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란 Sep 27. 2021

대가족의 삶

가지많은 나무도 평온한 날이 있다.

우리집은 삼대집이다.

어머님, 아버님, 우리 부부와 우리 아이들 둘.

가끔은 번잡한 집이 속시끄러워서 분가가 하고 싶기도 하지만

입에 거품 물고 적극적일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손주들이라면 끔직하게 아끼시는 아버님이 뒷목 잡으실까 우려되는 점.

경제적으로 아직 부족한 점.

객관적으로는 그 두 가지가 가장 큰 이유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있다.



대부분의 주말이면 친정 엄마 아빠가 우리 집에 오신다.

요즘 우리 집에 기거하는 막내 딸의 일을 치다꺼리 해주시는 것도 있고

우리집 똥강아지들 재롱이 삼삼히 밟혀서도 부랴부랴 오시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버님과 아빠의 바둑대전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친정에 뜸해지고

두 분다 다른 곳을 가지 않으시니 어쩌다가 시작한 바둑에

두 분이 몹시 심취하셔서 일요일은 격주로 오셔서

점심 이후부터 해가 질 때 까지 바둑을 두신다.




아침부터 아버님은 집을 치우신다고 분주한다.

덩달아 같이 집 정리를 하느라 잠이 덜 깬 나는 속으로 조금 부루퉁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야 청소를 한다.


점심을 드시고 서둘러 건너오신 엄마 아빠.


두 아버지께 커피와 과일을 차려드리고

여자와 아이들은 티타임을 잠시 즐긴 후,

어머님은 주말에도 컴퓨터 업무를 보시고

엄마는 애들과 조금 놀아주시다가 근처 동생의 가게에 일을 도와주러 가신다.


나는 엄마가 애들을 봐주시는 동안 잠시 집 정리를 하거나 한 시간 정도 좀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두 똥깽이들을 챙겨서 놀아준다.

주말이니 오감놀이에 속하는 무엇인가를 한 두 개쯤 허용하여 신나게 즐겨준다.


아이들은 이방 저방 다니며 어질러놓고

두 할아버지 곁을 빙빙 돌며 뛰어다니고

저들끼리 가게 놀이를 하다가

바둑에 심취한 할아버지를 찾아가 아이스크림 판매도 능숙하다.


두 할아버지는 바둑을 두시다가 두 손자가 오면 옆에 과일을 집어서 입에 쏙 넣어주시고

바둑 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둘째를 달랑 들어 무릎에 앉혀주셨다가

가짜 아이스크림도 맛있게 냠냠 해주신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바둑은 길어지고

창 밖에 노을이 질 무렵, 어머님과 내가 쌀을 씻어 안치고 저녁 준비를 한다.


저녁 무렵이 다가오니 바둑을 마무리하고 동생 가게로 나설 준비를 하시는 아빠도 마음이 바쁜데

어머님께서 말씀하신다.

"엄마 다시 오셔서 저녁드시고 가라고 해라. 오늘 생태찌개가 칼칼하니 잘 됐다."


손이 빠르고 음식 솜씨가 좋으신 어머니가 요리를 하시는 동안,

엄마가 전화를 받고 다시 우리 집으로 출발하시고

마지막 판이라며 일어서시던 두 아버지들은 한 판 만 더 할 수 있다며 신나게 다시 바둑판을 여신다.


식탁은 4인용. 아이들은 가장자리에 가로로 앉아 어설픈 6인용인데

부모님 두 세트와 아이들 두명이 조로록 끼어앉고

나는 어설프게 옆에 서서 아이들부터 챙긴다.


따뜻한 생태찌개와 살얼음이 올라간 김치.

바삭하게 구운 고등어와 고소한 김.

가짓수가 많은 반찬은 아니지만, 뜨거운 김이 오르는 식탁에 정답게 둘러앉은 그 시간이

얼마나 감동인지.


생선 바르기의 달인인 내가 후다닥 고등어 등뼈 옆으로 젓가락을 휘둘러 갈라

아이들에게 살을 발라준다.


제비새끼가 따로없다며 손주들이 입을 쫙쫙 벌려 먹는 모습을 반찬 삼아 행복하게 식사를 하시고

아이들은 어느 결에 두둑히 먹고 다시 뛰어다닌다.

그 사이에 나도 걸터앉아서 식사를 마치고,

배부른 꼬맹이가 혀 짧은 소리로 부르는 노래 재롱까지 보시고 식사가 끝난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팔을 걷으시지만

어머니랑 내가 손사래를 치고

동생 가게 가실 거 아니냐고 빨리 가시라고 겉옷을 챙겨드린다.


가게에는 애들 아빠가 같이 일하고 있는 형부와 처제의 공동 사업인 셈이다.

양쪽 집의 생계가 같이 연결되어 있기도 한데, 코로나로 학원을 모두 닫아 힘든 동안

그나마 그 가게가 있어줘서 입에 풀칠은 하고 지내왔다.

온 식구가 틈만 나면 가서 청소부터 잡다한 일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니 얼른 거기가서 마무리 도와주시고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쉬시라고 얼른 등떠밀어 드린다.


설거지는 내가 하고 어머니께서는 식탁 정리를 마무리 해주시고

그 사이에 아버님은 빨래를 꺼내 건조기에 넣어주시고

아이들은 여전히 뛰어다니는 그런 저녁.



그 하루가 마무리 될 즈음에 동생과 남편이 들어온다.

매일은 챙기지 못하지만

시간이 허락되는 금요일 밤에는

남편이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함께 해준다.


여름밤은 자전거나 킥보드를 들고 아파트를 한바퀴 돌고,

비가 온 다음 날은 지렁이나 달팽이를 찾으러(잡으러;)나간다.

겨울날 마침 눈이 좀 내리면,

썰매를 들고 집 앞에 호수공원으로 나간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바빠서 자주 보지 못하지만

아빠는 너를 생각하고 있어. 라는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라

어차피 늦게 자는 애들이지만 그런 날은 그냥 더 늦어도 내버려둔다.


아빠랑 실컷 뛰다 온 아이들은 씻고 잠자리에 누워서 내 귀에 속삭인다.


엄마, 오늘은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날이야!


엄마두, 오늘은 참 따뜻한 날이야. 행복한 날이야.



우리는 행복한 집에 살고 있어서,

그래서 나는 이런 날이 지나면

분가에 대한 마음이 스르륵 사그라들고 만다.


그러다가 또 마음에 불이 일렁이는 날이오면

할머니 말을 생각한다.


흐르는 대로 살아. 억지로 애쓰지 말고.


그렇게 매일 하루가 흘러가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순간, 어떤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