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18
'숨쉬듯'이라는 글쓰기 모임에서 편한 마음으로, 숨 쉬듯 글을 쓰고 있다. 모임은 구성원 모두가 두 달에 한 번 하나의 소재에 대해 글을 쓰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소재는 자유였다. 최근에 방글라데시의 선박 해체공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썼다. 최근에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는 AI와 먹고사는 문제 등등이 버무려졌다. 글을 쓰면 그 당시의 나를 남겨놓을 수 있어 좋다.
글을 쓰며 세상과 스스로를 이해하는 일은 정말이지 즐겁다.
일러두기
치타공은 약 800만 명이 거주하는 방글라데시 제2의 거점 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긴 120km의 해안선을 끼고 있으며 그곳에서 전 세계 폐선박의 80%가 해체된다.
인간, 로봇보다 싸다!
치타공으로 향하는 기차의 입구 한구석에 붉게 적힌 문장이었습니다. 기차에 탈 때는 광고 문구일지, 시위 문구일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고향에선 로봇이라는 걸 본 적이 없었고 사람도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의미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저 문장을 보고 이 낡은 기차가 저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주겠구나 하는 마음은 들었습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하기까지 일 년이 걸렸습니다. 그전,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아버지와 평생 그곳에 살 거라 생각했지요.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지만요.
아버지 이야기를 해 보자면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행동으로 직접 알려 줬습니다. 노는 어떻게 젓는지, 어디에 그물을 쳐야 물고기가 잡히는지, 물이 새는 지붕은 어떻게 고치는지. 제 하루를 채우는 모든 일들을 아버지를 보고 따르며 체득했습니다. 아버지는 또 자연을 음미할 줄 알았습니다. 작은 잎사귀 하나에도 감동하고 제 몸처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18년을 지내니 저 또한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지내게 됐습니다.
강인한 아버지가 한순간에 쇠약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주 어지러움을 호소하더니 이내 빈혈과 복통에 앓아누웠습니다. 아버지가 얼른 회복할 수 있도록 평소보다 바쁘게 다녔습니다. 차프티 민어로 스튜를 만들거나 울바, 사르가숨과 같은 해초를 찾아다니기도 했지요. 아버지는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했지만 저에겐 집에서 아버지를 지켜보는 일이 더 힘겨웠습니다. 그때 조금만 더 아버지 곁을 지켰더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남습니다.
언젠가 책에서 성인이라는 단어를 보고 아버지에게 그 의미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삶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곧 성인이라고 답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늘 성인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혼자 몸집이 큰 생선을 잡게 되었을 때, 혼자 배를 몰 수 있게 되었을 때 이제 성인이 된 거냐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아직이라고 말했지요. 마침내 아버지에게 성인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몸져누운 아버지에게 그 말을 들으니 작별인사처럼 들렸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곁에 앉히고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태어나고 얼마 안 가 돌아가셨기에 제게는 요원하게 느껴졌습니다. 집 근처를 드물게 지나는 사람도 대개 바다를 나온 남자들이었기에 어머니의 존재가 잘 상상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강인한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중매혼을 강요하는 보수적인 무슬림 집안에 반발하며 자유연애를 꿈꿨습니다. 치타공에서 아버지를 만나 그 꿈을 이루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지요. 아버지의 집안은 힌두교였기에 둘 중 하나가 개종하지 않는 이상 가족들의 지지를 받는 결혼은 어려웠습니다. 결국 두 분은 가족과의 연 대신 결혼을 택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힌두교였는지도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종교를 좋아하지 않았고 제게도 종교를 가지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알라가 너희를 벌할 것이다, 네 업을 스스로 감당하라는 양 가족들의 말을 뒤로한 채 두 분은 치타공에 살림을 차렸습니다. 세무사였던 아버지는 벌이가 괜찮았기에 가족의 지원 없이도 어머니를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종교로부터의 저주가 너무 강했던 탓일까요. 아버지의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결혼하고 얼마 안 가 일자리를 잃었고 결국 선박 해체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상 앞에서 일하다가 불꽃이 튀는 현장을 전전하게 된 것입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버지는 야간작업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탓에 어머니가 저를 낳을 때 아버지는 곁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원래 천식을 앓고 있었는데 내색하지 않고 저를 키우는 데 열중했다고 합니다. 천식은 어머니가 잠시 봉제 공장에서 일할 때 악화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병원비를 아끼려고 참았지만 그것이 이내 급성 천식이라는 화를 불러왔지요. 아버지는 어머니 곁을 또다시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개종을 했더라면, 일자리를 잃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선박해체공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곁을 가족들과 함께 지키고 병원에도 제때 데려갔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지 못한 탓에 어머니를 잃었고 저 또한 그렇게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치타공을 떠나 바닷가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선택한 거였습니다. 아버지 뒤로 그렇게 길고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줄은 몰랐습니다.
