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임상심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현재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영국에서 정신과 의사를 업으로 삼고 계신 선생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아무래도 정신과에서 요청한 것이다 보니 내 직무인 임상심리와는 관련 없는 전반적인 영국 정신과 의사들의 수련과정 및 생활에 대한 내용의 강의였는데, 강의 내용 중 심리학자들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어 질의응답 시간에 영국의 임상심리학자들에 대한 질문을 드려봤다.
임상심리학자들에게 여러 가지 역할이 있지만, 한국의 임상심리학자들은 현장, 특히 수련 장면에서는 약간의 개인, 집단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맡는 것을 제외하면 90% 이상이 주로 환자들에 대한 심리평가에 몰려 있는데, 영국의 임상심리학자들은 주로 어떤 역할을 맡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처음에 강사분은 심리평가(Psychological Assessment)라는 단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다시 임상심리학자들이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바뀐 질문을 드렸을 때 내가 원하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이해한 바대로 답변을 정리해보자면, 영국은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이 엄격히 나눠져 있는데, 심리학자들도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단계에 포진되어있으며, 1차 단계에서 의사를 선택할지 심리학자를 선택할지 환자가 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했다. 즉, 의사와 임상심리학자가 동등한 역할을 한다는 것.
앞서 강사분이 심리평가라는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신 것은, 평가라는 것이 임상심리학자에게 국한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1차 2차 3차 기관의 전문가들이 나름의 방식대로 환자에 대해 개념화하고 평가하여 적합한 치료를 처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2차 단계 3차 단계에서도 각각 전문화된 분야에 따라 업무가 달라지긴 하지만, 주로 DBT(Dialectical Behavioral Therapy; 변증법적 행동 치료), MBT(Mindfulness-Based Tehrapy; 마음챙김 기반 치료), CBT(Congitive Behavioral Therapy;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심리치료 업무를 맡게 되며, 정신과 의사들도 Complex하고 Severe한 심리적 문제들은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어려운 환자일수록 심리치료의 전문가들인 심리학자들에게 의뢰를 한다는 것이다.
답변을 듣고 한동안 멍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2018년 4월 한국에서 임상심리사가 개발한 인지행동치료의 주체를 정신과, 신경과 의사로 규정하고 임상심리학자들은 집단 인지행동치료만을 실시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과는 상반된 내용의 이야기였다.
한국의 임상심리학자들은 사실 전문화된 심리치료 요원의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평가만 할 뿐 심리치료에서 배제되고 소외되고 있다.
수련생 나부랭이에 불과하지만 지금 당장은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심리평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체감상 수련 과정의 90% 이상이 평가 업무인 현 체제에서 결국 우리가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은 평가밖에 없거나, 새로 심리치료를 배워야 하고, 그마저도 책임도, 권리도 없이 무자격자와 다름없는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치료의 주체로서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수련 과정에서도 치료의 비중을 높여 환자를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가 되는 효율적인 Process를 만들 수 있을까. 당장 변화를 만들긴 어렵겠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고민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