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앞에 선 이들을 위한 작은 우화

9. 반지 이야기 vol.3

by 글로그림 Geullogrim

손가락은 열 개니까 열 개의 반지가 끼워져도 뭐 놀랄 일은 아니지.

좀 익숙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 새로웠다고 해야 할까?

반지는 반갑게 인사했어. 새로 온 반지는 좀 크고 더 화려해 보였지. 왠지 모르게 반가움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지.


나 말고 또 다른 반지가 꼭 필요한 걸까?


새로 온 반지는 늘 그 손가락에 끼워져 있지 않았어. 참 이상했어.

반지는 늘 손가락에 끼워져 있어야 하는 건 줄 알았거든. 귀걸이와 목걸이는 주인이 잘 때나 샤워할 때는 서랍 속에 들어가 있었어. 그들은 아주 잠깐만 사용되었지.

그래서 나는 원래 그런가 보다 했어. 손가락에서 빠질 수 없는 반지만의 운명이라 생각했지. 손가락에 끼워졌다 빠졌다 하는 새로 온 반지를 만난 후 그런 나의 생각은 완전히 깨지고 말았어.


곰곰이 따져보니 그 반지가 끼워진 날은 어딘가에 가는 날이었어.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었고, 밝고 명랑한 기운이 넘치는 곳을 많이 가게 되었지. 상처가 생기는 일들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어. 그러나 그 반지가 서랍 속에 들어가고 나면 고된 일들이 찾아왔어. 반짝임은 필요 없는 일들 말이야.


그렇게 비교가 시작되자 기운이 쭉 빠져버렸어.


아무리 날 보듬어주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해도 그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어. 나도 좀 쉬고 싶다는 생각들로 가득해졌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 작은 상자 속 어둠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점점 불만이 늘어만 갔지.


또다시 그 반지가 여인의 손에 끼워진 걸 보니 오늘은 고된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 안도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감정이 느껴지면서 큰 한숨이 터져 나왔지.

그때 그 반지가 나에게 말을 걸었어.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모습으로 말이야.


그리곤 매일 그렇게 손에 끼워져 모든 것을 주인과 함께할 수 있어서 부럽다고 말하는 거야. 나는 한마디 하려고 입을 크게 벌리려다 곧 그만두고 말았어.

그건 그 반지가 나의 삶을 다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걸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 반지가 본 건 단지 내 삶의 단편일뿐더러 그 단편이라는 것도 그 반지가 끼워질 때마다 볼 수 있는 삶의 즐거운 부분들이었다는 사실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자 ‘늘 손가락에 끼워져 경험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네가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어.

왠지 아무리 말해도 배부른 소리라며 힘들어도 좋으니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핀잔만 돌아올 것 같았거든.


어두운 곳에서는 삶의 어두운 부분도 보이지 않기 마련이니까.


그는 내 삶의 고통스러운 부분을 알 수 없겠지만 굳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싶지 않았어. 경험하지 못한 삶은 늘 부러울 테니 말이야. 사실 나도 서랍 속 삶이 부러웠으니까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내 삶이 부럽다는 그의 말이 나에게 힘이 되기 시작했어.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그 삶을 누려야겠다고 말이야.

나를 부러워하는 그 생각이 나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어 더 큰 진실이 되도록 해야 할 것 같았어.


그동안 불만과 불평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 부끄러워졌지. 이제 나는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어.

우울하게 빛을 잃고 있는 삶 대신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그 삶을 즐기기로 말이야.

찬물에 빠지거나 거친 물건에 긁히더라도 누군가가 손에서 빼기 싫은 소중한 반지의 본분을 다하기로 말이지.

이전 09화갈림길 앞에 선 이들을 위한 작은 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