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

초신성 3편

by JunWoo Lee

“제 어머니의 이름은 하이드-로젠이에요.”

노바가 책상 쪽으로 몸을 당겨 앉으며 말했다.

“로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브리가 머리를 긁적였다. 가상현실에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아 맞다! 그 사람은 악당이었어. 내가 즐겨하던 세기말 게임의 최종 보스였지. 로젠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당이었어.”

브리는 눈을 감고 악당을 물리쳤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로젠에 수도 없이 게임 오버를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저희 어머니를 악당 모티프로 사용한 게임은 수도 없이 많았죠.”

“뭐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는 건가? 이유가 있으니 모티프가 된 게 아닐까 하는데.”

브리가 말했다.

“전 진실을 아니까요. 어머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악당이 아니었어요.”

노바가 담담하게 말했다. 브리는 노바의 표정을 힐끔힐끔 살폈다. 얼굴에 가득했던 미소가 조금 빠져 있었다. 어머니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가 나오니 기분이 상한 건가 싶었다.

“제가 신기하게 생겼나요?”

노바가 브리를 보고 물었다. 브리는 무안해져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냥. 얘기나 계속해 봐. 어머니가 어떻다고?”

“제 어머니 로젠은 과학자였어요. 인공의식을 연구하셨죠.”

“인공의식? 그건 또 뭐야?”

“쉽게 말해 인공지능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이에요. 저희 어머니가 처음으로 발명하신 거죠.”

“그런 게 있었군. 그런데 그게 어쨌는데?”

“그 인공의식이라는 게 가상현실의 엔진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걸 삭제해서 아까 말한 것처럼 다들 가상현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거구요.”

담담하게 말하는 노바를 보며 브리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얘기를 그렇게 태연히 말하다니.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다들 자포자기 상태일 텐데.”

브리가 벽면에 난 유리창을 보며 말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이 창에 비쳤다. 이 모습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창 밖의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일 게 분명했다.

“오늘 얘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더더욱이 우린 이야기를 이어 나가야 해요.”

“웃기는군. 그러니까 네 말을 듣다 보면 살고 싶어진다는 거야?”

브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맞아요.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선물도 준비했어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노바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브리는 이번에도 그의 미소를 버텨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넌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군.”

브리가 못 말리겠는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노바의 자신감에 기대를 품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떻게 사람 눈을 저리도 잘 마주칠 수 있는 거지. 저런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뭔가 있으니까 저러는 것 같은데. 브리는 노바의 묘한 마력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그래서 선물이라는 게 뭔데?”

“지금은 알려줄 수 없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나씩 받게 될 거예요. 브리씨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죠.”

“자기 얘기를 못 해서 한 맺힌 사람 같군. 어떤 식으로든 네 얘기를 끝 마쳐야 한다는 거잖아.”

“맞아요. 그런데 자꾸 이렇게 끊기면 빨리 풀 수가 없겠어요. 역시 다른 방법을 써야겠네요.”

“다른 방법?”

“모두에게 제 어머니의 일생이 기록된 파일을 줄게요. 그걸 보면 사건의 진상을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현실로 쫓겨난 이유를 알게 된다고?”

“네. 브리씨는 저하고 여기서 함께 보면 될 것 같은데요? 이제 준비가 됐을 거예요.”

“어떤 게?”

< 삐 >

브리는 노바를 한번 쳐다보곤 수화기를 들었다.

“그렇군요. 그러면 여기 안에서도 틀면 되겠네요. 여기도 모니터가 있어서요. 알았어요. 그렇게 해 주세요.”

브리는 곧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심문실 벽면에 박힌 모니터에서 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머리가 부스스한 젊은 여자가 화면 중앙에 보였다. 정리되지 않은 그의 모습은 다소 허술해 보였지만 흰색 연구복과 검은색 뿔테 때문인지 지적이게 보이기도 했다.

“제 어머니 로젠이에요. 이건 그의 영상 일기라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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