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치약 안 샀다!!"
벌써 며칠 째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꼭 주문을 해야지 하고는 가글로 대강 입을 헹군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도 태풍이니 휴가니 해서 계속 등원을 안 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가는 날이다.
오랜만에 등원 준비를 하려니 아이도 나도 분주하다. 미리 빨아놓은 원복을 입히고, 식판 등 준비물을 챙기고 잊은 건 없는지 다시 점검해 보는데, 여름 방학 숙제가 있었다. 방학식 하는 날 대강 보고 다음에 해야지 하고는 그냥 넣어 뒀었는데... 방학 동안에 한 번도 안 들여다봤다. 평소에도 숙제 같은 거 열심히 안 챙겨 줬는데 방학이라고 달랐겠냐만은. 그래도 유치원과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싶어 문득 부끄러워진다.
학교 가서도 이러면 어떡하지? 에이, 학교 가면 나아지겠지.
오늘도 너무 늦지 않을 정도로 빠듯하게 유치원으로 출발한다. 10분만 일찍 나오면 되는데 신기하게도 매일 그 10분이 모자란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보려고 가속 페달을 밞아보지만 출근시간이라 그마저도 쉽지 않다.
9시 10분. 유치원에 도착했다. 자, 뛰어.
유치원 현관 앞에 들어서려는데 선생님들이
"어, 원복? 오늘 에어바운스 하는 날인데?"
다온이 다니는 유치원은 가끔 강당에 에어바운스를 설치해서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날은 편한 자유복으로 입고 등원을 하면 되는데... 다온이는 오늘 원복을 곱게도 입고 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안 해. 안 해, 안가, 싫어."
아... 또다...
유치원에 가방을 안 가져온 건 5번은 되는 거 같고, 오늘처럼 옷을 잘 못 입혀 보내적도 그것보다 많은 것 같다. 준비물이나 서류 안 보낸 건 뭐 애교로 봐주세요 할 정도. 그러고 보니 선생님께 너무 죄송하다. 다온이한테도 너무 미안하고...
그나저나 어쩌나.
선생님들 표정이 가관이었다. 화들짝 놀라시며
"다온아, 에어바운스!" 하시는데, 거기에 다온이도 놀랜 거다.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럴 수 있지 하고 무던하게 반응해 주셨으면 다온이도 그냥 넘어갔을 텐데 선생님들 반응에 다온이도 부끄럽고 놀랐겠지 하고 선생님들을 원망해 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온이만 그런 것도 아니었던데...
다온이는 들어가기 싫다며 계속 운다. 나는 스스로도 원망스럽고, 과민 반응한 선생님들도 책망해야 하고, 다온이도 달래야 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또 회로가 꼬이기 시작한다. 불안하다. 내 마음아. 정신아.
"다온아, 그래도 들어가야지. 치마 입고도 뛸 수 있잖아. 엄마가 미안해. 진짜 미안해."
"싫어, 싫어."
"다온아, 유치원에 바지 있대. 갈아입어도 되고, 엄마가 집에 가서 가져다줘도 돼."
"음... 다 싫어, 싫어, 안 갈 거야."
"다온아, 그렇다고 안 가면 어떡해. 이 정도 일로 유치원 안 가는 사람이 어딨어?"
점점 화가 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짜증이 나고 조바심이 난다.
내 참을성은 그렇게 길지 않다.
"계속 이럴 거야? 이럴 일 아니잖아. 방법이 있잖아. 엄마가 그렇게 잘못했어?"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애 데리고 뭐 하는 건지 나도 참이다.
내가 그럴수록 다온이는 서러워서 더 운다. 그래, 그렇지, 서럽겠지. 속으로 이해는 간다만 나는 더 이상 달래주지 못한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다.
"뭐 어쩌라고? 가지 마, 가지 마, 집에 가자. 그래."
"으아아아앙. 으아아앙."
다온이도 그건 아니다 싶은지 버티고 서서 계속 운다. 나도 더는 모르겠다. 감정이 올라 와 쏟아지는 대로 퍼붓는다.
"그래, 네 맘대로 해. 집에 가고 싶으면 가고, 대신 집에 가도 엄마는 엄마 할 일 해야 돼서 하나도 안 놀아 줄 거야, 그건 알아 둬."
이기적인 엄마가 되어 못된 말들을 쏟아 낸다. 이 엄마야.
"집에 가. 집에 가. 그냥 가. 엄마도 더 이상 못 참아."
억지로 잡아끌어 차에 태운다. 부르릉. 내 속에 천불처럼 차 시동소리도 요란하다.
무작정 차를 끌고 다온이도 끌고 마냥 달려 본다. 내 안에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그렇게 달리다 보니 시간이 흘러 등원할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넘어간다. 이제야 다온도 나도 마음이 좀 추스러졌다. 이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
"다온아, 엄마가 진짜 미안해. 놀라고 속상했지? 엄마가 잘못한 거야. 아까 심하게 말해서 미안해. 이제 어떡할까? 다온이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유치원 안 가고 싶어?"
"아니. 그건 아니야."
다행이다.
"그래, 그럼 들어가 볼까? 엄마가 같이 도와줄게."
처음부터 화내지 않고 잘 달래줬으면 시간도 이렇게 걸리지 않고, 감정적으로 서로 다치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어차피 다온도 울고 나도 터졌어야 지나갈 수순이었을까? 잠깐 생각해 본다.
늘 폭풍이 지나고 나면 잔해가 오래 남아 나를 괴롭힌다.
꼭 그랬어야 했니? 그렇게 감정이 폭발하고 나면 뭐가 남니?
다온이는 웃진 않지만 억지로 유치원으로 들어가긴 한다.
선생님들이 다온이를 안쓰런 표정으로 맞이한다.
"다온아, 괜찮아? 선생님이 미안해."
선생님들이 선생님 다운 목소리로 익숙하게 연습된 톤으로 다온이를 달랜다.
그에 맞춰 나도
"아니에요. 선생님들이 왜 미안해요. 괜찮아요."
하고 학부모답게 속에 없는 인사치레를 한다.
다온이가 들어가고 나는 또 속이 공허하다.
쏟아 내고 싶어 쏟아 낼 땐 언제고 이제는 비워져 공허한 마음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터덜 터덜 걸어가 다시 차를 끌고 집으로 온다.
등원시키고 난 후 텅 빈 집은 늘 허전하다.
제대로 안 보고 처박아 둔 안내문을 본다. 친절한 공지사항이 나를 더 가라앉게 만든다.
오늘 하루는 또 이렇게 망쳤다.
집안일이 쌓여 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냥 처진 채로 기분에 함몰되어 있고 싶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망친 나의 하루는 아무도 되살려 줄 수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 시간이 또 두렵고 싫다. 이런 나도 지겹고 싫다.
오늘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