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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Jul 20. 2023

김코치의 상담실 #14. 요약병에 걸린 비즈니스 판

축약과 요약을 구분 못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어요



어떤 조직에 합류하든

우리는 말부터 배운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요건 중 하나가 '요약'이다. 

'속도감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요구받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문화처럼(국룰)' 자리 잡았다. 기왕 하는 말과 글을 '한자어, 축약어, 숙어 등'을 활용하여 최대한 효율적으로(길지 않게) 대화하며, 그로 인해 대화량의 효율까지 높이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일을 잘한다 혹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 미생 중
드라마 미생 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역회사(종합상사) 답게 무역 용어를 익혀야 일을 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최대한 간결하고 정돈된 표현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종의 '보고서형 어투'이다. 특히, 드라마 중에는 대리가 신입을 조련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더 줄여보세요"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며, 더욱 적합한 표현을 찾게 된다. 하지만, 서울대 독문과 출신의 수재도 버겁다. 그만큼 '언어에 대한  적응'과는 또 다른 영역처럼 느껴진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더 우월하다고 누가 나서서 말한 적이 없다.

그래서, 생각보다 체계적이지 않다. 각각의 단어를 익히는 것과 문맥을 살피는 것, 그리고, 사람들마다의 조금씩 다른 뉘앙스까지 신경 써야 한다. 게다가 알아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분위기까지 존재한다. 그걸 좇아가지 못하면 '센스가....'라는 식의 악평을 듣곤 한다. 그래서, 더욱 눈칫밥을 먹게 된다. 왜냐하면, 눈치껏 자주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와 쓰임새에 대해 스스로 확인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가끔 점심이나 저녁 자리에서 옆사람들의 대화를 듣곤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말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다. 마치 첩보원끼리 암호로 대화하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어느 정도의 뉘앙스는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뜻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그걸로 무엇을 원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알맹이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가 주는 '적확한'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요약된 커뮤니케이션으로 발생되는

몇몇의 오류가 불러오는 화(禍)


이미 요약된 정보를 서로 나누는 것은 만연되었다. 

문제는 이제 막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 완벽히 그들의 말을 이해하고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는 관계없이 내 일을 내 방식대로 하려는 사람들, 그런 모든 사람들을 모아서 한 배를 타고, 하나의 지향점을 놓고, 꾸준히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까지 공유하며,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아니, 처음엔 가능해 보였지만, 해나갈수록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목표 수준이 높지 않을 때에는 큰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조직의 (양/질적) 사이즈는 마치 물고기와 같기 때문이다. 

체급이 작은 물고기는 빠르게 헤엄치지 못한다. 그리고, 많은 먹이가 필요하지도 않다. 그리고, 체구가 작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래서, 적의 위협으로 부터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그래서, 생존도 성장도 덩치가 큰 물고기에 비해 유리하고, 실제로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자란 물고기는 

이전의 성장(률)이 점차 어려워진다.

'(양적 성장에 기대는) 성장'을 겪으며, 덩치가 커지고, 더 빠르게 헤엄칠 수 있게 되며, 그 결과로 운신의 폭이 증가한다. 작은 체구 때처럼 등과 꼬리지느러미를 놀리면, 생각보다 더 많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움직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먹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걸 더 많이 먹기 위해, 더 멀리 혹은 가지 않았던 곳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필요한 먹이만 먹으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얼마의 먹이를 먹어야 하는지 정하지 않고, 

그걸 얻기 위해 사전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디테일은 없는 것과 같다. 

일정량 양질의 먹이를 얻기 위한 방향과 단계, 그에 따른 적정한 수준과 그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한 방법과 과정 등에 대해서는 '개선의 여지'를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더 많이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다. 자신이 바다, 연못, 어항에 있는지도 모른 체 말이다. 자칫 상대적으로 작은 연못 혹은 어항에서 그 보다 커지려 노력한다면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결국, 한정된, 누군가에 의해 필터링된 데이터를 

임의상 요약하여 의사결정에 반영하라고 던진다. 

시간이 없던 대표는 이를 바탕으로 뒤늦게 의사결정을 하면... 잘 될 리 없다. 




