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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의나비 Oct 18. 2023

"조"와 "울"을 넘나들다

요즘 살이 조금 빠졌다. 

다이어트 마음먹은 지 3개월 만에 6킬로 정도 빠졌다. 그동안 살이 많이 찐 터라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계획한 대로 빠지고 있어서 기분이 잔뜩 좋은 요즘이다.

그동안 남편과 야식에, 습관적으로 마시던 맥주, 떡볶이, 곱창, 라면 등등... 이런 것들만 줄였는데도 살이 빠졌다. 본격적으로 노력하면 더 뺄 수 있을 거라 희망도 가져본다.

아직도 옷장엔 작아져 못 입는 옷들이 만원 전철처럼 비좁게 서로 밀치며 씨름하고 있지만 그중에 하나씩 꺼내 입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쁜 아침 시간, 다온이를 챙기느라 정신없지만 뭘 입고 나갈지부터 고민한다.

고작 유치원 등원 시키는 건데도 옷차림에 진심이다. 

옷 입는 건 나한테 취미 같은 거다. 

내가 날씬했다면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입고 싶은 대로 더 많은 옷을 입어 볼 수 있을 텐데...

키도 크고 날씬한 엄마들이 아이 챙기느라 꾸미지 않고 늘어진 티셔츠에 레깅스만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안타깝다. 내가 옷을 사서라도 예쁘게 입혀 주고 싶다. 

나는 꾸미는 것, 특히 옷에 관심이 많다. 결혼하기 전에야 여자들 대부분 예쁘게 차려입는 것에 열심히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기를 꾸미는 것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허나 나는 그러지를 않았다. 예쁜 엄마가 되고 싶었고, 늘어진 티셔츠는 입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좀 쌀쌀하니 트렌치코트를 입어 볼까? 햇살이 화창하니 레이스 원피스를 입어볼까? 이런 고민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마 사업 수완이나 경제적인 개념만 좀 있었다면 그때 차린 레인보우 옷가게는 더 오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옷가게를 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 하지만 장사는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옷가게를 접고 나서도 옷이 좋았다. 나한테 어울리는 옷을 찾는 것이 좋았고, 옷이 나를 표현해 준다고 생각했다. 즐거울 때는 화려한 옷을, 우울할 때는 어두운 옷을 입었다. 기분이 처지다가도 맘에 드는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결혼 한지 얼마 안 된 신혼 어느 날, 남편과 아웃렛에 가기로 했다. 계절이 바뀌어 내 옷을 사기 위해서다.

남편은 벌써부터 걱정을 한다. 

"여보, 그때처럼 우울해하면 안 간다."

얼마 전에도 정장을 입을 일이 있어 사러 갔는데, 맞는 옷이 없어 한참을 우울해했던 터다.

오늘은 안 그럴게. 다짐을 하고 집을 나선다.

나는 키가 작고, 다리도 짧은 편이다. 그리고 가슴은 크고 어깨가 좁아서 아무 옷이나 쉽게 고를 수가 없다.

긴장된 쇼핑이었다. 내 마음에도 들고 몸에도 맞는 옷을 찾아야 했다.

한 바퀴 두 바퀴, 행거에 걸린 옷들을 뒤적뒤적.

없다. 그런 옷이. 

마음에 들면 몸이 들어가지 않았고, 몸에 맞는 옷은 너무 평범하고 펑퍼짐해 보여 싫었다.

터지기 일보 직전. 나는 인정하지 못했다. 나도 내 몸에 맞는 평범한 엄마들이 입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게 싫었다.

"싫어. 아무것도 안 살래. 그냥 집에 가."

그렇게 아무것도 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그날처럼 불안해했고 나는 문을 닫고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덮어썼다. 예고 됐던 우울이 나를 덮쳤다.


기다리던 가을이다. 

아직도 옷장엔 얇은 여름옷들이 어색하게 걸려 있지만 정리할 생각은 않고 여름옷들 너머 두터운 가을 옷을 찾아 뒤진다. 

"오늘은 이렇게 입어야지."

그동안 허리가 안 맞아 못 입던 까만 실크재질의 플레어스커트 지퍼가 간신히 잠긴다. 살랑살랑 거울에 비춰 보니 꽤 날씬해 보인다. 가을은 폴라티의 계절이지, 까만 반폴라티를 매치해 본다. 역시나 블랙으로 맞춰 입으니 확실히 날씬해 보인다. 뭘 걸쳐야 할 텐데... 코트는 평범하고 뭐 다른 거 없나? 옷장을 뒤지다 보니 베이지색 니트 소재의 숄이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반가워하며 꺼내 든다. 어깨에 걸쳐보니 세상 고급스럽다. 지역센터에 강의 들으러 가는 건데, 이 복장으로는 결혼식까지 가야 할 참이다. 

