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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May 22. 2019

단 몇 글자에 드러난 동서양의 차이

황금률에 담긴 동서양의 차이

오늘은 동서양의 차이를 간단명료하게 드러내는 황금률(The Golden Rule)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다.


먼저 황금률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아주 간단하면서도 근원적인 규율이다.


기독교의 황금률

-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

- And as ye would that men should do to you, do ye also to them likewise.(luke 6:31)


유교의 황금률

-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

-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짧고 이해하기도 쉽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약간의 변형만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시
- 누군가 설거지를 해주길 바란다면 너부터 해줘라.
- 네가 설거지가 하기 싫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

그래서 시간이 흐르며 황금률은 사회 구성원에 녹아들어 DNA처럼 작용하게 됐다. 규율이 대를 이어 전해지며 몸과 마음에 밴 것이다. 결국 황금률은 규율로 시작하여 문화적 바탕이 된 셈이다.


그런데 기독교와 유교의 황금률을 보면 미세하게 다른 점이 있다. 아래 그림을 한번 살펴보자.

하라 vs 말라

짧은 구절 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 될 부분은 바로 빨간 글자로 된 부분이다. 저 말미 부분이야말로 해석의 차이나 문장의 변형이 있어도 달라지지 않는 황금률의 정수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빨간 부분에서 기독교는 '~하라'로 주체적 행동을 촉구하는 반면 유교는 '~하지 말라'로 행동을 억제한다. 사소한 차이 같아 보이지만 사실 서양과 동양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근원적인 부분이다.


물론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지금 시대에 동서양의 차이를 말하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황금률 간의 사소한 차이는 역사를 거쳐 두 문명 간의 지대한 차이를 빚어왔다. 과연 문명의 성장 과정을 배제하고 그것의 현재 상태를 재단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고 이유는 보통 과거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니 함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서 동서양의 두 황금률이 어쩌다 저렇게 다른 형태를 갖게 됐을지 따져보자.


*아래의 설명은 상대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게 좋습니다.


서로 다른 시작, 폴리스와 중원


폴리스와 중원 제국이 뭔지 한 번쯤 들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시절 나타난 국가 개념, 중원 제국은 고대 중국 시절 나타난 국가 개념이다.


하필 그리스를 중국의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리스가 유럽의 정신적 뿌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폴리스와 중원 제국 모두 역사 초기 시절 발달한 개념으로 지리적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 당시 그리스와 중국의 지리적 환경을 아주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그리스는 전 국토의 75% 이상이 산악 지대로 평야나 거대한 강이 없었다. 이런 지리적 환경은 대규모 통합을 억제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 국가 형태, 폴리스를 발생시켰다.

EBS 다큐 프라임, 그리스의 지형

이와 달리 중국엔 중원이라는 넓은 평원이 있었다. 이 중원 지역에는 황하라는 거대한 강도 흘렀기에 사람들이 점차 모여들어 거대 농업 사회가 발생했다.

중국의 중원

즉 지리적 차이에 따라 그리스와 중국의 사회 구성원 수가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를 구성하는 머릿수가 다른 것은 황금률 형성에 큰 차이를 가져왔다.


화음을 추구할 수 있었던 그리스

잡음을 제거해야 했던 중국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폴리스엔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했으며 참정권을 가진 사람들을 교육하여 일정 이상의 수준을 갖도록 하는 것도 가능했다. 즉 적은 인구였기에 각자가 주체적 행동을 하더라도 통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시민들은 아고라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는데 통제 가능한 선에서 의견이 오가는 것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리스는 가능하면 시민 각각의 주체성을 조화시키려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주체적 행동을 용인하는 정신은 기독교로 계승되어 행동 촉구의 황금률로써 현현하게 됐다.

그리스의 아고라

반면에 중국 중원의 인구는 상대적으로 많았기에 통솔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 그들을 교육하는 것 모두 불가능했다. 결국 중국은 민주주의를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만약 의사 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모두 고려했다면 중국은 비효율성으로 진작에 망했을 것이다.


대신 중국은 유교적 중앙 집권 체제를 빠르게 도입했다.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보단 엘리트 군자가 중심이 되어 결정을 내리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대중의 주체적 행동을 억제하는 황금률이 유교를 통해 구체적으로 형성됐고 이후 주자학의 이론과도 밀접하게 연결됐다.


주자학에선 끊임없는 수련을 거쳐 군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올바른 실천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는 곧 억제의 황금률을 계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승 과정 중에 대중은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엘리트의 권위에 따르게 됐다.

유교 주자학

 중국 유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


짧게 정리하면 그리스는 구성원의 수가 적어 화음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중국은 그럴 수 없었기에 잡음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런 차이에서 동서양의 서로 다른 황금률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황금률들은 오랜 시간 동안 계승되며 동서양 문명의 문화적 바탕으로써 작용해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배경에서 형성된 동서양의 황금률은 역사면에서 어떤 차이를 가져왔을까? 대표적인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서양엔 교황, 동양엔 황제


교황을 비롯한 유럽의 종교 세력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구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유럽의 암흑기, 십자군 전쟁 등. 유럽의 역사를 논할 때 종교는 항상 빠지지 않는다.


물론 중국에서도 종교가 많은 역할을 해오긴 했다. 하지만 서구 문명만큼은 아니었다. 역사에서 등장하는 종교 반란도 결국엔 황제에 의해 진압당하는 결과로 끝났다. 즉 중국에선 황제가 절대자였다.


왜 유럽과 중국은 위와 같이 종교 면에서 차이를 갖게 됐을까?

황금률을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다.


먼저 서구 문명의 황금률은 포교 활동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교회가 나한테 좋았으니 너에게도 권한다. 이런 사고방식과 행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포교(선교)를 통해 위로부터의 탄압을 이겨내고 대형 종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교세가 강할 땐 교황이 각국의 왕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정도였으니 유럽 전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가능했다.

교황이 황제를 이기다, 카노사의 굴욕

반면에 중국의 황금률은 대중의 행동을 억제했기에 포교를 통한 대형 종교의 형성이 어려웠다. 가끔 굶주림, 혼란 등의 조건과 결부되어 특정 종교의 폭발적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결국 위로부터의 억압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의 종교는 주로 토속적 민간 신앙의 형태로 발달했다. 그리고 지역/씨족별로 각기 다른 신을 섬기는 민간 신앙은 확산 가능성이 낮고 잘 통합되지도 않았다.

중국 민간 신앙

결국 정리하면 서로 다른 황금률로 동서양에서 종교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얘기다. 물론 과정 중에 황금률 이외의 요인이 작용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금률만큼 간단명료하게 동서양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개념도 없다.


그러니까 앞으로 유럽은 저런데 중국은 왜 저럴까? 이런 고민이 든다면 황금률을 떠올려서 머릿속으로 분석해보자. 감이 잡히는 부분이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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