적과 의지가 깃든 행동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브리가 오늘 처음으로 목적이 있는 외출을 감행하게 된 건 거실 화면에 뜬 호출 메시지 때문이었다. 메시지를 통해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경관 데-브리는 내일 중앙 경찰서로 오전 10시까지 오기 바람 >
메시지를 받은 후 그는 자신이 경찰관이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상현실에 있을 때 자주 했던 추리 게임 때문인가? 아니면 그냥 무작위로 배정된 직업 같은 걸까? 다양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브리의 발걸음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왜 가상현실에서 튕겨져 나온 걸까라는 만인의 고민에서 벗어난 브리의 개인적 고민은 그의 무거운 몸을 움직일 힘을 갖고 있었다.
브리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집을 나섰다. 현관문이 줄 지어 있는 아파트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왔다. 햇빛의 환대를 받으며 들어선 단지의 거리는 깔끔했다. 공원의 스프링클러와 환경 관리 드론들이 분주히 또 조화로이 움직였다. 나무의 무성한 잎새 사이에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려한 아파트 단지와 유일하게 조화가 되지 않는 건 사람들이었다. 길거리에는 목적 없이 부유하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그들은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계했다.
브리 또한 주위 사람들을 살피며 어제 안내 받은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브리는 대화하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거리의 사람들이 목적의식이 있어 보이는 브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검은 캐비닛이 하나 보였다. 사람 하나는 충분히 들어갈 크기였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캐비닛 위에 드론이 붙어 있었다. 드론도 브리를 발견했는지 캐비닛 문을 열고 그에게 탑승하라고 안내했다. 캐비닛 안의 좌석이 브리의 눈에 들어왔다. 브리는 자석에 이끌리듯 좌석에 몸을 맡겼다. 그는 흘러가는 대로 흘러간 끝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다.
그가 앉자 캐비닛 문이 닫히고 드론이 출발했다. 브리는 조그만 드론이 무거운 캐비닛을 잘도 들어올린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다가도 금세 가상현실에 비할 바는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드론은 순식간에 시내의 중앙 경찰서 앞에 도착했다. 캐비닛에서 내리자 비교적 많은 사람이 보였다. 그들 또한 단지 안의 사람들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흩어져 있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들 중 몇몇의 발걸음이 경찰서로 향한다는 점이었다. 브리는 앞서 있는 사람들을 따라 중앙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브리는 긴장되면서도 궁금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뭐 하는 걸까. 이들도 나처럼 호출을 받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경찰서 2층에 있는 제1 심문실로 향했다.
어느새 도착한 심문실에는 이미 5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브리를 잠깐 쳐다보곤 다시 심문실 안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브리도 잠시 눈치를 보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모니터에선 시간이 표시되고 있었다. 마침 10시가 되었다.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브리는 약간의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게임에서 튜토리얼을 하는 것처럼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 모니터 화면의 바탕이 흰색으로 변하더니 그 위에 검은색 글자가 하나둘 나타났다.
< 긴급 속보 – 가상현실에서 사람들을 쫓아낸 것으로 보이는 용의자 경찰서 앞에 곧 출두 >
속보는 사람들을 모니터 앞에 모여들게 했다. 그들은 가상현실에서 쫓겨난 후 처음으로 무언가에 강렬한 흥미를 느꼈다. 심문실 안의 사람들은 혼잣말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든 말을 하나둘 내뱉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져 브리는 창문 밖을 내다봤다. 경찰서 밖의 거대 광고판에서도 같은 속보가 전해지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광고판 앞으로 모여들었다.
브리는 다시 심문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혼잣말을 하던 사람들은 점차 대화 비슷한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경찰서로 오게 된 과정을 풀어냈다. 그러면서 자신들 사이에 일련의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브리처럼 영문도 모른 채 호출 메시지를 받고 경찰서에 온 것이었다. 브리의 생각대로였다. 누가 나를 불렀으며 당도한 곳엔 어떤 게 있을까라는 의문이 그들을 한 곳에 모이게 했다.
브리를 비롯한 심문실 안의 모든 사람은 그 의문의 답을 속보의 용의자가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든 갖고 있어야 했다. 그 사람마저 누군가의 호출을 받고 온 것이라면 앞이 까마득했다.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품고 있던 추측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시스템이 고장났다, 테러가 있었다 등 추측은 다양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용의자의 말을 들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창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브리는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경찰서 바로 앞에 드론 하나가 내려앉았다. 캐비닛 문이 열리고 은빛 단발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캐비닛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신들을 가상현실에서 쫓아낸 그를 돌팔매질해야 할까? 아냐. 아직은 용의자일 뿐 제대로 된 건 아무것도 모르잖아. 아니. 사실 그도 뭔가를 알기는 할까? 분분한 생각에 선뜻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은빛 머리의 여자는 아무런 제지 없이 아주 편안하게 경찰서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는 우아하게 한걸음 한걸음 헤맴 없이, 마치 가야 할 길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제1 심문실로 향했다.
멍하니 그를 쫓는 눈빛은 경찰서 안에서도 이어졌다. 그가 심문실에 거의 다다랐을 때 브리는 이미 문 앞에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에도 여자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심문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죄를 자백하러 왔어요.”
은빛 머리칼의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