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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Dec 23. 2020

패러다임의 전환

모피어스가 건넨 빨간약

시작은 코로나19 였다. 


전 세계인의 삶의 패러다임을 강제로 전환시킨 사건에서 나라고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동안 고민했던 일들을 꺼내 볼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이 시간들은 모피어스가 건넨 빨간약 보다 더 강력한 각성효과를 주었다. 


그동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 삶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살펴보지 않았다.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감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기 정도로 치부하고,

원인에 대한 깊은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노력이 부족했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면 언젠가 입봉 (영화감독 데뷔)이라는 단 열매를 먹을 거라고 나를 다그쳤다. 


그동안 일하면서 나름 저축도 하였고, 앞으로 1년 정도 시나리오에만 집중하겠다고 계획도 짰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서 극장 수입은 곤두박칠 쳤고,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들은 줄줄이 넷플릭스로 향했다. 

올 초에 촬영을 끝낸 작품은 연말 개봉 목표로 달려갔는데, 

소스 촬영을 해외에서 찍어야 해서 완성조차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화는 작업을 위해 50-100명 단위로 움직인다. 

코로나 2.5단계를 지나고 있는 지금 헌팅 장소에서는 국가 방침이라면서 퇴짜를 놓고, 

일부 현장은 확진자로 인해서 몇 주간 촬영이 중단되었다. 

올해까지는 투자 진행하던 영화들이 있어서 스텝들이 그나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부 투자사들은 내년엔 투자를 중단한다고 선언 한 상황이다. 


나는 앞으로 뭘 하지? 

아무것도 이뤄 놓은 게 없는 예비 감독 지망생들은 어떻게 명함을 내밀지? 

기존 감독의 영화들도 엎어지기 일 수이고, 

이미 작품을 만들어 놓은 동료 감독들의 영화 스코어도 처참했다. 


술자리에서만 토로했던 영화 시스템의 원론적인 고민들을 이제 와서 수면 위로 꺼내본다. 


상영시간제한에 따른 영화 구조의 한계.

위계질서가 명확한 영화 작업 현실의 시스템적인 한계. 

투자 자본 소스의 제한으로 인한 이야기의 다양성 부재. 

투자받아서 제작되고, 거기에 따른 수익배분의 구조적 부당함. 


구글, 넷플릭스.. 가깝게는 출판업계에서도 전자책이나 독립출판을 하며 혁신을 하고 있지만,

영화 현장에서는 논의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의 영광을 곱씹으며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버티고만 있을 뿐이다. 

내가 투자사나 제작사를 차려서 판을 짠다는 수준이 아니라 

대다수가 노비일 수밖에 없는 이 시스템의 한계를  인정하고 여기서 탈출해야 하는 거다. 


영화는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만 소비되어야 한다는 게 누구의 입장인가?

많은 개인들이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고, 부동산에 구애받지 않는 공유 스크린 플랫폼도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들어가는 제작비는 다른데 티켓값이 고정이 되어 있다는 건 영화의 마진율이 단기 임대수익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유튜브라는 개인 송출 시스템이 갖춰진 환경에서 시스템만을 탓하며 안주하고 있다면 나는 그냥 불만만 많은 사람일 것이다. 

늦었지만 나만의 목소리를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민폐 끼치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방법들에 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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