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린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나는 눈을 비비고 고요한 집안을 둘러본다.
남편과 아이는 여전히 꿈속에 빠져 있고, 이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다.
이불을 살짝 걷어내고,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난다.
주방으로 나와 머그잔에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이 짧고 고요한 순간, 마치 내 영혼이 깨어나는 것 같다.
하지만 3년 전, 이런 평화로운 시간은 전혀 없었다.
우울감에 잠식된 채, 질퍽한 늪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약도, 상담도 나를 구해주지 못했고, 나는 점점 무기력함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여보, 우리 교환일기 써보자.
남편의 제안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우울감에 짓눌린 나에게 교환일기라니? 정말 할 수 있을까?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의 말엔 따뜻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나를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래, 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작은 변화.
매일 밤 하루를 돌아보며 한 문장이라도 쓰기 시작했다. 감정을 기록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작은 글 한 줄이 쌓이고 쌓여 내 마음을 정리해주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몇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하나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자신을 찾는 데 도움 된다고 했다.
이제 새벽에 일어나서 써보자.
그렇게 시작된 새벽 일기 쓰기.
시간이 흐르며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내게는 4권의 일기장이 남았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글을 쓰며 내 안에 가라앉은 감정들이 표면 위로 떠올랐고, 나는 그 감정들과 대면할 용기를 얻었다.
이제는 글쓰기가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보고, 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해졌다..
그러다 그 글들을 모아 POD 책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내가 직접 편집하고 디자인한 나의 첫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만든 것도, 서점에 진열될 책도 아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건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창작물이었다. 처음 그 책을 받아들었을 때, 진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가득 채웠다. 내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후 브런치 스토리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작가로 선정된 사람들만 글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가 생겼다.
‘나도 도전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도전했다.
그리고 결국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
그 순간 마치 또 다른 문이 내 앞에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일기장에 적어 두었던 글들을 브런치 스토리에 올리기 시작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생기고, 댓글도 달리기 시작했다.
그저 혼자만의 기록이었던 글들이 세상과 연결되며, 나는 마치 진짜 작가가 된 것처럼 마음이 부풀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거였어.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고질병일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소재가 고갈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고, 흥미를 잃어갔다.
이건 나의 기질이자 병이었다.
글이 쓰기 싫어지니, 새벽에 일어나는 이유도 희미해졌다.
어느 날은 알람이 울려도 눈을 뜨지 않았고, 또 다른 날은 일어났다 다시 침대로 누워 버렸다.
나는 다시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혹시,
아직 나에게 남아있는 희망이 있을까?
나는 그것을 꼭 붙잡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