너무 과한가? 잠시 생각했지만, 포기할 수 없다. 너무 예쁜데?

얼마 전에 앞머리를 잘라서 앞머리에 롤을 만다. 룰루. 가을 하늘만큼이나 마음이 높이 높이 들뜬다. 

문을 열고 나서는데 옆집 아버님께서 빗자루질을 하고 계신다. 아뿔싸.

말았던 롤을 서둘러 빼고 가방에 넣는다. 

"아, 안녕하세요."

"아이고. 다온엄마 오랜만이네. 어디 좋은 데 가셔?"

"아... 네... 누구 좀 만나느라고요."

어색한 인사가 오간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앞마당에 떨어진 낙엽들이 덕지덕지 바닥에 붙어 있다. 빗자루 질을 하기 싫어 한 번도 쓸어주지 않은 탓이다. 아버님댁 앞마당은 반짝반짝 윤이 날만큼 깨끗하다. 

멋쩍어서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서둘러 차 문을 연다.

차 뒤꽁무니가 괜스레 부끄럽다. 저 엄마는 자기 치장이나 하고 마당은 쓸지도 않고. 아이고 쯧쯧. 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아니야, 뭐 어때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지우고 다시 앞머리를 말아 놓는다.


"우와. 살 많이 빠졌네. 너무 날씬한데?"

"옷 샀어? 처음 보는 옷인데? 예쁘다."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 일색이다. 둥실둥실 마음이 조증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간다.

강의실에 비치된 전신 거울에 모습을 비춰 본다. 역시나 맘에 든다. 오늘 코디는 100점이다.

이대로 집에 갈 순 없는데, 갈 데가 없다.

동네 엄마들에게 카톡을 한다.

"오늘 뭐 해? 별일 없음 나와, 브런치 먹자!"

유럽풍의 멋진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카페에 먼저 도착해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핸드폰을 들고 카페 이곳저곳을 찍은 다음 핸드폰을 바라보고 웃어본다. 요즘은 셀카도 자주 찍는다. 언뜻언뜻 처져 보이는 얼굴 라인이 속상하고 하나 둘 늘어가는 잡티들이 눈에 거슬리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봐줄 만한 거 같다.

오랜만에 모인 동생들이 와서 반갑게 안부를 전한다.

"언니, 근데 이 옷 어디서 샀어요?"

"너무 예쁘다!"

역시나 동생들 눈에도 예쁜가 보다. 괜히 우쭐해지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늘을 그냥 보낼 순 없다. 무언가 더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비주얼이 끝내주는 브런치를 시켜 놓고 대화를 이어간다. 이미 기분이 들뜬 나는 입에 아무것도 안 들어간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마음이 벅차 더 이상 무엇도 들어갈 곳이 없다. 꽉 차올랐다. 

2시간 남짓.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신데렐라가 12시 되면 면 마법이 풀리 듯 날개 달린 내 마음도 축 처져 땅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아직은 마법이 풀리지 않았다고 속삭인다.


유치원 정문 앞에 츄리닝 입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서 있다.

어깨에 걸친 숄을 여미고 어색하게 그들 틈에 자리를 잡고 서 본다. 

하나 둘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 나온다. 우리 딸도 느릿느릿 걸어 나온다.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 땐 유치원 앞 정원에서 한참을 놀다가 집에 간다.

벤치에 앉아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살랑거린다.

가을바람에 풀어 논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내리쬐는 햇볕에 볼이 발갛게 물든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다. 사실은 땀나는 여름 말고는 꽃피는 봄도 좋고, 내 생일이 있는 겨울도 좋다. 

나는 모든 계절을 다 탄다. 계절의 노예다. 

그렇게 해가 지도록 놀다 보니 시간이 늦었다.

신데렐라의 구두를 벗을 시간이다. 

서둘러 집에 와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고 가방은 휙 던져 놓고 아이부터 씻긴다.


마음이 분주하다. 저녁은 뭐 하지? 밥은 있나? 

