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나에게는 도피처이자 도전이다.
조울증과 ADHD를 겪는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일이다.
오늘도 아침 5시에 일어나 일기를 썼다.
오늘의 할 일, 감사 일기, 꿈 일기를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오늘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맑은 하늘을 보며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계획에 없던 생각이 스쳐갔다.
날도 좋은데, 운동 겸 공원 산책이나 할까?
그렇게 충동적으로 동네 공원에 갔다.
그런데 공원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주차장에 들어섰다 나가는 차들과 엉키며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순간적인 좌절감이 나를 휩싸지만,
‘그래, 한 군데 더 가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다른 공원으로 가는 길. 하지만 그곳 역시 만차였다.
헉헉, 마음속에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곳은 이제 유료 주차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진짜 집에 가야 하는 건가...’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뭐 했지?' 하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제는 글을 써야 할 시간.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까 입어보려다 실패한 원피스 생각뿐이다.
'이제 2kg 정도 빠졌으니까... 혹시 맞을까?'
나는 옷장을 열어 그 원피스를 꺼내 입어보기로 했다. 흡, 훕 몸을 밀어 넣어보았지만 여전히 허리 쪽이 꽉 조였다.
'아직도 안 되네…'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고, 그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공원에 가서 운동했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마음이 점점 답답해졌다.
그리고, 또 먹을 것 생각이 떠올랐다.
원래 오늘 점심에 짜파게티를 먹으려 했는데, 그걸 그냥 지금 끓여 먹을까?
지금 당장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공허해지면서 배고픈 기분이 든다. 내 마음이 이렇게 흔들릴 때마다 음식을 찾는다. 아니면 술이거나.
주방으로 향해 짜파게티를 끓이고, 야무지게 계란 프라이까지 올렸다. 파김치도 꺼내서 함께 먹기로 했다.
먹을 때는 항상 노트북을 켜 놓는다.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채널을 틀어놓고, 영상을 보며 음식을 먹는다. 눈은 영상에, 입은 음식에 바빠지니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게 괜찮아 보인다.
‘하나만 더 볼까? 하나만 더.’
그렇게 2시간이 흘렀다.
아침에 적어놨던 계획들은 사라지고,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오늘도 망했네.
이런 날이면 언제나 ADHD가 나를 혼란에 빠트리고, 조울증이 그 혼란 속에서 나를 더 깊은 늪으로 밀어 넣는다.
결국 모든 게 귀찮아지고, 다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나를 휘감는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분명 새벽엔 빨래, 청소, 글쓰기, 독서, 필라테스라고 적었는데 그 다짐들은 공중에 흩어졌다.
짜파게티 그릇을 치우고 나서,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늘은 꼭 글을 끝내야지. 아침에 세운 계획대로라면 벌써 반은 썼어야 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 뭔가가 찜찜하게 나를 괴롭혔다.
나는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고 글을 쓰려고 했지만, 한 줄을 채 완성하기도 전에 머릿속은 온갖 잡생각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청소는 언제 하지?… 어젯밤에 널어 둔 빨래는 다 말랐나? 수건 빨아야 하는데… 저녁은 뭐해주지?’
그리고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불쑥 튀어나온다.
'어? 내일 외식은 어디 가지? 결혼식엔 뭐 입고 가지?’
한 문장을 쓰는 것조차 버거웠다.
집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만, 생각의 소음이 나를 잡아당긴다.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언제나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게 만든다.
다시, 다시...
나는 계속해서 다짐하지만, 생각의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도무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더 불안해지고, 초조함이 몰려왔다.
결국, 손이 다시 키보드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