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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Mar 06. 2020

(또) 타투가 하고 싶은 이유

오른쪽 팔꿈치 위에 하나, 왼쪽 옆구리에 하나, 총 두 개의 타투를 새겼다.


팔꿈치 위에는 좋아하는 영어 단어가,

옆구리에는 파도와 별로 이루어진 간단한 선 일러스트레이션 타투가 있다.


엄하디 엄한 어머니가 보시면 그야말로 뒷목을 잡으실 일이지만 2년 동안 도쿄에서 떨어져 산 덕분에 용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한국 집으로 다시 들어왔으니 머리채 잡히는 건 시간문제겠지만... 이렇게 내가 호적에서 파일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타투를 감행한 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그중 가장 큰 계기는 친한 친구 Y가 타투이스트가 되면서 "일단 해봐"라고 쌈빡하게 말한 것이다.


타투 따위,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 중학교 때부터 알았는데,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그야말로 자기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애다. 한국에서 아무도 젤 네일이란 것을 모를 때 일본에서 기기를 사 와서는 나한테 시험하질 않나, 생일 선물로 기가 막힌 돌고래 유화를 그려주질 않나, 담배 뻑뻑 피우며 스쿠터를 몰질 않나. 틀에 갇혀 사는 게 정도이자 유일한 길인 줄 알았던 나에게 Y는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다. 물론 동시에 위태로운 시기도 많았고, 모든 걸 홀로 책임지고 시도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으나 - 그녀는 결국 꽤나 유명한 타투이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웬만한 미술 실험(?)을 나에게 해온 만큼, 이번에도 제 캔버스가 되어달라고 한 것이다.


2년 전이면 막 미니 타투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점이라 "그래 작게 시작한다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한동안 도안들을 찾아보았고, 나는 점점 더 신이 나기 시작했다.


내 몸에 평생 새겨져 있을 어떤 형태를 찾는다.

그 사실이 꽤나 짜릿했다. 좋아하는 가수이자 팔을 타투로 도배한 혁오가 "너무 의미 두고 새기면 빨리 질려요"라고 하긴 했지만, 타투란 게 무의미할 수도 없는 법 아닌가.


타투가 새겨지고, 나는 도화지, 그러니까 -


예술이 된다.

어설픈 예술병에 걸린 나는 이 세상에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다. 그것이 책이든, 번역물이든, 음악이든, 뭐든 좋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 그런데 타투를 새기는 그 행위는 나의 그 흔적 남기기에의 조급함을 조금 진정시켜준다. 내 안에 소재가 차오를 때까지, 글 쓰는 법을 연습하고 작곡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몸 어딘가에는 예술의 한 조각이 묻어있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지향하는 이미지가 나를 대변한다. 지금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 해도 그것들은 유언처럼 남아 나를 표현할 것이다.


유언장을 그림일기로 쓴다면 어떤 형식일까 고민하면서 고른 몇 개의 도안과 단어를 가지고 Y의 작업실로 갔다. 그녀와 기나긴 상의를 하고 처음 받은 두 개의 타투는 참으로 - 하찮고 귀여웠다. 크기도 작고 거의 실에 가까운 얇기지만, 그래도 반팔티나 수영복을 입었을 때 뚜렷하게 보인다. 등 한 쪽을 꽃으로 수놓거나 훤히 보이는 곳에 떡하니 새길 용기는 없었으나 좋은 시작점이었다고 본다.


고작 타투 두 개 새기는 것으로 몇 달간 기분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십몇 년을 보아온 내 지긋지긋한 몸뚱이에 낯설고 예쁜 구석이 생긴 것이다. 아주 잘 보이는 데다 한 건 아니라 샤워할 때 괴상한 자세로 팔을 비틀어야 비로소 구경이나 해볼 수 있었지만, 뭔가 흐뭇한 광경이었다. 화폭의 감정이 이럴까.


동시에, 타투는 나로 하여금 무언가 틀을 깬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미국의 갱스터 타투나 일본의 야쿠자들이 하는 이레즈미 문신으로 인해 폭력과 부적응의 상징으로 기능하던 타투는 최근 들어서야 일러스트레이션 + 얇은 선의 조합으로 조금씩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표현의 형태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아주 고운 시선을 받고 있진 않다. 그런데 가출 한 번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타투를 하다니.


일을 저질렀다!

- 는, 뭔가 유치하지만 동시에 묘하게 해방감이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이랄까.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봤을 때, 대학 시절 애인에게는 잔다고 하고 클럽에 가서 놀았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대XX를 해보았을 때의 기분과 유사하다.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흐트러져보는 경험이랄까.


그리고 나름 바늘로 살을 쑤시는 경험을 하고 나면, 뭔가 조금 더 단단해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을 조금만 감내하면 내가 선택한 문양이 평생 살 위에 남고, 그걸 해낸 나는 또 다른 도전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상, 또 하나의 타투를 추가하고 싶어서 슬쩍슬쩍 디자인을 찾아보는 이 중독성의 원인이 궁금해져서 되짚어본 "타투가 하고 싶은 이유"였다. 다음 타투로는 어깻죽지를 헤엄하는 돌고래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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