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소중한 것들
일이 너어어어무 바빴다. 회사에서 1년 중에 가장 큰 행사가 나의 담당이라 약 한 달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이라 정말 허덕이면서 했다. 출근해서 화장실을 한 번 갈까 말까 할 정도로 심각하게 계속 일해도 끝이 안 보여서 야근에 조기 출근에 주말 출근까지 했다. 모두 무급 근무였다.
지금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며 졸린 눈으로 집에 가고 있다.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은 거야!
부서도 바쁜 시기라 업무 시간에는 전화가 끊임없이 울린다. 막내로서 전화도 땡겨 받고, 이런저런 잡일도 해야 하다 보니 차라리 전화를 안 받아도 되는 퇴근 이후 시간에 일에 집중이 잘 되었다. 택시비 지원은 안 되지만 그래도 저녁 식사는 꽤 자유롭게 배달시켜 먹을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집에서는 뭘 안 시켜 먹는 점도 좋았다. (아 졸려)
그래도 내년에 같은 일을 하면 훨씬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경험의 힘이다.
이렇게 내 몸이 세 개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바빴음에도 다행히 번아웃은 오지 않았다. 왜일까?
일단,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절대 나 혼자 할 수 없는 큰일에 정말 정말 정말 많은 도움들을 받았다. 모두가 책임감 있게 일해서 좋았고, 다 함께 이뤄낸 결과도 매우 좋았다. 일 잘하는 여러 사람들과 협업하며 서로 응원하고 칭찬했다. 특히 전임자가 잘 이끌어 줘서 초보자인 나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안 썼다. 할 건 다했다. 팬미팅도 가고, 전시도 보고, 맛집도 다녀오고, 피크민도 열심히 했다. 쓸 데에는 잘 쓰고 안 쓸 데에는 안 쓰니 만족도도 높고 적은 돈으로도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목요일 0시 30분에 지하철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담)
바쁘니까 자연스럽게 소홀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게임, 소중하지 않은 인간관계, 유튜브가 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던가보다. 주말도 정신없이 보내니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는 시간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밤 11시 반까지 야근을 했다. 어째 퇴근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와 이 시간에 지하철이 만석이라고?) 생각보다 평일 밤에는 서울 지하철이 아주 늦게까지 운영한다는 걸 알게 됐다. 배차간격이 길긴 하지만, 확실히 앉아서 갈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그래도 너무 졸리다. 아이패드라서 계속 오타가 나는 줄 알았는데 폰으로 해도 마찬가지네. 이렇게까지 늦게 집에 가고 싶진 않았지만 할 일을 다 해야 했다. 한 달 반 만에 휴가를 냈다. 드디어 내일은 쉰다! (방금 한 정거장 전에 내릴 뻔했다. 아니 사실 내렸다가 다시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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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고 집에 와서 기절했다. 금토일 동안 원 없이 쉬었다. 아 중간중간 일을 했구나. 어찌 됐든 최대한 집에만 있었고, 미뤄뒀던 영화를 드디어 봤으며 그렇게 그리워하던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주말 출근 하고 턱 밑까지 일이 몰려왔을 때에는 월요병이 뭐야? 당장 출근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런데 금요일 하루 쉬고 나니 월요일에 출근하기가 정말 싫었다. 꼭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그리고 전에 없던 짜증도 조금 났다.
그리고 허무했다. 막상 일을 잘 끝냈을 때에는 북적북적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말도 듣고 즐거웠는데, 마무리까지 다하고 나니 이상한 허탈감 같은 게 있다.
게다가 마음은 내년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소용없게 됐다.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여유 있는 3월을 기대했는데 더 정신없어지겠다. 단언컨대 안 해도 되는 야근을 억지로 한 적은 없다. 다만 마감을 위해 너무 정신없이, 몰입해서 일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평소의 잔잔함에 불안감 또는 지루함을 느낀 듯하다.
그래도 나는 감사하다. 성공 경험을 통해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니까.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목표를 꿈꿀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내일은 월급날이다. 연말정산 환급 등으로 인해 평소의 1.5배에 달하는 금액을 받을 예정임에도 큰 감흥이 없다. 오해는 마시라! 나에게 돈은 여전히 소중하다. 다만 돈보다 소중한 모든 것들에 대해 깨닫는 매일이다. 나의 작은 호의가 상대의 마음을 열고, 세상을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 푹 쉬고 다시 한번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