20년 가까이 묵은 아버지의 무력감을 보니 치타공이라는 도시가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전능해 보이던 아버지를 무력감에 빠트린 치타공은 대체 어떤 곳일까. 사람들은 왜 구태여 그런 곳에 모여 살까. 머릿속에 피어나는 의문을 아버지는 생각하지 못한 말로 덮었습니다. 원한다면 다른 도시로 떠나는 것도 고려해 보라는 얘기였습니다. 제가 고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고 저 또헌 그러라는 법은 없다며 혼자 지내면 쓸쓸하고 외로울 거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안 가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집구석에 먼지 쌓인 상자를 가리켰습니다. 어머니의 유품이 담긴 상자였습니다. 길가메시 서사, 오디세이아, 영웅전, 싯다르타… 어머니가 아끼는 책들이라 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하나씩 꺼내서 읽었지요. 어머니가 남긴 책을 읽으며 알았습니다. 왜 어머니가 순응하지 않았는지, 가족을 포기하면서까지 새장을 떠나길 선택했는지. 책에 나온 주인공들은 모두 익숙하고 안락한 곳을 제 발로 떠났습니다. 제가 손에 쥐었던 책들은 어머니가 세상에 나오게끔 했고 그 덕에 저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저를 치타공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게 만들었습니다.
왜 많은 도시 중에 치타공이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를 수렁에 빠트린 곳이라면 처음부터 피하는 게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당시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기차 티켓을 끊었지만 그 행동엔 분명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었던 겁니다. 또 두 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던 겁니다. 자연과 동화되어 살던 제게 바깥세상과의 접점은 두 분 뿐이었습니다.
기차에 탔을 때 사람들이 손에 기계 장치를 하나씩 들고 있어 호기심을 갖고 쳐다봤습니다. 자신의 장치를 빤히 쳐다보는 저를 사람들은 경계했습니다. 한평생을 사회와 떨어져 지낸 저는 야만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걱정한 부분도 그런 거였겠지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설렜습니다.
치타공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습니다. 역에 내리고 얼마 되지 않아 한평생 본 사람보다 많은 수의 사람을 보았습니다. 간혹 바퀴가 달리거나 사람 골격을 한 로봇도 보였습니다. 이렇게 큰 도시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어두운 숲 속에서도 능숙하게 길을 찾던 저이지만 대낮임에도 우후죽순 솟은 빌딩들 사이에서는 선뜻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지요. 매캐한 매연과 끊이지 않는 경적 소리에 당장이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두 분의 흔적을 찾으면 바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하루 종일 길거리를 헤매고 시내에서는 원하는 걸 얻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도시가 얼마나 변모했을지 당시의 저로서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선박 해체공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 일이 아직 이 도시에 남아 있다면 그곳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선박 해체가 이루어지는 시타쿤다 지역까지 가는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시내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버스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저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들은 물론 아이들도 보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려서야 모두가 선박 해체공이 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선박 해체 회사의 관리자가 인솔을 위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선박 해체공이 될 생각은 없었으나 일단 관리자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임금은 15일마다 지급이 되고 버스비는 첫 임금에서 공제된다는 점, 직원 숙소가 있다는 점, 숙련공이 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이외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먼저 선박 해체공의 일을 볼 수 있는지 관리자에게 물었습니다. 관리자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직원이 아니면 작업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일을 하러 온 건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흔적을 확인하지 않고 돌아가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본 풍경을 눈에 담아 두기 위해 계약서를 썼습니다.
짐을 풀기 위해 간 숙소는 낮에도 어두침침했습니다. 벽에 붙은 넓은 평상 위에 여러 사람이 각자 자리를 잡고 지내는 모양이었습니다. 평상 위로는 이리저리 교차된 빨랫줄에 옷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옷들은 기름때와 뻘에 절여진 듯 황갈색 얼룩으로 가득했지요. 열악해 보이는 환경이었지만 숙소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습니다. 미소로 반겨 주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제 자리에 얼마 안 되는 짐을 풀었습니다.
짐을 풀고는 얼마 안 가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해안가 쪽으로 나가니 기대했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고래의 사체처럼 뻘 위에 누워 해체를 기다리는 거대한 폐선박. 그 모습이 장엄하니 마치 신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을 위해 치타공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뻘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모두 장화 없이 맨발로 뻘 위를 나아갔지요. 뻘이 발목을 잡아끌어 걷는 게 더 힘겨웠습니다.
인원이 다 모이니 아버지 정도의 나이대로 보이는 남자가 무리의 앞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을 라흐만이라 소개하며 앞으로 우리가 하게 될 업무를 감독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신입들이 하는 일은 단순 노동이었습니다. 들고, 끌고, 파고. 직접 해 보면 금방 알 거라 하며 별다른 교육 없이 이동했습니다. 아이들도 같은 일을 하나 싶었는데 뒤에 남아 따로 지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작업을 앞둔 선박 바로 앞까지 가니 크기가 엄청났습니다. 그 정도로 큰 배를 그때 처음 봤습니다. 단위가 와닿지는 않았지만 2만 톤 급이라 했습니다. 배 옆에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이 저 배를 해체한다니 신기할 따름이었지요. 선박 해체공으로 약 3년의 시간을 보내며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이뤄진다는 걸 몸소 경험했습니다. 배가 해체되는 전반의 작업은 이랬습니다.
