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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Dec 09. 2019

난 원래 예민해

라고 말하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

"난 원래 그래"라는 말을 참 싫어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약속 시간에 자꾸 늦고, 툭하면 잠수를 타고, 무엇보다도 말을 옮기고 다녀서 그러지 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 "난 원래 그래, 알잖아"라며 비판을 회피하던 아이였다. 나는 그 말이 - 늦지 않으려고 일찍 일어나고, 우울해도 걱정 끼칠까 봐 연락은 하고, 상대방의 평판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전부 바보로 만드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치면 다 원래 그렇지 뭐. 안 그래야 하는 순간에는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런데 최근에 들어 깨달았는데, 나도 내게 편리할 때에는 그 말을 잘도 쓰고 있었다.


난 원래 예민해.


"애초에 그런 류의 말투는 용납할 수가 없어."

"상처가 많은 편이라... 앞으로는 그 행동 삼가주기를 바라."

그러면서 이런 "원래 그래, 그러니 네가 조심해"들이 내 관계들을 망치게 두고 있었다. 물론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예의는 좀 지키자 몇몇 무례한 사람들아 결벽을 부리고, 선을 긋고, 벽을 치고. 즉 나는 원래 약해서 잔뜩 상처 받을 것이 너무나 당연하니, 상대방에 조심하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 그릇, 성격이 다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차이는 말 그대로 '다름'인 것이지 우위나 옳고 긇음, 강약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예민하다"라고 포지셔닝함으로써 상대방이 비교적 무던하기를 종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 편하게 생각하는 친구 사이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예의를 기대했고, 연인 관계에서는 특히나 항상 상대방이 나보다 강하기를 요구했다. 내가 민감한 만큼 상대방을 배려하고 아끼는 방식 또한 매우 섬세하고 폭이 넓었지만 그만큼 많이 기대하기도 했다. 당신이 나보다 더 마음이 넓고,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사람이기를. 타고나게 예민한 나를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품어주기를. 그래 - 내 이상형은 어릴 적부터 항상 "스님 같은 사람"이었다.


번뇌를 내려놓은 스님 마냥 마음에 좀 더 빈 공간이 있는 사람이 상대방을 품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좋은 일일 것이다. 직장인인 내가 학생인 친구를 만나면 웬만해서는 밥을 사는 것처럼. 하지만,


상대방이 내게 지갑을 맡겨놓은 듯이 굴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상대방에게 관용을 맡겨놓은 것 마냥 항상적인 관대함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서이다. 본인을 바꿀 생각 없이 상대방의 호의 혹은 마음 씀씀이에 의존하는 태도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자멸시킨다. 그리고 어느 날 상대방의 관용이 사라졌을 때, 권리를 빼앗긴 듯 쓸 데 없는 상처까지 받게 한다. 사실 애당초 내 것도 아닌데.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들이 반드시 홀로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도 통제되지 않는 상처들로 인해 힘들고 우울해지는 그때,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알아서 힘을 내라고 하는 것은 잔인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이 내 인생의 디폴트일 수도 있겠다는 다소 암울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오히려 단 한 명의 구원자(savior)를 찾는 것이 더 위험한 방식이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사실은 아무도 내게 관대함을 빚지지 않았다. 사랑마저도 그런 종류의 계약은 아니다. 즉, 내 예민함을 기꺼이 받아주던 상대방이더라도 언제든지 내 곁을 떠나게 될 수도 있고, 그 후에 나는 예전보다도 더 망가진 모습으로 혼자 남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약한 나라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내 근본적인 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온전한 내 몫으로 인지하는 것이 여러모로 가장 안전하다.


신기하게도 이런 생각들은 나를 우울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무슨 다짐보다도 나를 강해지고 싶게끔 한다. 나는 자주, 험악한 세상에 비해 내가 너무 약한 것 같아 따뜻한 누군가가 나를 끌어안아주는 미래를 꿈꾸곤 했다. '내 모든 지뢰들을 다 파악하고 피해 갈 줄 아는 완벽한 사람을 만날 날이 오겠지'하며.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몇 번 깎여나가고 보니, 그런 헛된 희망은 나를 더욱 피로하게 할 뿐이었다.


난 원래 약해.
그래서 조금씩이나마, 스스로 강해져야 해.

더 강한 누군가가 나를 품어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품어야 해. 내가 내 마음의 온도를 올려야 해. 혼자 웃을 줄 알아야 해. 자주 쓰러지는 건 괜찮지만 안전하게 넘어질 자리를 만들어놔야 해. 혹 정말 운이 좋아서 따뜻한 관계 속에 놓이더라도 무작정 이해받기를 기대하면 안 돼. 언제든지 난 혼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


라고 - 미래의 나를 구해줄 것이 틀림없는 생각들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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