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에 800원.
이전 글에서 센터(고물가 지역) 중심으로 보면 대충 호치민 물가가 서울의 1/3이라고 했다.
근데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만은 없기 때문에 결이 좀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본다.
이번에 소개하는 지역은 빈탄(Bình Thạnh)이라고 대학교 많고 중산층들 사는 평범한 동네다. 20대가 많다. 굳이 따지면 약간 신촌이나 이대 근처 같은 느낌의 지역이랄까. 오늘 포스팅의 예시는 신촌이라기보다는 연희동이나 남가좌동 같은 깊숙이 들어간 주거지역이다. 신촌 아니고 그냥 서대문구. 여기는 일반적인 관광객이 올 이유가 없는 지역이다. 개인적으로도 미팅이 있어서 월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일정 보고 다녀도 외국인 1명 보지 못했다.
거두 절미하고, 이 동네에 한 끼에 800원하는 식당이 있다.
식당에 모든 음식 메뉴가 15,000 VND이다. 그러니까 800원이다. 음료는 1,0000 VND. 에어컨 없고, 지저분하고, 썩 좋은 재료를 쓰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테이블이 끈적하고 토핑으로 오토바이 매연 나오는, 다 갖춘(?) 곳이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붕 없이 길바닥에 목욕탕 의자 깔고 앉아서 먹어도 한 끼에 30,000~40,000 VND은 나오건만, 여기는 멀쩡한 지붕도 달려 있는 곳이잖나.
언제 또 오겠나 싶어서 알차게 시켰다. 덮밥 하나, 면 하나, 음료 하나. 메뉴 선정 기준은 그냥 위에서부터 2개 골랐다. 자신 있는 메뉴겠지. 믿는다.
다 해서 40,000 VND 나왔다. 2200원. 양 적지 않다. 평범한 양이다. 다 못 먹었다. 당연히 뭐 재료가 신선하다거나 맛이 의외로 엄청 좋다거나 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가격으로 최대한의 가심비와 든든함(!)을 만들어낸 메뉴였다. 맛은 그럭저럭 은근히 평범하지 않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800원인데 뭘 바라겠나.
그러면 여기서 도대체 이게 왜 가능한지 답을 알아보자.
로컬인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채식식당이라서 엄청 싼 거다. 로컬 식당도 보통 한 끼에 4만 동한다.
부처님이 보증하시는 채식식당이다. 살생을 하지 마라는 말씀. 처음에는 식당 주인이 불심이 대단하신가 했는데 그게 아니다. 채식인증 마크 같은 거다.
아무리 채식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싸나? 싶다. 한국은 채식이 오히려 비싼 느낌도 있고. 여기도 중심가에 잘 정비된 채식 레스토랑은 비싸다. 그러나 여기는 쌩 로컬. 쓸데없는 거품이 없다. 계산이 쉽다. 그냥 재료비가 싸다. 야채가 싼 건 단순히 공급이 많아서 그렇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베트남은 식자재만큼은 엄청나게 풍부하게 나는 곳이다. 인도와 더불어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이고, 우리나라 식당의 오징어는 죄다 베트남산이고, 메콩강 담수어 수확량은 세계 최대다. 쌀도 1년에 3번 수확하는 판국에 풀떼기 따위야 비만 오고 나면 쑥쑥 자라는 것이다! 길바닥에서 줍는 수준이다.
로컬 채식 식당의 800원짜리 덮밥이 베트남과 한국의 생산 시스템, 기후, 삶의 우선순위 등등이 근본적으로 왜 어떻게 다른지를 추론하는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는 말마따나 굶어죽는 사람은 없는 거다. 모르긴 몰라도 초목근피나, (똥꾸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없을 거다. 그런 경험이 없으니 그런 언어가 있을 리가 없다.
이 몬순의 나라에, 배 곪는 자는 없게 하라는 부처님의 자비가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