종일 들떠있던 마음이 푸욱 하고 꺼진다. 남편이 오랜만에 일찍 오는 날인데, 해 먹을 게 없네. 아까 장을 봤어야 하는데... 배달시켜 먹자고 할까? 주말에도 시켜 먹었는데... 외식하자고 할까? 나가기 싫다고 할 거야. 어쩌지, 어쩌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아무리 열고 닫아도 없던 반찬이 나올리는 없는 일.

라면을 끓일까? 볶음밥을 할까?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띠띠띠띠. 남편이 왔다.

"여보, 나 왔어."

"어~ 왔어? 피곤하지?"

"이거."

"이거 뭐야? 츄러스네?"

"응. 다온이랑 먹으려고 사 왔어."

"왜 이런 걸 사와?"

"저녁 대신 먹어도 될 거 같아서."

내 마음을 들킨 거 같아 낯이 뜨겁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눈빛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린다.

"일단 씻을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퇴근하면서 저녁 먹거리 걱정해 무언갈 사 오는 남편이 안 됐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마음아, 노선을 정하자. 울거니 웃을 거니?

"다온아, 아빠가 츄러스 사 오셨네. 먹을래?"

"어... 응! 맛있겠다."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가짜엄마다. 

"어제 먹다 남은 탕수육 있잖아. 그거랑 같이 먹음 되겠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탕수육을 데워 츄러스와 함께 내놓는다. 상차림이 영 우습다. 탕수육에 츄러스라니. 오랜만에 세 식구 저녁 식사인데 식탁 위가 부끄럽다.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하루 지난 탕수육처럼 딱딱하다.

이렇게 먹을 수는 없다. 양심에 찔린다. 나는 오늘 끝내주는 브런치를 먹고 왔는데. 그것도 엄청 비싼.

"여보. 이건 좀 그렇다."

"왜? 맛있겠는데~ 다온아, 그치?"

남편은 또 나를 달랜다. 이제는 방귀 뀐 놈이 성 낼 차례.

"그래도 이게 뭐야?  먹다 남은 탕수육에 츄러스라니, 이건 너무 하다. "

"아니야. 우리가 좋아하는 거야. 괜찮아."

"그래도 이건... 그래도 이건..."


우울감이 내 차례야 하고 언덕을 넘어 나를 찾아온다. 마음이 한없이 바닥으로 치닫는다.

저녁 차릴 준비는 안 하고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오늘 종일 하늘 위를 날아다녔다. 

정신 차려 집에 돌아오니 냉장고는 텅 비어있고, 식구들 줄 밥이 없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거지? 누구를 위해 살고 있지?

자책하는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내가 돌봐야 할 가족은 여기 있는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인데.

실체 없는 환희에 빠져 일상을 잊고 있었다.

돌아와 보니 아무렇게나 벗겨진 구두가 있고, 영양가 없는 저녁메뉴가 주섬 주섬 놓여있다.

뭐 하고 사는 거니? 

네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정신을 차려야지. 네가 들떠 하늘로 가버리면 너만 바라보는 가족들은 누가 돌보니? 언제까지 이렇게 너만 생각할 거니? 도대체 언제 진짜 엄마가 되고 주부가 될래?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늘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놓쳤다. 모두 내 손을 빠져나갔다. 꽉 쥐지를 못했다.
나의 원가족이 그랬고, 첫 직장이 그랬고, 레인보우 옷가게가 그랬다. 나를 지나간 모든 이들이 그랬다.
나는 쥐지 못하고 모두 놓쳤다.
불안하다. 이 가정마저 놓칠까 봐.
이런 내가 가질 수 없는 행복일까 봐 조마조마하다. 


"엄마. 괜찮아. 울지 마. 맛있어."

딸이 티슈를 뽑아 눈물을 닦아 준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내 행복은 여기에 있다. 저 멀리 찾아 헤매야 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여보, 다음엔 집밥 해줘. 그러면 돼. 여보 집밥 맛있어."

"응응. 꼭 그럴게. 내일은 꼭  맛있는 거 해줄게. 미안해."

눈물을 닦고 다짐한다. 내 행복을 지킬 거라, 날아가버리지 않을 거라. 

예전처럼 도망가지 않을 거라 오늘 밤 나는 마음을 다지고 또 다져 본다. 


미안해요.

나를 기다리느라 힘들죠?

아직도 헤매는 나를 지켜보느라 버겁죠?

고마워요.

나를 놓치지 않아 줘서.

믿고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도망가지 않아서 고마워요.

나도 꼭 붙들게요. 어디 가지 않을게요.

꽉 잡아요. 우리 행복을 꼭 붙들어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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