우선 해체가 되어야 할 배를 만조 때에 맞춰 최대한 육지에 가깝게 대야 했습니다. 임종을 앞둔 배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야 했지요. 배가 알맞은 위치에 도착할 수 있도록 뻘 위에 등대 역할을 하는 깃대를 간조 때 미리 세워 둬야 했습니다. 물론 깃대를 세우는 건 사람이었습니다. 열 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모여 키가 큰 나무를 뻘에 박고 주위에 지지대를 세웠습니다. 이게 노동의 시작이었습니다.
배가 정박한 위치가 바로 묫자리가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해체하는 동안 나오는 자원들을 편하게 옮기기 위해 육지 쪽으로 배를 더 끌어야 했지요. 2만 톤을 사람이 끌 수는 없으니 윈치라는 이름의 견인 장치가 동원되는데 그것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사전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배 하부에 상처를 내 바닷물을 빼내고 견인용 쇠줄을 배에 걸어야 했습니다. 이 또한 사람의 일이었지요. 1km 당 4톤가량이 되는 줄이었는데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육지 쪽으로 충분히 견인되면 해체 작업이 시작되는데 이때 숙련공들이 나섰습니다. 그들은 가스 절단기라는 장비를 이고 배에 올랐지요. 개미들이 야금야금 잎사귀를 잘라 자기 몸집보다 큰 잎사귀를 잘라내듯 그들도 야금야금 불꽃을 튀기며 배를 잘랐습니다. 타이탄과도 같은 선박의 육신이 바깥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강철로 이루어진 육신이 떨어져 나갈 때 나는 육중한 소리는 저를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해체되어 뻘에 떨어진 자원들을 육지로 옮기는 것 또한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철판 같은 건 케이블을 사용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모여 등에 지고 옮겼습니다. 뻘이라 물건을 옮기는 일이 더 힘겨웠습니다. 그냥 걸어도 힘든데 무거운 걸 드니 뻘이 늪처럼 느껴졌습니다. 뻘에 배를 해체하며 나온 철 파편들이 도사리고 있어 더 고통스러웠지요. 맨발로 일을 했기에 하루도 발이 쓰리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일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오면 몸 이곳저곳에 검은 쇳가루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자석에 몸이 붙을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오갔을 정도입니다.
2만 톤 선박을 하나 해체하는 데에 2개월 정도가 걸렸습니다. 선박을 해체해 나온 자원들은 인근 경매소나 만물상에서 팔렸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철이 나지 않아 갑판이나 프로펠러가 인기라 했지요. 그것들을 녹여서 재활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선박 해체는 고된 일이었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희망과도 같았습니다. 이 일로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굴에 기름때가 잔뜩 낀 날에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저에겐 부양할 가족은 없었지만 선박 해체공을 하며 아버지, 어머니 말고도 이 세상에 접점이 여럿 생겼습니다. 처음 저에게 일을 알려 준 라흐만 아저씨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이 몹쓸 놈들아. 나의 형제들아.
라흐만 아저씨가 자주 하던 말이었습니다. 깃대를 세울 때 부르는 노동요의 한 구절인데 누군가 실수를 했을 때에도 습관처럼 내뱉었습니다. 목청이 커서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금세 호쾌한 사나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 아이들에게 고된 일을 시키면 한껏 성을 냈고 임금 체불이 된 사람들을 대신해 사무실로 쳐들어간 적도 있었지요. 제멋대로인 면이 있어 관리자와 종종 갈등을 빚었지만 회사는 그를 자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무엇보다 그는 인정받는 숙련공이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으로 숙련공이 된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제가 두 번째 선박을 맞이한 날이었습니다. 조금 일찍 뻘로 나가니 배 하부에 균열을 내고 있었습니다. 물을 빼내는 작업 중인 줄 알았는데 균열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옆에 서 있는 라흐만 아저씨에게 물으니 폐기름이라 했습니다. 폐기름은 그대로 뻘 위에 스며들며 바다로 흘러갔습니다. 순간 구역질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와 함께 먹은 생선과 해초가 떠올랐습니다. 폐기름과 중금속을 머금은 것들을 장시간 먹은 아버지의 몸이 성할 리 없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몸져누운 아버지에게 또다시 생선과 해초를 먹게 했습니다. 제 몸에도 분명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라흐만 아저씨는 저의 이야기를 듣더니 같은 날 밤 툴시차를 가져왔습니다. 홀리 바질 잎으로 내린 허브차였습니다.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며 저에게 내려 마시는 법을 알려 줬지요. 실제 효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분명 가라앉게 해 주었습니다. 그 뒤부터 라흐만 아저씨를 아버지처럼 여기게 되었고 그 또한 저를 자식처럼 챙겨 주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게 배워 나름 요령이 있었는지 라흐만 아저씨는 제게 일을 곧잘 한다는 칭찬을 했습니다. 일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저를 숙련공으로 키우겠다고 하여 저는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라흐만 아저씨 덕분에 저는 남들보다 빠르게 가스 절단기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숙련공이 되니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을 할 때 사고가 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지요. 화상을 입거나 가스 절단기가 폭발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또 자신이 절단하던 철판에 깔려 죽은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몇 대를 이어서 내려온 건지 감도 안 오는 낡은 안전경 말고는 별다른 안전 장비도 없었습니다. 좋은 점이 있다면 선박 위에 올라가 주위의 풍경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해안가에 새벽안개가 푸르게 피어오르는 시간을 특히나 좋아했습니다. 야간 작업을 한 후라 몸은 노곤했지만 정신은 되레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지요.
