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사랑이라는 단비
아침의 해가 일찍 솟아오르는 요즘이다. 5월은 봄의 한가운데다. 풋풋하게 신록을 펼치던 식물들도 제법 따갑게 내려앉는 햇살을 받으며 어느새 진녹색을 띤다. 키가 큰 산수유, 벚나무, 매실나무 등의 나무에서 피었던 봄맞이꽃이 지고 난 빈자리를 산철쭉, 영산홍이 물려받는다. 산철쭉, 영산홍과 같은 진달래과 꽃이 형형색색 화려함을 드러내며 봄의 마지막을 배웅하면 곧이어 장미가 자태를 뽐내며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내가 산책을 즐기거나 걷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싱그러운 꽃송이를 가까이에서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원의 화단에서 산수유의 노란 꽃을 보며 봄이구나 느낄 수 있었고 인도의 한쪽에 길게 늘어선 벚나무에 아름드리 맺힌 벚꽃 아래에서 혼자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철쭉과 영산홍도 빼놓을 수 없다. 키 작은 나무에 탐스럽게 매달려 있는 꽃밭을 양옆에 둔 산책로를 가로지르노라면 싱그럽고 화려한 그들의 에너지가 나의 활력을 돋운다. 초록의 잎이 선사하는 싱그러움만으로는 채우기 어려운 활력이 꽃에 있다. 꽃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산들바람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기분을 선사한다. 바람결에 풍기는 수수꽃다리의 은은한 향기.
현관문을 열고 몇 걸음을 걸으며 봄은 참 향기롭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햇살과 초록, 꽃내음으로 모든 것이 완벽했던 순간을 헤집어 놓았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풍경이 향기로 가득 차 반짝이며 아름답게 부풀어 오른 순간 날카롭고 뾰족한 매캐함이 부풀었던 세상을 할퀴고 갈가리 찢어 놓았다. 매캐한 냄새의 정체는 담배였다. 현관에서 멀지 않은 구석진 곳에서 체육복을 입은 한 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체육복의 옆면에는 하늘색 줄무늬가 있었다. 맞은편에는 한 친구가 거리를 두고 서있었는데 그 아이는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불안해 보였다. 흡연하는 친구와 함께 처벌을 받을까 두려웠을까? 어쩌면 망을 봐달라는 강요를 받고 그곳에 있어 불안했던 걸 지도. 불안한 눈빛이 나와 마주치자 아이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이번에는 깊이 들이켰던 연기를 천천히 날숨에 내보내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고통 같은 것이 서린 눈빛과 입가에 띄운 가벼운 미소가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손가락 사이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출근 시간의 바쁜 걸음을 옮기다가 걸음을 멈췄다. 눈까지 마주쳤는데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었다. 급히 방향을 돌렸으나 아이들은 언제 담배를 피웠냐는 듯 두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걷고 있었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내 마음은 못내 아쉬웠다.
이사를 자주 다니고 직장도 여러 번 옮기면서 다양한 동네를 경험했다. 단독주택과 연립, 빌라가 대부분인 동네의 복잡한 골목길을 지나다니던 때였다. 오래전 형성된 주거지라 골목이 좁고 방향이 제멋대로였다. 깔끔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된 골목길은 겨우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너비였다. 그런 골목길은 사이사이에 또 다른 골목이 나뭇가지처럼 뻗고 또 갈라져 미로 같다. 이어질 듯하다가도 막다른 길에 이르기 일쑤다. 골목을 지나며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는 학생과 마주쳤다. 그곳은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골목길의 교차로였다.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항상 묘한 표정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그것은 쾌감과 불안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감정이 얼굴에 드러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미성년자로서 평생 받아온 통제로부터의 저항과 해방감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아이를 불러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다. 성인이 되면 제제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 성장기에 좋지 않다는 점,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하는 것이 불법인 점 등을 이야기해 주니 아이는 공손하게 죄송하다고 이야기하며 담뱃불을 껐다. 이후에 이 아이를 몇 번 보게 되었는데 아이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번은 아파트단지가 모여 있는 공원을 지나갈 때였다. 오후의 태양이 지평선으로 넘어가 빛의 여운이 하늘을 느슨하게 밝히던 시간, 아직 가로등은 켜지지 않았으나 다소 어둑한 때였다. 공원 한가운데에 설치된 파고라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일곱 명이 교복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파고라 아래의 어둠 속에서는 빨간 불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주변에 어린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공을 차며 놀고 있었고 어른들도 여럿 지나다니고 있는 개방된 공간에서 교복을 입고 버젓이 담배를 피우던 아이들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건장한 체격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파고라에 다가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들 몇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으나 다른 아이들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순순히 담뱃불을 껐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나의 조곤조곤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모든 아이들이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훈계하던 어른에게 해코지하는 청소년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상세히 살펴보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비난하거나 어른이 하는 말을 고분고분 들으라는 취지의 발언들이 있다. 일탈의 행위를 하는 반항기가 다분한 아이들에게 과연 그런 방법의 훈육이 통할지 의문이다. 그렇기에 강대강으로 치닫는 상황이 벌어지고 악화되어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때로는 나도 겁이 난다. 상식 밖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 가르침이라는 느낌보다 깨달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말을 고민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다만 마주치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반응을 겪으며 하지 않아야 할 것이 해도 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강화될 뿐이라고 여긴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면 어떤 부분에서 자신들의 도가 지나쳤는지 알고 있다. 진심 어린 우려의 전달이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항상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새롭게 솟아나고 돋아나는 봄의 여린 춤사위를 포근하게 감싼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흙과 모래와 자갈과 바위 틈틈이 스며들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생명의 근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