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내가 사용했던 모든 돈들에게 12
이제 2023년의 찐찐찐 마지막 달이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의 변화가 있어서 일 년이 다채로움에 감사하다. 평일과 주말이 나뉘어 있고, 매일이 모여 한 주, 한 달, 일 년이 되어서 좋다. 만약 일 년 내내 날씨가 똑같았다면, 주말이 없었다면, 월초와 월말과 연초와 연말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은 한층 더 지겨웠을 것이다.
요새는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한다. 20대 중반만 되어도 어르신(?) 취급을 받는 유별난 문화에는 전혀 공감하지 않지만, 어느 순간 세상과 단절된 나이 든 내가 될까 봐 두렵다. 나에게는 자식도 손주도 없을 예정이니 스스로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해야 세상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의식주, 여가, 의료, 공동체 서비스를 제공하는 좋은 실버타운들이 훨씬 더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kgoPQbnbDiI
https://www.theclassic500.com/board/service.do
솔직하게, 지금 출근을 좋아서 하느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오늘 당장 직장을 그만두어도 미련이 없다.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만 마련되면 굳이 스트레스받으며 정년까지 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이 싫다면, 놀기라도 엄청 좋아해야 하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도 없다.
만약 은퇴를 해서 매일매일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라면 결국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풍성한 은퇴 생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니까~ 하며 한 달에 한두 번 겨우 나가서 노는 삶이 좋다. 내 직장은 집에서 가깝지 않고, 월급도 적고, 미래도 밝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 근로 시간이 적고, 그래도 정년까지 계획을 세워볼 수 있고, 안정적으로 월급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현재는 아주 좋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환경이고,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보람도 있어서 좋다. (심지어 사주랑도 잘 맞는 직업임) 사람을 싫어하는 내가 강제로 사회생활을 하고, 매일 아침 일어나 씻고 가야 하는 곳이 있어서 사람 꼴을 하고 살아갈 수가 있다. 사실 대학교 1학년 때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부터 일할 때 힘든 것보다는 내가 직접 버는 내 돈이 내 손으로 들어온다는 게 더 행복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YLoq9QfN5U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하고 싶은 것, 죽을 때까지 이것만 해도 행복하겠다 싶은 것, 약간의 노력과 시간 투자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분들이 낚시나 운동에 즐거이 전념하듯 말이다. 예전의 나는 그게 PC 게임인 줄 알았다. 방학이면 게임에 열중하느라 밥도 대충 먹었다. 고3 때 공부는 안 하고 PC방 가서 게임하는 게 낙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전처럼 게임이 재밌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생긴 이후로는 PC 게임이든 콘솔 게임이든 더더욱 큰맘 먹고 가끔이나 하는 일이 되었다.
나는 책 읽는 것도 무척 좋아하지만, 어떨 때는 책을 열심히 빌리기만 하고 읽지를 않는다. 그냥 집에 가면 씻고, 저녁 먹고, 누워서 스마트폰 게임하고, 유튜브 보다가 잔다. 출퇴근 길에도 눈 감고 있으면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간다.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동선 상 가장 가까운 기계 하나만 죽어라 쓰는 거다. 사람의 행동을 교정하고 싶다면 환경을 바꿔 주어야 한다.
사실 집에서는 어떤 자세로 책을 읽어도 편하지가 않다. 결국 누워서 책을 보니 몇 장 읽다가 불면증도 없이 잘도 잔다. 유튜브 틀어 놓고 스마트폰 보는 게 최고로 편하고 재밌어서 집에 가면 도저히 책이 펴지지 않고, 조금 읽다가도 금방 다른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출퇴근길에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는다. 무게가 가벼운 책을 선호하게 되고, 토씨 하나까지 다 읽을 생각보다는 그냥 술술 넘기면서 하루 이틀 안에 한 권을 다 읽고 반납하는 패턴이다. 오히려 집중도 더 잘 된다.
올 한 해 꾸준히 내가 사용했던 모든 돈들에 대해 결산하고 고민해보고 있다. 나의 소비를 돌이켜보며,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일들에 큰돈이 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달 덕질 비용은 3,500원. 음원 하나, 이모티콘 하나 산 게 전부다. 손민수 맛집 탐방을 제외하고 콘서트 한 번, 팬미팅 한 번이면 일 년 덕질 비용 35만 원 이하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생이 앨범도 사고 음원 스트리밍도 하고 소식도 다 물어다 줘서 내가 돈을 안 쓰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기록을 해보니 알겠더라. 나는 쏟아지는 떡밥 속 직캠이며 자컨이며 최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보다, 콘서트 마지막 날 딱 하루 가는 게 더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면서 돈이 꽤 드는 세 가지를 꼽아 보면 콘서트, 해외여행, 소중한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기가 있다. 국내 여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남들이 꿈꾸는 캠핑이나 한 달 살기에도 아직은 취미가 없다. 매년까지도 바라지 않고 그저 2-3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꼭 가고 싶다. 이 취향의 연장선으로, 소중한 사람들과 국내 여행을 가는 것보다는 해외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게 더 행복하다. 호주 여행이 그랬고, 파이브가이즈가, 다양한 손민수 맛집 탐방이 그랬다.