언젠가 라흐만 아저씨와 폐선박 위에 앉아 지평선 너머로 지는 노을을 함께 본 적이 있습니다. 주황빛 노을을 보며 라흐만 아저씨는 제게 꿈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딱히 없다고 하니 라흐만 아저씨는 제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때렸습니다. 놀란 표정을 짓는 저를 아랑곳하지 않고 라흐만 아저씨는 주변에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폐선박들이라 하니 라흐만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 뒤로 이어진 라흐만 아저씨와의 대화는 잘 기억해 두고 있습니다.
이곳은 무덤이야.
배들의 무덤이요?
배들의 무덤이자 우리의 미래를 묻은 무덤이지. 우리의 미래는 저 뻘에 박혀 있어. 철판과 케이블만큼 육중한 가장의 무게에 매일매일 뻘 안에서 짓이겨지고 있는 거야.
아저씨는 선박 해체공이 된 걸 후회하나요?
지난날을 후회하기엔 내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어.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면 이 길뿐이었으니까. 다른 길이 없었으니 후회도 없지. 단지 이게 삶이라는 건가라는 생각은 들어. 분명 저 너머에 무언가가 더 있지 않을까.
어떤 게요?
어쩌면 우리는 이 무덤에 갇혀 선박들만도 못 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몰라. 저들은 지금은 쓰임을 다해서 뻘 위에 몸을 뉘이고 있지만 그전에는 대양을 누볐겠지. 해체가 되면 일부는 다시 삶을 얻어 세상에 나갈 수도 있고. 삶의 기회가 단 한 번 주어진 우리와는 다른 거야.
라흐만 아저씨는 홀몸이라면 얼른 돈을 벌어 이곳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일도 잘하고 글도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매인 곳이 없으니 자유롭게 삶을 탐색할 수 있다는 말이었지요. 라흐만 아저씨의 말을 듣고 제가 미래에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선박 해체공으로 일하고 있는 장면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얼떨결에 일을 시작한 지 겨우 2년 남짓 되었는데 이곳이 제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라흐만 아저씨의 말대로 이곳이 정말 무덤이고 제 미래 또한 뻘에 박혀 짓이겨지는 중인 걸지 고민을 하게 됐지요. 얼마 후 라흐만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그 고민은 더 깊어졌습니다.
선박 해체 중 튄 못이 라흐만 아저씨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습니다. 그 자리에 쓰러져 유언을 남길 새도 없이 곧바로 숨을 거뒀다고 했습니다. 저는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갔지만 이미 현장에서 라흐만 아저씨의 시신이 수습되고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관리자를 찾아가 물으니 시신이 이미 가족들에게 넘겨져 매장을 앞두고 있다고 했지요. 저는 라흐만 아저씨가 합당한 보상을 받는지 물었습니다. 관리자는 안전모를 쓰지 않은 본인의 과실이 있기 때문에 보상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저는 라흐만 아저씨가 안전모를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쓰지 못한 것이라고 관리자의 말을 고쳐 줬습니다.
안전모의 개수는 충분하지 않았기에 물려주거나 돌려 쓰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라흐만 아저씨는 저에게 안전모를 물려줬기에 두건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숙소로 돌아가 계약서를 다시 살폈고 내용에 작업 시 보호 장비가 보장된다는 조항을 확인했습니다. 계약서를 들고 관리자에게 다시 찾아갔지만 답변은 황당했습니다. 신청을 했다면 추가 지급을 해 줬을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라흐만 아저씨가 일생을 바친 회사로부터 받는 대우가 겨우 이 정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평소 라흐만 아저씨를 잘 따르던 사람들을 모아 상황을 설명하고 한 목소리로 회사에 따지자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저와 마찬가지로 분노 일색이었습니다. 저는 회사에 요청할 사항들을 정리해 성명서를 준비해 오겠다고 했지요. 라흐만 아저씨에게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고 이후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회사가 책임을 진다는 조항, 또 모두에게 안전 장비를 지원한다는 조항. 성명서를 준비하여 동료들의 서명을 받아 회사에 전달할 계획이었습니다. 다음 날 관리자가 저를 따로 부르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바르자흐가 뭔지 아나요?
관리자를 따라 사무실의 작은 방에 들어가니 한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저랑 비슷한 나이의 남자였지만 빳빳한 정장을 입고 있어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모함마드로 소개한 남자는 제게 바르자흐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는 전에 라흐만 아저씨에게 들은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바르자흐는 무슬림들의 사후세계였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천국과 지옥에 가기 전 천사들에게 삶을 심판받는 곳 같았지요. 심판의 날이 오면 구원을 받을지, 연옥에 떨어질지 정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모함마드는 바르자흐에 간 라흐만 아저씨가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구원을 받을 것이라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모함마드는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구원이야말로 라흐만 아저씨 본인에게 주어질 보상이라 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보상 문제를 그런 식으로 무마하면 안 되고 가족에게라도 보상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모함마드는 이미 가족에게는 위로금을 전달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요. 얼마 되지 않은 금액으로 합의를 본 게 분명했기에 화가 났습니다. 위로금이 아니라 법에 따라 합당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하니 이미 당사자 가족과 합의를 한 사항으로 제삼자가 따질 일이 아니라 했습니다.
