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의 기억
고개를 까딱거리며 이어폰을 한쪽씩 귀에서 뺀 젊은 남자의 표정은 불만이 가득했다. 몇 정거장 전 그 남자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휴대전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지하철에 탑승했다. 그는 탑승할 때부터 마치 그곳이 자신의 지정석인 듯 자리를 잡았고 빈 좌석이 생겨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솟아오른 배와 통통한 몸집 때문에 다소 둔해 보이는 인상의 그 남자는 휴대전화 화면에 몰두해 있었다. 검은색 뿔테안경 뒤로 보이는 눈가에 웃음기가 어려 있었고 간간이 볼에 힘을 주며 웃기를 반복했다. 남자는 웃을 때 스타카토 연주하듯 콧김을 짧게 여러 번 끊어 내뱉으며 짓눌린 콧소리를 냈다. 열차 안의 공기 순환을 위한 바람의 움직임이나 다소 답답한 습도, 전동차가 선로를 지나며 내는 금속 긁히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와 같은 자극에 남자는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직 휴대전화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할 뿐이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다 뿐이지 서로에게 관심도 없고 교감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며 자신만의 세상에 집중한다. 우리에게도 앞 집, 옆 집, 뒷 집, 동네의 이웃들과 어울리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왔다며 떡을 돌리고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며 교류하던 시절. 축하할 일이 있으면 함께 모여 축하하고 어려운 일에는 서로가 힘을 모아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 이웃들과도 가족처럼 지내던 시절이 그렇게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전후 참혹한 폐허의 어려웠던 시절조차도 끈끈한 유대감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했다. 황폐한 땅에서 최첨단 선진국으로 발전한 지금, 나는 예전의 기억이 아련하다. 단지 향수나 어렴풋한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이 아니다. 개성과 개인의 영역이 존중되는 절제되고 정제된 느낌의 현재와는 다른, 과거의 사람 냄새가 그립다. 밤기차를 타고 혼자 강릉으로 향하던 나와 말동무가 되어 준 정선에 살던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배고프지 않냐며 대뜸 가방에서 꺼내 건네준 삶은 계란의 온기 같은 사람 냄새. 단지 생활 모습과 스타일로 과거를 추억하는 레트로 감성이 아니라 그 시절 사람의 감수성이 생각나는 것이다.
전동차 안에서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있던 남자의 얼굴은 어린아이들이 탑승하면서 짜증 섞인 표정으로 변했다. 학교에 있어야 할 오전 시간에 나온 아이들은 지하철을 이용하여 근교에 체험학습을 나가는 듯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 나이의 아이들이 그렇듯 친구들과의 나들이가 무척 즐거워 보였다. 전동차는 재잘거리는 아이들로 인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함께 탑승한 어른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공공장소에서는 예절을 지켜야 해요." 아마 아이들을 인솔하는 교사인 듯했다. 아이들은 인솔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얌전한 자세를 갖추며 대화를 멈췄지만 들뜬 기분까지는 어쩌지 못했는지 한 두 명이 손장난을 치거나 소곤거리기 시작했고 다시금 재잘거림으로 바뀌었다. 몇몇 어른은 아이들이 귀여운지 자리를 양보해 주었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어디에 가는지 묻거나 짧은 대화를 나누며 웃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음 좋아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은 아이들에게 "지하철에서 너무 떠들면 안 된다."라고 타이르며 아이들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미간을 찌푸리며 가끔씩 고개를 들어 아이들을 살폈다. 이내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에 집중하는 듯했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계속 거슬렸나 보다. 찡그린 미간에는 짜증과 불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인솔교사는 아이들을 향해 몇 번의 안내를 반복했을 뿐, 화를 내거나 심하게 꾸짖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잠시 조용했다가 곧 다시 재잘댔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지하철 안에서 심각하게 소란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이어폰을 손으로 한쪽씩 차례차례 당겨 귀에서 뺐다.
남자는 발걸음을 옮겼다. 인솔교사를 향해. 게슴츠레 뜬 남자의 눈에 불만이 가득했고 나는 혹시 남자의 눈알이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남자의 얼굴 아래로 두 손을 내밀어 눈알이 떨어지면 받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심각한 분위기에서 엉뚱한 상상을 떠올린 것은 그 상황이 내 삶을 비껴간 문제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여러 번 곱씹은 후에야 이 일이 내 삶의 무대에서 발생하는 문제, 내 삶과 절대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는 말했다.
"애들 조용히 안 시켜요?"
이후에 교사는 아이들에게 조용할 것을 몇 번 더 이야기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아이들 몇이 먼저 입을 다물었고, 입술 위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눈치 없는 옆 친구들까지 챙겼다. 곧 목적지에 도착한 남자가 전동차에서 내리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후 아이들은 여전히 재잘거렸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썰물 빠지듯 전동차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아이들이 내린 지하철은 다시 고요한 적막에 휩싸였다. 물론 누군가와 통화하는 어느 할아버지의 큰 목소리가 옆 칸에서 들려온 것을 빼면 말이다.
가정, 학교와 같은 장소에서는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을 책임지고 가르친다. 그런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버스정류장, 지하철, 공원, 길거리와 같은 장소에서 아이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배울까? 사회에서 만나는 어른들의 모습이 곧 아이들 배움의 근원이다. 무책임, 무질서, 무관심 등 많은 부분들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서로에 대한 관심이 간섭처럼 느껴지고 갈등과 충돌로 이어진다. 어려운 문제이지만 우리는 독립된 개인이기도 하면서 같은 집단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개인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더욱이 우리 공동체에서 미성숙한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누구나 가져야 할 마음이다.
나의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젊은 남자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얘들아 공공장소에서 예절을 지켜야지."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와 아줌마도 고개를 끄덕이며 몇몇 아이들과 눈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