나는 내가 파이어를 할지, 연장된 정년을 꽉꽉 채워서 다닐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든든한 자산을 갖춰 놓으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어떤 결정이든 자유롭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나의 직장이 사라져 버려도 괜찮을 것이고, 건강을 해칠 것 같으면 내가 먼저 일을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정년까지 내가 최대로 모을 수 있는 돈을 계산해 보았다. 그렇게까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큰돈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부분도 있다. 금융 자산 5억을 돌파하면 연 1억 자산 증식도 꿈이 아니다! 시간은 많으니 고민도 하고 실천도 해보자. 40세까지 바짝 모으며 긴 호흡으로 투자를 해나가자. 나는 잘 해낸다. 나는 월 천만 원 이상을 쓸 수 있다. 나는 내 인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
1. 저축: 65만 원
- 청년희망적금 50만 원
- 주택청약종합저축 10만 원
- 연금 및 상조회 5만 원
2. 투자: 약 164만 원
- 주식 예수금 입금: 50만 원
- 수익금 재투자: 1,145,426원
3. 지출: 492,845원 (월 예산 7,155원 남음)
- 고정비 165,460원 (교통비, 통신비, 보험료, 헌금 포함 / 십일조 제외)
- 약속 3번 / 가족모임 1번 / 문화생활 3번 (영화 1번, 전시 2번) / 경조사 1번 (결혼식)
4. 부수입
- 현금성 부수입 112,490원
카카오뱅크, 페이북, 토스, 모니모, 설문조사, 모티너스, 탄소중립포인트 녹색생활실천 등
- 지출방어 부수입 197,700원
GS25 1만 원, CU 2천 원, 네이버페이 1만 1천 원, 문화상품권 5만 4천 원, 스타벅스 3만 원 권, 아메리카노 톨 4잔(18,000원), 아티제 아메리카노 쁘띠 1잔(4,900원), 메가커피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4,000원), 아메리카노 1잔(1,500원), 맥도날드 제로콜라 1잔(1,700원), GS25 닥터유 에너지바(1,200원), 비타500(1,000원), 새콤달콤 딸기(500원), 롯데리아 더블엑스투버거 세트(8,700원), 리더스코스메틱 기초 세트(1만 6천 원 상당), 메디쥬얼리 클렌징폼(3천 원 상당), 연고밤(2만 4천 원 상당), 여성 면도기(6,200원)
5. 후기
이번 달에는 돈을 정말 잘 아꼈다. 쓸데없는 소비를 거의 안 했고, 월말에 예산도 꽤 남았다. 12월에 돈 쓸 일이 많아서, 11월에 남은 예산을 미리 탈탈 털어 썼다. 다음 달에도 나는 50만 원 이하 소비를 성공한다. 그렇게 완벽한 2023년 마무리를 한다.
공모주 투자를 열심히 하고 있다. 대부분 소소하지만 확실한 수익을 얻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상장일 시초가부터 마이너스가 난 종목이 있었다. 하필 1주도 아니고 5주를 받아서 진땀 뺐지만, 물타기를 해서 이틀 차에 겨우 탈출했다. 또 한 번 단타는 내 길이 아님을 되새겼다. 팔고 오른다고 후회하지 말고 안 팔고 내린다고 후회하지 말자!
써브웨이 우즈정식을 먹어봤다. 파마산 오레가노가 품절이라 토스팅한 허니오트 15cm 쉬림프에 슈레드치즈, 에그마요 추가, 베이컨 추가, 절임류는 올리브만, 소스는 핫칠리와 스위트칠리와 랜치! 풍성하고 든든한 맛이었다. 11,1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이지만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벼르고 벼르던 경양식 돈까스집과 일식집에 갔다. 그리고 동생한테 코다리 냉면, 초밥을 얻어먹었다. 대신 나는 피자와 치킨, 해쭈가 인스타에서 광고한 두찜 시래기 찜닭을 사줬다. 시래기 찜닭이 신메뉴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출시된 지 1년이 다 된 메뉴였다 ㄴㅇㄱ (2022년 12월 6일 출시!) 두찜에서는 치즈 까만 찜닭, 마라 로제 찜닭을 먹어 본 적이 있는데 양이 적었다. 특히 마라 로제 찜닭은 김가루, 참기름에 비벼 먹을 국물조차 없었는데, 시래기 찜닭은 국물도 많고 집밥 같은 맛이라 나쁘지 않았다. 아빠가 소면을 삶아 주셔서 같이 먹었더니 어탕 국수 같았다. 평소 치킨무를 안 좋아해서 냉장고에 여러 개 넣어 뒀는데, 찜닭이랑 너무 잘 어울려서 즐겁게 냉파 했다.
마지막 남은 메밀면으로 불마요 국수를 한 번 더 해 먹고 불닭 소스가 많이 남아서, 로제 파스타에 넣어 보았다. 한 냄비에 면 먼저 삶고 닭 안심 익히면서 불닭 소스로 간하고, 로제 소스 넣어서 끓이다가 면과 합체했더니 안 맵고 꽤 괜찮았다. 이름하야 불닭 로제 파스타!
500ml 샴푸 4개를 개당 4,325원에, 250ml 섬유 탈취제 2개를 개당 2,359원에, 오버나이트 생리대 60개를 개당 139원에, 비빔면 8개를 개당 437원에 샀다. 필수로 구매해야 하는 물품 목록을 미리 써놓고 한참 있다가 진짜 필요한 시점에 사려고 하는데, 존버하다 보니 아빠가 파스타면도 사주고 엄마가 샴푸바랑 트리트먼트바도 주시고 했다. 개이득! 바디워시는 조만간 하나 사야 할 것 같긴 한데, 하여간 올해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안 사려고 한다.
연말이 되면 노동조합에서 '임금 단체 협약 요구서'를 보내주신다. 코로나 이후 1도 반영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전보다 나아질 것을 기대해 본다. 희망이 있기에 힘이 난다.
모두들 의미 있는 연말 보내시고, 한 해 마무리 잘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