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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흔적들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들

by 타조

최근 공원이나 도심의 녹지 등에 맨발로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많이 조성되었다. 맨발산책길로 불리는 이 흙길은 자연 친화적이며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동안 인류는 자연을 철저하게 외면한 채 발전하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지구를 뒤덮었다. 도심 속에 간간이 드러난 지구의 맨살은 그런 인류의 문명 발전으로 인한 결과이다.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애써 외면해 왔던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화두로 떠올랐으며 결국 인류의 존망과 연결되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지구가 인류에게 더없이 소중한 삶의 터전이라는 깨달음을 모두가 공유했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독립하여 살 수 없다는 사실은 문명의 발전을 위해 자연을 훼손해 온 인류의 발걸음을 되돌아보게 했다. 최근에서야 자연 보존과 문명 발전의 균형을 꾀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인간이 자연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우리는 도시 곳곳에 녹지를 많이 조성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지 못한 이유는 단지 환경에 대한 무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존의 문제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 탓도 있다. 가난과 굶주림을 우리의 근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계층구조와 부조리한 사회 제도, 일본의 강제점령 후 제국주의의 전진기지로써 자원 수탈, 해방 이후 동족상잔의 비극 등을 차례로 겪으며 당장이라도 입에 풀칠할 수 있을지 생존의 걱정 앞에 무방비였다. 지구 환경을 걱정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가난과 굶주림을 면하고 한 몸 편히 누일 수 있는 공간이 시급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굶주림의 고통을 면하고자 노력했던 선조들의 의지와 노력, 눈물 나는 희생 덕분에 우리는 발전한 대한민국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지금 아이들은 20세기의 대한민국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선조들이 겪은 아픔과 고통은 그저 역사 교과서에서 사진과 글로 배운 것이 전부일 따름이며 입시에 필요한 지식의 암기에 밀려 공감하지 못한 채 그마저도 시험에 필요한 얕은 지식으로 담아두지 않을까 싶다. 태어나보니 대한민국은 제법 발전한 나라였고 최첨단 과학기술을 언제든 누릴 수 있는 선진국이며 세계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나라인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누려온 것에 대한 노력과 희생의 가치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더욱이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아낌없이 소비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아이들은 물질적으로 매우 풍요롭다. 아이들이 받는 용돈이나 세뱃돈의 금액은 가히 놀랄만하다. 돈이 없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못 사 먹는 아이는 거의 없다.


동네에 번듯한 공원이나 산책로가 없어 인근 학교 운동장을 자주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 학교는 운동장에 인조잔디가 깔려 있고 육상트랙까지 설치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동네 주민들이나 어린이들이 곧잘 이용하던 장소였다. 나도 그곳의 육상트랙을 몇 바퀴씩 돌기도 하고 잘 가꾸어진 화단을 구경하면서 애용했던 곳이었다. 화단이 끝나는 곳에 운동장 쪽으로 뻗은 강당이 있었는데 1층은 필로티 구조로 되어 있어 기둥만 세워진 빈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더운 여름날의 따가운 햇살과 비가 내리는 날의 빗방울을 피해 그곳에 모여 놀았다. 필로티에서 운동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었다. 운동장 주변을 밝히는 조명도 그곳까지는 닿지 않아 해가 지면 어둑해지는 장소였다. 가끔 그곳을 지나갈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가 가득했다. 사탕 포장지와 과자봉투, 심지어 컵라면 용기와 일회용품도 있었다. 주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와 먹은 후 그대로 두고 간 것이었다. 어떤 날은 컵라면 용기에 국물을 그대로 남겨두고 가거나 계단에 국물을 부어 바닥에 늘어 붙어 있기도 했다. 학교를 관리하는 분이 깨끗이 정리를 하는 것 같았지만 며칠 간격을 두고는 다시 지저분해지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는 듯했다. 기상천외하게도 그곳에서는 담배꽁초가 발견되기도 했다. 초등학교에서 말이다.


벚나무에 옹기종기 매달려 곱고 여린 자태를 활짝 드러내며 세상을 하얗게, 또 옅은 분홍빛깔로 물들인 벚꽃이 흐드러지던 어느 봄날이었다.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아 포근하면서도 바람이 얌전하게 일렁였다. 나란히 길을 걷는 두 아이의 손에는 떡볶이가 담긴 종이컵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쑤시개로 떡볶이를 하나씩 찍어 입에 넣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다 먹은 종이컵을 바닥에 떨구었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버린 쓰레기였다.


습하고 더운 날씨가 텁텁하게 사람들을 괴롭히던 흐린 여름날이었다. 더위를 달래기 위해 음료 전문점에서 구입한 음료를 마시며 걷던 교복 입은 학생은 다 마신 플라스틱 컵을 상가 화단에 올려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플라스틱 컵 안에는 다 녹지도 않은 얼음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번화가 이곳저곳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도로 가장자리, 버스정류장, 공원 화단에서도 버려지거나 방치된 쓰레기를 관찰할 수 있다. 과연 아이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 어른들은 일말의 책임도 없는 것일까? 대부분의 쓰레기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의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사진: UnsplashArtfox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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