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K 일반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ewist Feb 14. 2021

딱 이틀까지가 좋았습니다.

설 연휴 본가에서 행복한 시간은 딱 이틀!

명절 연휴에는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을 즐겨했으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혼자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어서 어떻게든 명절 전날과 당일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집안의 막내아들로 항상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던 나였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니 귀여움보다는 징그러움이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설 연휴에 받던 용돈이 그리웠으나, 이제 많이 생겨버린 조카들로 써야 하는 씁쓸할 행복도 느낀다.


이번 설 연휴는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 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합법적으로 5인 이상 집합 금지이기도 하고, 이동 자체가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필자도 가지 않을까 살짝 고민했지만, 혼자서 제사를 지내실 아버지는 차마 보지 못하여 바로 내려갔다. 가족이라는 단어만으로 참 힘이 되는 존재이고, 자주 보지 못해도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존재만으로 고마운 존재임은 부정하지 못한다.


"결혼"

하지만, 불길한 예상은 항상 빗나가지 않았다. 본가에 내려가자마자 먹은 첫 식사의 주제는 내 결혼이었다. 최근 들어 마음만 먹으면 결혼을 할 수 있을 거고라고 긍정 회로를 돌리시던 부모님이 가지고 계신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사촌 동생의 결혼 소식도 들려오니 이게 진짜 압박이라는 것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마음을 먹어도 되지 않는 게 결혼이라고 이야기도 해보고, '선'이 들어오면 바로 이야기해달라는 나의 간곡한 요청도 씁쓸한 웃음으로 넘겨주신다.


"잠"

혼자 거주를 하다가 본가에 오면 왜 그런지 잠이 온다. 안방에 있는 돌침대에 누우면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일만 했던 사람처럼 잠을 자기 시작한다. 여느 때와 같이 계속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을 잤는데도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또 잤다. 불길한 예상은 항상 빗나가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내려와서 계속 잠만 자고, 결혼도 못하고 있는 아들이 답답했을 법도 하다면 이해가 가지만, 이 신호는 내가 본가를 나와 내 거주지로 나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준다.


"제사"

본가에 내려온 이유는 '제사'였기에 제사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게 끊나 버렸다. 몇 번 엎드리는지 매번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고, 마지막 긴 인사를 나누면 끝났음을 느낀다. 어느덧 삼촌이란 사람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생각도 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서 지내는 제사가 벌써 2년이 넘어가지만, 뭔가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래도 편안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리두기의 힘"

친척들과의 거리두기는 너무나 필요했는데, 올해 설에서는 더 거리를 두어서 덜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국 생활이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우리 가족이지만, 우리 가족의 가족들의 폭넓은 오지랖과 괜한 걱정들은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주긴 한다. 오히려 직장동료보다도 못한 관계로 변하기도 하는 것 같다. 할많..


"딱 이틀"

'12시가 되면은'의 주인공 같이 나의 경우에는 이틀을 넘기면 항상 잔소리 공격이 들어온다. 딱 이틀까지는 좋고, 더 길어지면 뭔가 안 좋은 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필요 없는 말을 해서 상처가 되기도 하고, 안 좋은 점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제사는 시점 or 48시간이 지나면 바로 혼자 사는 나의 집으로 도망치듯 나온다. 마지막 인사는 애써 웃으며 '다음 명절에는 며느리 데려올게'라고 일단 이야기는 한다.


계속 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피곤하고.. 내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돌아온다. 미안!

매거진의 이전글 나 빼고 돈을 다 버는 것 같은 세상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