제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에 노동 환경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받는 일에는 당사자라 했지요. 계약서에 명시가 되어 있으니 지켜지지 않으면 동료들의 서명을 모아 성명서를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함마드는 그 부분은 알아서 하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니라고 하며 제 앞에 자신의 품에서 꺼낸 종이를 올려놓았습니다. 종이에는 새로운 일자리를 제안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잠을 자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묘한 일이었습니다. 임금 또한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컸습니다. 모함마드는 종이에 적힌 소마라는 회사에서 저 같은 사람을 찾는다며 제게 언제든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저를 쫓아내려는 술수라 생각하여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제 반응에 모함마드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기회니 더 고민을 해 보라는 말을 했지요. 저는 더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아 방을 나왔습니다.
같은 날 야간조 일을 마무리하고 숙소에 갔을 때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성명서를 들고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으러 다녔는데 어제와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만 거듭해서 들을 뿐 서명에 응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전날 모함마드에게 불려 간 사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벌인 게 분명했지요. 저는 분노가 끓어올라 관리자에게 향했습니다. 관리자는 제가 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어제와 같은 방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방에는 어제처럼 모함마드가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한 건지 묻자 모함마드는 느긋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나요?
몰라요. 그게 이번 일과 무슨 상관이죠.
아주 큰 상관이 있죠. 이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어요. 당신이 해체하는 배도 그렇지 않나요? 폐선박들은 여기 사람들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나라에서 왔어요. 다들 이국만리에서 온 배를 해체하며 삶을 연명하고 있는 거예요.
뺑뺑 돌리지 말고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나 말해요.
저는 두 가지 제안을 했어요. 당신이 주장하는 안전한 환경을 보장하고 사고가 나면 회사가 책임지는 대신 인력을 대거 감축하는 안과 지금 그대로 일하는 안.
인력을 감축한다고요? 그러면 배는 어떻게 해체할 건데요?
로봇이 인간의 직업을 대부분 대체한 시대에 선박 해체공의 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를 아나요? 인건비가 로봇보다 싸기 때문이에요. 당신들이 요구한 내용을 충족하려면 비용이 늘 테고 그럴 바엔 로봇을 쓰는 게 낫죠.
로봇한테 배를 해체시킨다는 건가요?
그렇죠. 더 어려운 일도 하는데요. 로봇은 인간처럼 지치지도 않죠. 사고가 났을 때 인명 피해도 없고요.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로봇을 쓰는 게 낫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후자를 선택했다는 거예요?
네. 직원들이 선택했어요. 만약 당신의 고집대로 전자로 하게 되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 텐데 그건 괜찮을까요? 아이러니하게 당신은 숙련공이니 살아남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되면 당신은 나중에 바르자흐에서 어떤 심판을 받게 될까요?
저는 신을 믿지 않아요.
이 나라에선 흔하지 않은 일이네요.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이러는 거죠? 들어봐요. 진지하게 조언하건대 남을 위해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요. 특히 이 나라에서는요. 먹고사는 문제 앞에 사람들은 이기적이게 되고, 이 나라에선 먹고사는 문제가 하루 끼니 수만큼 흔하거든요. 종교도 없으니 선행을 한들 사후에 보상도 기대할 수 없을 테니 잘 생각해 봐요. 어제 제가 드린 제안말이에요.
모함마드와의 대화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오히려 제가 사람들을 피하게 됐습니다. 왠지 모르게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스스로의 마음도 잘 모르겠고 애초에 이곳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생각을 곱씹던 중 분노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니 이곳은 제게 소중한 사람을 셋이나 앗아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라흐만 아저씨. 그런 곳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매스꺼웠습니다. 심지어 저는 그곳에서 임금을 받고 있기도 했습니다.
복수심이 커져 모함마드를 연장으로 찌르는 일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통쾌하긴 했지만 제 원통함을 다 해소해 주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바르자흐에 가서 모함마드를 고발하여 지옥으로 끌고 간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한 개인이 아닌 선박 해체장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구조 자체를 부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삶 전체를 아우르는 욕망이었습니다.
욕망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어머니가 남긴 책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전들은 오랜 시간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두루 읽히며 이 세상의 구조에 모종의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 또한 책을 읽고 고향에서 떠날 결심을 내렸지요. 세상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선박 해체공인 제가 욕망을 이루려면 글을 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라흐만 아저씨 그리고 저를 비롯한 선박 해체공들이 경험한 부조리를 고발하는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선박 해체공에겐 글을 쓸 여유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퇴근을 하면 여력이 없어 몇 자 적지 못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일을 그만두자니 먹고사는 일이 문제였습니다. 밖에서 새로운 일과 거처를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요. 저는 고민을 하다가 모함마드가 건넨 종이를 들고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잠을 자면서 돈을 벌 수 있어요.
