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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 Jan 03. 2020

첫 해외여행은 한국으로

늦게 본 첫 손주가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이도가 태어난 후 서울에 계신 이도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같이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채팅을 통해 이도의 안부를 물으셨다. 그때마다 나와 마리는 거의 비슷한 수십 장의 사진들(아직도 비슷한 사진들 속에서 A컷을 제외한 나머지 사진을 지우는 일이 너무 어렵다.) 속에서 가장 나아 보이는 사진 몇 장을 골라 보내드리곤 했다. 주말에는 화상채팅을 통해 손자와의 데이트를 즐기셨지만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보고 느끼는 것과 비교가 될 리 없었다. 두 분의 이도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커져갈 무렵, 이도가 6개월이 되어갈 때 즈음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이도를 안겨드리기로 한다. 이도와의 첫 한국 방문!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각종 예방 접종을 마친 후 이도의 담당 소아과 의사는 생후 6개월이 지나면 장거리 비행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지만 초보 부부에게는 걱정이 앞섰다. 유모차를 비롯한 산더미 같은 짐을 짊어지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13시간이 넘는 긴 비행시간 동안 좁은 공간 안에서 이도가 잘 버티어줄지. 기압 차이로 인한 귀의 통증은 잘 견뎌낼지. 혹시라도 비행 중에 아프지는 않을지. 한국에 도착해서 갑자기 바뀐 공기와 물 때문에 고생을 하지는 않을지.(녹지 비율이 가장 높은 대도시중의 한 곳인 베를린에서 살다가 서울을 방문할 때면 항상 목감기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시차 적응은 잘할지, 등등. 수많은 걱정거리들이 우리를 괴롭혔지만 변경 및 환불이 불가능한 비행기표를 구입한 후부터는 이도와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즐길거리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이렇게 단순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까.


항공권을 티켓팅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장모님 내외에게 우리의 여행 스케줄을 알려드린 일이다. 2013년 겨울, 베를린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부모님을 모시고 장모님 내외가 사시는 베를린 근교의 휴양지, Bad Saarow 받자로우를 방문했었다. 양가 부모님들은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며칠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고 그때 우리 부모님이 두 분을 한국으로 초대하셨다.


“감사드려요. 이렇게 멋진 곳에 초대해 주셔서. 저희는 도시도 좋지만 이런 대자연 속에서 지내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다음에는 저희가 두 분을 한국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영빈이와 마리에게 말로만 듣던 그곳에 하루빨리 가보고 싶네요. 한 번 가기 쉽지 않은 곳이니 지금부터 미리 계획을 세워야겠어요.”


유럽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태국이나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신 적이 있는 두 분이지만 한국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미지의 나라였다. 그 뒤로 장모님 내외는 우리가 받자로우에 놀러 갈 때마다 언제 한국에 갈 계획인지 묻곤 하셨다. 그리고 2년이 흘러 두 분은 드디어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자리한 한국이란 나라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에게 초대받았던 당시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손주, 이도와 함께 말이다.


베를린에는 유럽 도시로 운항하는 저가항공사들이 몰려있는 Schönefeld Airport 쉐네펠트 공항과 국내선 및 그 외의 국제선이 운항하는 Tegel Airport 테겔공항, 두 곳의 국제공항이 있는데 아시아 도시로 운항하는 직항 편은 없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국제공항이지만 활주로가 너무 짧고 시설이 열악한 탓에 장거리를 운행하는 커다란 비행기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1991년 베를린 주정부 주도로 Berlin Brandenburg Flughafen Holding GmbH 베를린 브란덴부르그 공항사가 설립되어 2010년 개항을 목표로 신공항 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차례 개항 연기를 반복한 끝에 늦어도 2019년 안에는 개항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베를리너들은 이제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다. 조롱조차도 귀찮다는 듯이. 베를린은 일반적으로 한국사람들이 상상하는 벤츠의 나라 독일이 아니다.


베를린에서 서울로 가기 위한 경유지는 프랑크푸르트나 암스테르담, 헬싱키, 파리 등이 일반적이며 우리 같은 경우는 항공사의 프로모션에 따라 노선을 선택한다. 성수기만 피한다면 보통 700-800 유로 정도에 유럽 국적항공사의 왕복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는데 경유지 대기시간을 포함한 총 비행시간을 잘 살펴봐야 한다. 같은 항공사의 항공편이라도 스케줄에 따라 짧게는 13시간에서 길게는 20시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이도와의 첫 비행은 헬싱키를 거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할만한 이야깃거리가 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끝이 났다. 먹고 자고 싸고를 몇 차례 반복한 이도를 안고 있으니 어느새 착륙 준비를 한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지만 비행 중에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착륙과 동시에 목과 허리에 전해졌던 찌릿함이 그 증거랄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게이트를 나서던 순간.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무뚝뚝한 남자, 내 아버지가 조금은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이도, 안이도!” 손주의 이름을 부르며 아니, 소리치며 달려오시던 그 순간을.  아버지의 얼굴은 어색하리만치 환한 미소로 가득했고 그 감정은 내 품에 안겨있던 손주를 당신의 품에 안는 순간 절정에 다다랐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아직 아버지가 나를 목에 태우고 다니던 시절 그러셨겠지? 이도는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환대에 잠시 놀란 듯하더니 곧 수줍은 웃음으로 할아버지를 녹여버렸다. 그렇게 3대의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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