축약보다는 요약으로 메시지는 간단명료하게

대신에, 커뮤니케이션 양은 최대화


나누는 방식을 보면, 대부분 '요약보다는 축약'에 가깝다. 

짧게 줄이게 되면, 대부분 요약이라고 착각한다. 최소한 줄일 때, 전달하는 메시지를 수신자가 왜곡하여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게 제대로 받아들여졌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해왔던 소통의 습관대로 일부를 생략하고, 합치고, 치환 또는 비유하며 전달 내용을 완성한다. 이를 한 번만 보내 모두를 이해시키려는 무리수를 둔다. 그러다 보니, 공동으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구분되지 않는다. 결국,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일을 주도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끌려 가게 된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심지어 권한이 더 많은 결정권자조차 '모른다, 이해가 필요하다, 더 많이 설명해 달라'는 말을 창피해서 하지 못한 채,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통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상세한) 소통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게 가장 크다. 

우리가 요약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일을 기한보다는 더욱 여유 있게 처리하여, 그렇게 확보된 기간에 완성도를 높이려는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함이다. 단순히 빠르게 처리하여, 또 다른 일을 할 시간 또는 개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다. 따라서, 메시지는 간결하지만, 상호 간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빈도수는 늘어나야 맞다. 그것이 일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향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약이 나쁜 게 아니다. 

요약보다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전달이 되었는지, 더욱 자주 소통하고, 그로 인해 '일이 우리가 뜻하는 대로 잘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더하고(+), 빼야(-)하는지를 함께 일하는 이들끼리 크로스체크 하는 수밖에 없다. 이때 서로 주고받는 각각의 메시지가 요약되어 있어도, 같은 구조, 흐름, 맥락, 관계 등을 이해하고 있다면, 각각의 메시지가 요약된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리고, 완벽한 소통이 될 때까지가 아니라, 그 상호 간의 이해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한 최소-최대의 스킨십은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 놓치는 것 없이 또는 오해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어를 배우는 것, 단어를 어느 때 사용하는 것, 

그 단어를 조합하여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는 법, 

사람마다 특유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 등으로, '함께 일하는 법'을 체득한다. 

이때 서로 간의 솔직함과 배려가 모두 필요하다. 모르는 이는 배우려는 올바른 자세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알려달라고 하는 솔직함으로, 알려줄 수 있는 이는 알려줄 때 모르는 이가 무안하지 않도록 '잘'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괜히 '학습 조직'이 21세기에도 유효한 개념이 아니다. 조직이 정한 상호 간의 존중과 배려가 곧 학습 조직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 필수 요건이다. 




덤) 

말만 줄이면, 전문가처럼 보이나요? 


말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핵심만 콕콕 찝으면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 대기업으로 부터 시작된 1page Report는 최근 아마존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의 '서사 전달에 초점을 맞춘 리포트' 현대카드의 PPT 제거 등과 맞물려 옳지 못한 축약에서 올바른 축약,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요약으로 발전되고 있다. 시작은 해당 프레임 또는 템플릿에 맞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표현하는 것에 있다. 그걸로 100명이면 100명을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면, 전문가가 맞긴 한다. 


하지만, 세상에 그럴만한 전문가는 몇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전문가가 더 많다. 

그래서, 같은 메시지이지만,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이해(解)를 갖고 있지 못하다.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만, 서로 각자의 세계관 속에 살고 있고, 이는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경험이 있다고 해도, 그건 전체를 대변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이 아니다. 그래서, 새로 배워야 한다. 해본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상대방이 1) 나와 다르고, 그래서, 2) 그를 나와 비슷한 이해도를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때는, 3)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다각도의 접근과 시도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갈린다. 


전문가라면, 같은 말이지만, 

상대방 또는 상황에 맞춰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만약, 스스로 전문가를 표방하거나, 전문가로서의 커리어를 갖고자 한다면, 그 누구에게나 자신이 하는 일과 그 일의 내용에 대하여 말 또는 글로 전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언제든 그런 상황에 노출될 수 있고, 이를 적절히 극복할 수 있어야만 다음 기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나 같은 코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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