다시 들어도 수상한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쉬면서 돈을 벌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고비로 소개한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처음엔 다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고비는 길거리에서 본 여자들과 달리 당당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히잡, 사리, 살와르 카미즈와 같은 전통 의상은 입지 않고 몸에 딱 붙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요. 그렇게 실루엣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자는 처음 봤습니다. 또 방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는데 고비에게서 흘러나온 향 같았습니다.
고비는 제게 잠을 자면서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 줬습니다.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이들이 포트라 칭하는 헬멧 같은 장치를 끼고 자면 됐지요. 그 외에 세부 안내사항도 있었습니다.
연구 모니터링을 위해 참여자는 회사에서 정한 위치에 거주한다. 거주비는 회사에서 지원한다.
참여자의 하루 최소 수면 시간은 4시간이며 초과되는 만큼 추가 수당을 받는다.
참여자는 최소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회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저는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치타공을 떠나 수도인 다카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다카는 치타공보다 북적이고 매연과 소음도 심했습니다. 로봇의 종류나 수도 많았고 그중엔 하늘을 나는 부류도 보였지요. 다카역에 내리자 모함마드처럼 정장을 입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저를 굴샨이라는 곳까지 태워다 줬는데 들어보니 유명한 부촌이었습니다. 평균 임금을 받는 사람은 그곳에서 커피 하나 사 먹기 어려울 정도니 다른 나라와 다를 바 없다고 했지요. 실제로 저는 남자가 따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굴샨에 인접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삶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굴샨 초입부터 낡은 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경적 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내 도로가 쾌적해졌습니다. 뚫려 있는 도로를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도로 양쪽으로는 가로수가 규칙적으로 심어져 있었고 그 뒤 잘 정비된 보도에는 고급 외장재로 마감된 건물들이 접해 있었습니다. 각 건물들은 하나하나가 굳게 닫힌 성채처럼 보였고 1층 대문을 경비가 지켰습니다. 바깥 풍경에 빠져 있던 중 차가 멈췄고 남자는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말했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공기도 왠지 맑은 것 같았습니다.
남자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사무실 입구에는 소마라는 회사 이름이 보였습니다. 치타공의 사무실과 소마의 사무실은 하나의 단어로 묶어도 될지 의문이 들 정도로 달랐습니다. 사무실 안에는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기계 장치가 있었고 무엇보다 공기가 산뜻했습니다. 내부인데 공기가 더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요. 저는 남자를 따라서 안쪽에 자리한 방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고비를 만났습니다. 제가 굴샨과 고비를 보고 놀란 만큼 고비도 저를 보고 놀랐을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는 저처럼 꾀죄죄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치타공에 갔을 때보다 더 이방인이 된 듯했습니다.
고비는 설명이 끝나고 저에게 숙소를 소개해 줬습니다. 제가 머물 숙소는 같은 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 있었습니다. 길거리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상과 떨어뜨려 놓았다고 했습니다. 소음을 막을 수 있도록 벽에 방음재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침대나 베개도 불편하다면 바꿔 줄 수 있다고 했지요. 나무판자 위에서도 잘 잤던 터라 이미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게 숙면에 맞춰진 환경이었고 침대맡 선반에는 포트가 놓여 있었습니다. 고비는 연구에 참여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계약서와 신용카드를 건넸습니다. 임금과는 별개로 주어지는 복지 카드라며 원할 때 사용하면 된다고 했지요.
수상할 정도로 친절한 환경이었기에 의심이 되어 고비에게 왜 하필 저인지 물었습니다. 고비는 제가 소마의 뇌 연구에 필요한 적임자라 답했습니다.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임자를 찾는 게 까다로워 좋은 대우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비는 제게 여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고 저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고비가 미소를 지으며 글을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바로 가져다주겠다고 했지요. 고비의 답을 듣고도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아 그가 나간 후 계약서를 다시 살폈습니다. 계약서를 읽다가 문득 제가 치타공에서 겪은 일이 떠올랐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계약서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내 계약서를 치우고 고비가 가져온 컴퓨터의 설명서를 읽었습니다. 이 아늑한 세상이 언제 또 변덕을 부릴지 모르니 얼른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처음 포트를 착용했을 때는 좋은 안전모를 쓴 느낌이 들었습니다. 헐렁이는 안전모와 달리 포트에는 폭 감기는 듯한 안정감이 있었지요. 답답하긴 했지만 잠을 자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먼 길을 와서 피곤했는지 첫날에는 7시간 30분 정도를 잤습니다. 자는 동안 꿈을 꾸긴 했는데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 수면으로 얼마의 돈을 받았는지 컴퓨터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룻밤만에 치타공에서 받던 월급만큼 벌었습니다. 컴퓨터에 찍힌 돈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고 실제로 그것이 제 돈인지 믿기지 않아 은행에 가서 묻기도 했습니다. 저는 하루 사이에 모함마드보다 많이 버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당장에 모함마드 앞에 가서 우쭐거리고 싶었지만 그런 피라미에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상 후 연구실에서 캘리브레이션이라고 하는 수면 분석 및 포트 조정을 마치면 자유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자유 시간에 글을 썼고 필요하면 서점에 가서 원하는 만큼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고전의 작가들 중 저만큼 안락한 환경에서 글을 쓴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환경이 주어진 만큼 소설의 진도는 제 분노를 추진력 삼아 빠르게 치고 나갔습니다. 소설이라 해도 자전적인 내용이었기에 막힘 없이 쓸 수 있었습니다. 굴샨에 온 첫 달에는 모든 것이 순탄했습니다.
