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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이노 Mar 31. 2023

'구로동 주식 클럽'을 읽고

2023년 내가 사용했던 모든 돈들에게 2



나는 책을 편식한다. 편독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은 거의 읽지 않고 경제경영, 자기계발 관련 도서와 수필만을 주로 읽는다. 경제경영과 자기계발이야 내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재테크 쪽이고 공부가 필수인 분야이니 당연히 책도 많이 읽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제 인물이 써내려 간 수필만 읽고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유튜브에서도 마찬가지다. 상황극이나 콘셉트와 캐릭터가 있는 영상들보다는 비록 완전 날것이 아닐지언정 꽤 자연스러워 보이는 브이로그 위주로 영상을 보곤 한다. 내가 브런치를 아주 좋아하는 이유도 글 속에 실제 사람들의 삶이 향기처럼 배어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왜 때문에 내가 소설을 더 이상 안 좋아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분명 어릴 때는 해리포터 시리즈도 즐겁게 읽었고 만화책도 종종 보고, 오히려 반대로 실용 서적보다는 소설을 더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도 2D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지면서 소설 또한 가까이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드라마도 원체 잘 안 보고, 요새는 그렇게 좋아하던 영화도 거의 보지 않는다. 상상력이 완전히 말라붙고 오로지 현실, 현실, 현실에서 재미를 찾는 사람이 나 같다고 할까. 실제로 (과몰입하려는 건 아니지만) MBTI도 ENFJ에서 ISFJ로 바뀌었다. 아마 취업을 하고 나서 지금의 현실적인 성격이 더 강화된 것 같다. 하지만 실용 서적과 수필을 읽을 때 정말 재밌고, 일상이나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난 스트레스받을 때 책을 읽는다. 책에는 인터넷에 없는 지식과 정보가 가득하고,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좀 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준비를 갖춘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기쁨일 때도 있다.


소설에는 대개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각각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작중 행적이나 대사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파악되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그런 과정이 그다지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고민을 해보면 일단,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 역시 공감되기보다는 나와 아주 멀리 동떨어진 '만들어진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읽은 소설들에서 주인공은 그다지 공감가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구 이 바보야!) 또 혹여 공감 가는 캐릭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작품 안에서만 존재하는, 내가 만날 수도 본인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도 없는 존재라고 느꼈다. 소설은 작가 마음대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캐릭터들이 작가가 짜놓은 판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소설을 잘 안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멀쩡하고 좋은 소설들도 충분히 많을 텐데 내가 그동안 이상한 소설들만 읽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확실한 건, 소설책을 펴서 누구가 누구와 만나서 무슨 밥을 먹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식의 내용을 읽다 보면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이걸 읽을 바에 주식 투자 실제 경험담을 읽거나 부동산 투자 기본서를 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의 인생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까지 하고 싶은 소설을 발견했다.


한때 나는 영화를 정말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정말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그만큼 좋은 영화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영화는 이 부분이 조금 아쉽고, 어떤 영화는 참 이것만 바뀌면 완벽할 텐데 하는 생각도 한다. 그나마 이 정도 퀄리티는 감지덕지다. 한 장르를 파다 보면 결국 재밌는 영화는 다 보고 재미없는 영화들만 남는다. 그럼 이제 새로운 명작의 탄생을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기존의 명작을 되풀이하여 볼 뿐이다. 정말 뛸 듯이 기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난다면 로또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영화를 볼 때의 설렘이나 가슴 절절함도 점점 약하게 느껴진다. 점점 무뎌지고 덜 감동받는다. 이건 사실 맛있는 음식을 먹든, 좋은 곳에 여행을 가든 어찌나 인간이 좋은 것에 금방 적응하여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는지 생각에 관한 생각이나 사피엔스를 읽으면 아마 나와 있을 것이다. (확언은 못 함) 그래도 이런 적응과 망각 덕분에 인간은 충격적이거나 슬프거나 아픈 일도 시간의 도움을 받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가끔씩 재발견하는 소소한 행복에 기뻐할 줄도 아는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감사한가.


'구로동 주식 클럽'의 작가는 '살려주식시오'라는 책을 쓴 정신과 의사 박종석님이다. 주식에서 큰 손실을 본 정신과 의사라니, 도대체 주식이란 어떤 것이기에 정신과 의사조차 멘탈붕괴하게 만드는 것인지 (죄송하지만) 호기심이 가서 집어 들었던 책이다. 2년 전쯤 일이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솔직히 끝까지 다 읽지는 못 했던 듯하다. 그즈음에 나는 꾸준히 미국 배당주를 모아가고, 조금 뒤늦게 한국 주식도 시작했던 때였다.


