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기력한 피해자 1

허탈한 분노

by 타조

"오빠는 애를 안 낳아봐서 그래. 얼마나 힘들고 지친다고..."

고모는 아버지를 만나는 자리에서 고된 육아의 고통을 토로하곤 했다. 아버지는 세상에 나온 순서만 앞섰을 뿐이지 결혼과 출산을 고모보다 늦게 했다. 사람들은 친한 친구들과 생년월일을 놓고 형이니 동생이니 우스꽝스러운 서열 농담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은 이런 장난스러운 서열 농담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실제로 큰 의미는 없지만 자녀의 나이 때문에 발생하는 웃지 못한 자존심 대결이 벌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자녀의 학업성적, 대학교, 직장에 따라 자부심을 느끼거나 의기소침하는 일도 생긴다. 고모는 결혼과 출산의 선배로서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며 넋두리를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형제자매의 결혼 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지만 남아선호 사상이나 장남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존재했던 시절에 고모가 아버지보다 먼저 결혼을 한 것은 파격이었다.


20세기 중반, 한반도는 같은 민족끼리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포화로 동란의 끔찍한 소용돌이를 겪었다. 전쟁은 대한민국을 세계 최빈국으로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기아에 시달렸다. 그 시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할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집안은 더욱 어려워졌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물려받은 농지를 처분하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평생 살아온 시골을 뒤로하고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농지를 처분해 마련한 시장의 큰 가게는 장사가 여의치 않자 다른 사람에게 넘겼고 시장 변두리의 조그만 가게를 다시 마련했다. 그러나 그 가게마저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눈물을 머금고 처분했다. 결국 할머니는 변변한 가게 없이 시장의 통로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해산물을 판매했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군대를 전역하고 다시 찾아간 집과 가게는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어 있었고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이사 간 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군대에 간 장남에게까지 제대로 된 소식을 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세는 많이 기울었다. 아버지가 고모들보다 늦게 결혼을 해야 했던 까닭은 어려운 가정사정 때문이었다. 시누들이라도 줄어야 아버지의 혼사가 성립되겠다 싶은 가족들의 결정이었으리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분가를 하면서 우리 가족은 공용 화장실이 딸린 단칸방의 다가구 주택에서 생활했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좁은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비슷한 모습으로 산다고 생각했다. 가끔 놀러 간 친구의 집은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었고 당시 유행하던 게임기, 장난감으로 가득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여러 직원을 거느린 잘 나가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의 집은 아버지가 영화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어서 방 세 칸짜리 아파트의 진열장과 벽면에 비디오테이프만 수 백 장이 보관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이기도 했지만 다른 친구들의 집에 방문했을 때 우리 가족의 단칸방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거나 값비싼 그들의 물건이 샘이 나서 못 견디겠다는 절망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나의 삶이 불행하지는 않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었다. 가족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디 욕심도 소박한 편이어서 물질적인 박탈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성향 탓도 있었겠다.


단칸방에 살던 시절, 길에서 돈을 주운 적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지 말라는 부모님의 이야기에 다시 내려놓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인 없는 돈이라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서도 비슷한 경험을 들었기에 우리 사회의 당연한 모습이라고 여겼다. 도덕적인 사회라는 믿음 속에서 지갑이나 카드 등 주인을 잃은 물건을 습득하면 경찰서에 가져다주거나 가까운 우체통에 넣었다. 그것이 내가 배운 주인 잃은 물건에 대한 기본 태도였고 주인을 특정할 수 있는 물건을 가져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창 시절에 골목길에서 여러 명의 상급생에게 둘러싸여 문제집 살 돈을 갈취당했던 경험을 하면서도 위험 상황에 대한 놀라움보다 남의 물건을 빼앗아가는 행위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힘없고 어려 보이는 애들을 골라 돈을 빼앗던 녀석들을 다시 만난다고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로 호락호락하게 내어줄 생각은 없다. 적어도 목숨이 위태로워 누군가의 것을 탐하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야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당한 노력 없이 훔치고 빼앗는 저질스러운 행위의 한심스러움을 이제 성인이 된 그 사람들은 깨달았을까? 그리고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에게 남의 물건을 탐하고 빼앗는 행위는 매우 나쁘다고 가르쳤을까?


우리는 아직 미성숙한 도덕성을 갖춘 아이들을 위해 소년법이라는 보호 제도를 갖추고 있다. 성숙하지 못해 일으키는 실수에 대해 어른으로서 포용해 주고 바른 길로 이끌어 바람직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 사회가 어른으로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잘 가꾸고 돌보려면 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부족할 것 없이 자라는 현재의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생각할 겨를 없이 놓치고 지나가는 작은 틈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고름으로 사회가 오염되지 않길 바란다.


그런데, 세상은 어쩜 이렇게 끊임없이 틈이 발생하고 벌어지고 고름이 흘러내리는지... 틈에서 새어 나온 고름으로 뒤덮인 나는 속절없이 피해자가 되었다.


사진: Unsplash

keyword
이전 09화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