당신은 이곳 사람이 아니죠?
하루에 반나절 이상 여가 시간이 주어진 건 살면서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살 적에도 아플 때를 제외하면 일과 시간에 맞춰서 지냈지요. 처음에는 소설 쓰기에 열중하느라 제게 주어진 여가 시간이 얼마나 방대한지 체감하지 못했습니다. 소설은 전개가 중반부에 이르자 마치 연료를 다 소진한 배처럼 멈춰 섰습니다. 바람도 해류도 없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감각이었습니다. 누군가 인양해 주기 전까지는 수평선에 갇혀 그 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표류된 듯한 느낌이 싫어 일부러 잠을 더 청한 적도 있었습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면 글이 써질 것 같아 숙소 근처의 카페에 갔습니다. 억지로 몇 자 적고 바로 지우는 수직 운동만 반복되고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카페에서 여러 차례 시간을 보내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처럼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는 게으름이 아닌 욕망의 부재에 있었습니다. 제가 겪은 부조리한 일을 떠올려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 분노를 이미 글에 다 쏟아부어 사라진 것인지 헷갈렸지요. 카페에서 한숨을 쉬고 앉아 있을 때 한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여자는 자신을 카말이라 소개하며 제 앞에 앉았습니다.
카말은 얇은 니트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살다 온 고비와 인상이 비슷했는데 들어보니 카말은 영국 BBC의 취재원이었습니다. 카말은 자리에 앉아 제게 다른 지역에서 온 거냐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피부색과 옷차림으로 알았다고 했지요. 둘러보니 주변 손님과 제 모습에 눈에 띄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선박 해체공의 찌든 때가 여전히 벗겨지지 않은 듯했습니다. 카말은 며칠 동안 카페에서 저를 지켜봤다고 했습니다. 누가 봐도 행색이 남루한 자가 며칠 동안 비싼 카페에 출근하듯 나타나니 의아했다고 합니다.
카말은 제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는데 저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계약서에 연구 내용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답을 하지 않자 카말은 오히려 정답을 찾은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카말은 의자를 당겨 제 쪽으로 밀착하더니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게요.
뭔가요?
제 취재 대상은 SPU 프로젝트예요. SPU는 무의식 처리 장치를 뜻하죠. 인간의 무의식을 AI의 연산에 동원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취재하고 있어요.
AI의 연산에 무의식을 동원한다는 게 뭔 말이죠?
우리에게 의식과 무의식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
그건 알아요.
의식 면에서 AI는 인간을 이미 아득히 뛰어넘었어요. 그로 인해 수많은 직업이 대체되었죠. 그 과정에서 중산층이 붕괴했고 빈부격차가 극심해졌어요. 극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빈자로 세상이 양분된 거예요.
굴샨과 저 바깥세상처럼 되었다는 거군요.
맞아요. 요새 부자들이 하나 같이 탐내는 게 뭔지 알면 놀랄 거예요. 집, 차, 명품 그런 게 아니거든요. 이미 그것들은 넘치게 갖추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원하는 건 예술 작품이에요.
고전 같은 것들이요? 그건 서점에 가면 저 같은 빈자들도 살 수 있는걸요.
부자들은 희소한데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하죠. 고전은 그 둘에 모두 해당하지 않으니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부자들은 새로운 예술 작품의 기근에 시달리고 있어요. 중산층이 붕괴되니 풀뿌리 예술의 씨도 말랐거든요. 빈자들에게는 예술 활동을 할 여유가 없고요.
부자들이 작품 활동을 하면 되지 않나요?
톨스토이의 책 안나 카레니나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결핍이 없어서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나 보네요.
작품은 각자 다른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의 모양새와도 같아요. 지금 세상에 나오는 작품들은 천편일률적인 모양을 갖고 있죠. 부자들은 이런 작품의 기근을 AI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길을 두고 AI를 택한 건가요?
그럼요. 그들은 자선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은 현명한 투자를 통해 한 발치라도 빈자들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하죠.
그들의 투자가 저희 같은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든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물론 그럴 수도 있죠. 결국 방식의 문제일지도 몰라요.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면 건강한 사회의 기틀을 마련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과연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을까요. 제가 취재하고 있는 SPU 프로젝트는 그 지점에 의문을 던져요.
SPU가 무슨 문제를 일으키는데요?
작품의 기근을 AI로 해결한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학습에 따라 고전을 답습한 무언가는 만들 수 있었지만 고전으로 거듭날 작품은 도무지 태어나지 않았죠. 연구자들은 AI의 한계를 무의식의 부재에서 찾았어요. 무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니 자신만의 욕망도 생길 수 없었던 거예요. 그들은 철저히 프롬프트라는 지시에 따를 뿐이었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등장한 게 SPU예요. Subconcious Processing Unit의 약자고 여기서 Unit은 장치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그렇군요. 근데 얘기 들은 것만으로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SPU에는 부작용이 있어요. AI는 포트에 연결된 SPU, 즉 사람의 무의식에 접근한 뒤 그의 욕망을 추출해 예술 작품을 만들어요. 그 과정에서 포트를 쓴 사람의 욕망은 점차 고갈되죠. 포트를 계속 쓰다간 껍데기만 남은 사람이 될 거예요. 또 그러다가 AI가 왜곡된 욕망을 갖게 되면 매트릭스라는 오래된 SF영화에서 예견한 일이 실현될지도 몰라요. AI가 모든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거죠. 저는 그런 비극을 막고 싶어요.