그 후 박종석 선생님은 유튜브나 경제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도 종종 뵌 적이 있다. 그동안 코스피 3000을 찍었던 한국 주식은 2018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갔고, 자연스럽게 나의 주식에 대한 관심도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 후 배당을 받으면 재투자를 하기는 했지만, 달러 환율도 많이 오르고 여유 자금도 별로 없어서 적극적으로 주식 투자를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딱 그즈음부터 어떤 덕질에 미쳐서 1년 정도 불타올랐다가 탈덕하고, 또 다른 덕질에 올인했다가 다시 탈덕을 하고 나니 미 연준 기준 금리가 6% 가네 마네 하는 세상이 되어 있었다. 대학교 때 5% 예금을 들면서 이걸로 노후 대비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저금리 시대 때만 해도 다시는 5% 금리를 못 볼 줄 알았다. 근데 이게 웬 걸, 배당킹 주식의 배당률보다 5천만 원까지 원금 보장되는 예금 금리가 훨씬 높은 세상이 오다니. 다시 내 주식들을 살펴보고 안전한 예금으로 옮길지 아니면 이대로 유지할지 결정해야 하는 때가 왔고, 나는 요새 2020년 10월 처음 주식을 시작했을 때처럼 다시 주식 공부를 하고 짠테크를 병행하고 있다.


재테크 관련된 전자책 신간(내 기준)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던 중 '구로동 주식 클럽'을 발견했다. 사실 처음 책을 마주했을 때는 박종석 선생님이 쓴 소설이 과연 재미도 있을까? 기대가 별로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정말 좋은 책을 만나는 건 1년에 두세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 데다가 소설이기까지 했으니... 하지만 예전에 정신과 의사 분이 쓴 수필을 읽은 적이 있는데, (분명 알아서 잘하셨겠지만) 글의 형식이 소설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이렇게까지 환자들의 내밀한 사정을 다 드러내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환자들의 동의를 다 받으셨겠지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가 나의 얘기를 드러내는 것도 꺼려하는데, 하물며 남이 그것도 담당 정신과 의사가 내 얘기를 책으로 낸다면? 남들에게 숨기고 싶고 거론하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을 이야기일 텐데... 그것들을 누가 책으로 만들어 남들과 공유하고 또 나에게 들이댄다면 난 정말 괴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구로동 주식 클럽'이 소설이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구로동 주식 클럽'의 주인공 박준수는 정신과 의사이고, 구로동에서 주식 중독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찾아보니 박종석 선생님도 구로동에서 주식 중독 클리닉을 운영하고 계신다고 한다. 박준수와 박종석. 작가의 배경을 조금 아는 상태로 한 장 한 장 책 속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팩션 작품이라는 확신이 든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상이고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실이 때로는 소설보다 가혹하지만, 또 소설이 현실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 아니겠는가. 후반부에 나오는 소재도 검색해 보니 실제로 존재하는 거라서 웃음이 나왔다.


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각 인물들과 상황들은 정말 우리 주위에서 살아 숨 쉴 것처럼 생생하다. 그들의 사연은 실화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구로동 주식 클럽'을 통해서 소설의 맛을 알았다. 이 책은 소설이기 때문에, 실존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동시에 분명히 어딘가에는 이런 사람들이 실존할 것이라는 확신을 동시에 가지게 하는 특별한 소설이었다. 역시 내가 소설을 안 좋아했던 건 소설 장르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던 걸까...? 희한하게도 나는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행복을 기원하게 되고, 또 어딘가에 그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게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정말 재밌었다. 영화로도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3시간도 안 걸려서 다 읽었는데, 만화방에서 1시간에 코난 만화책 한 권 읽는 나에게는 그만큼 이 책이 재밌고 술술 읽혔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 보면 작품 자체의 구성도 정말 좋고, 작품 전반에 스며들어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져서 더더욱 좋았다.



언제부턴가 저녁을 먹고 유튜브를 틀어 놓은 채 편안한 자세로 누우면, 정말 집중해서 봐야 하는 영상이 아닌 이상 꼭 스마트폰을 손에 들게 된다. 어떨 땐 게임, 어떨 땐 네이버 팬카페, 어떨 땐 인스타그램, 또 어떨 땐 주식 어플... 그때그때 내가 가장 몰입해 있는 분야에 시시 때때로 손이 가고 계속 계속 확인을 하곤 한다. 나는 Kodex 200 틱 차트만 봐도 심장이 쫄리는 쫄보이고, 며칠 간격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주식을 단타 해볼 요량으로 27만 원어치도 사봤지만 다시는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역시 단타는 내 길이 아니구나 하면서 원래대로 모아가는 투자를 하고 있다. 나는 곧 다시 내 주식 계좌를 잊고 다른 취미에 몰입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구로동 주식 클럽'을 읽으면서 그래도 내 투자 방법이 아주 잘못되지는 않았구나 위안을 얻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나는 유튜버가 한 명 있었다. 그분도 박종석 선생님께 상담을 꼭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억을 잃었지만 아직 그분은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분께 이 책을 선물하고 싶지만 주제넘는 일일 것 같다. 대신 오늘날 주식을 하는 모든 개미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성공적인 투자와 행복을 기원하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6835979



P.S. 박종석 선생님도 브런치를 하고 계셨다!

https://brunch.co.kr/@silveray1008#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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