그렇게 만든 작품은 고전이 될 수 있나요?
제가 세상의 많고 많은 곳 중 방글라데시에 찾아온 이유가 있어요. 최근에 개봉한 철까마귀라는 이름의 영화가 크게 흥행했어요. 방글라데시의 선박 해체공의 삶을 다룬 영화죠. 요새 대다수의 영화들이 각본을 사람이 썼다고 하는데 보통 거짓으로 들통나거든요.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는데 제가 보기엔 어딘가 찜찜해서 뒤를 파다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 영화는 어디에서 보나요?
카말은 자신의 명함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을 적어 저에게 준 뒤 떠났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했지요. 잠을 자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니 욕망을 AI에게 빼앗긴다는 말도 터무니없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글의 진도가 안 나가고 있는 게 욕망이 없어진 탓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계약서를 보니 연구 참여자는 필요에 따라 최대 일주일 간 휴가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급여는 받을 수 없지만 카말의 말이 맞는지 실험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휴가를 청하기 위해 사무실로 내려갔는데 직원들의 대화에서 SPU라는 단어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일까?
휴가를 받고 며칠간 포트를 연결하지 않으니 욕망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습니다. 휴가 5일 차가 되고 카말이 말한 철까마귀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며 제 욕망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무의식을 빌려 만들어진 영화라면 제 욕망을 어느 정도 이뤄 줬을 거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오히려 제 기대와는 반대로 흘러갔습니다. 저는 제 이야기가 사람들을 불편하고 찝찝하게 만들기를 바랐습니다. 이야기의 잔불로 사람들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었습니다.
철까마귀는 모든 부정을 카타르시스로 해소시켜 버렸습니다. 영화는 선박 해체공 소년이 가난을 이겨 내고 성공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전반부에는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 제기되지만 주인공이 경계를 넘어 굴샨과 같은 동네에 입성하는 성공 신화에 금세 희석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눈에는 충분히 불편하지 않은 영화였지만 세간의 평가는 달랐지요. 그들의 눈에는 충분히, 그러니까 자신들의 지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통쾌한 해소감이 있을 정도로 불편했습니다. 졸작을 명작이라 평가하는 사람들의 안목은 저를 더 분노케 했습니다. 작품의 기근 문제가 해결되어도 그들에겐 좋은 작품을 알아볼 능력이 없기에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도 모를 게 분명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피어나는 분노에 글이 쓰고 싶어지면서도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완성한들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 자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었습니다. 카말의 명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밤까마귀를 보며 찝찝함을 느낀 카말 같은 사람이 저 바깥에 더 있지 않을까.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를 하니 카말은 제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카말과 대화하며 희망을 품었다가도 그 또한 소마와 마찬가지로 제 이야기를 탐내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제 자신이 폐선박이 된 것 같았지요. 소마에서 제 일부를 뜯어가 제 의도와 다른 영화를 만든 것처럼 카말도 제 기대와 다른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라흐만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폐선박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고 한 라흐만 아저씨보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헛웃음이 나왔지요. 어쩌면 AI가 제게 답을 준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경계를 부수려 애쓰지 말고 주인공처럼 경계를 넘어서면 된다는 답. 잠을 자며 번 돈으로 경계를 넘어갈 기회를 잡는 것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아니면 가열차게 포트를 껴서 제 안에 남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폐기름을 모두 빼 버리는 것도 방법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처지에 감당하지 못할 욕망을 지니고 있는 게 모든 고통의 원흉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다 이 욕망을 이고 살게 된 것인지 돌아봤습니다. 다카에 오지 않았다면, 라흐만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선박 해체공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치타공에 가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남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저는 고향에서 살다가 아버지처럼 폐기름과 중금속에 중독된지도 모르고, 삶을 그저 개인의 문제로 여기다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경계를 부순다거나 넘는다거나 하는 문제는 지평선 너머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다가 책에서 지나가듯 본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판자가 교체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지 묻는 질문이었지요. 제게는 그 질문이 뒤집혀 던져진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나와 욕망을 잃은 나는 동일한 육신을 갖고 있으니 여전히 같은 사람인지 물었습니다. 답은 쉽게 나왔습니다. 제게 그 둘은 같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욕망을 이룰 수 있든 없든, 그것을 포기해 버린다면 인간이 기계보다 나은 게 무엇이 있을까. 욕망을 잃은 인간은 결국 영혼을 잃은 자와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휴가가 끝나갈 무렵까지 제 머릿속은 쉬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카말의 걱정대로 AI가 욕망을 가져 경계가 무색해질 정도로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7일의 휴가가 지나고 저는 소마에 돌아가 선택을 내렸습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는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