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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 Feb 24. 2020

로또당첨만큼 어려운 집 구하기


베를린은 서울보다 면적은 크지만 인구는 훨씬 적은 약 360만(2015년 기준), 그중 터키를 주로 하는 아랍계 이민자들이 10% 이상을 차지한다.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 커리부어스트 Currywurst(튀기듯 구운 쏘세지에 케첩과 커리가루를 뿌린 음식)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되너케밥 Döner kebab(구운 양고기나 소고기, 닭고기 등에 각종 채소를 곁들인 터키식 샌드위치)인 것을 보더라도 터키계 이민자들이 베를린에 얼마나 많이 살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터키계 이민자들이 몰려 사는 지역은 베를린인지 터키의 한 도시인지 헷갈릴 정도로 보통 한국에서 떠올리는 *독일의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거대한 비어홀에 가득 찬 금발의 거구들이 커다란 맥주잔을 기울이며 신나게 떠들고, 전통 복장을 입은 풍만한 몸매의 웨이트리스들이 쉴 새 없이 맥주와 쏘세지를 나르는 풍경은 독일 남동부 지방인 바바리아 bavaria 지역의 풍경이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아니, 이미 떠버린 크로이츠베르그 kreuzberg는 베를린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옛 서독의 가장 가난하고 위험했던 지역으로 터키계 이민자들의 대표적인 거주지이자 할렘가였다. 하지만 1990년 통독 이후 전 세계로부터 이주한 가난한 예술가(혹은 스스로 예술가라 칭하는 이들)들과 터키계 이민자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복합 문화가 각광을 받게 되면서 현지인은 물론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했으며 최근에는 상업화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터를 잡았던 이민자들과 예술가들이 변두리 지역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도 서울과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의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현재 수많은 카페, 레스토랑, 펍과 클럽이 성업 중이며 밤새도록 활기찬 지역이다. 지저분하고 거칠지만 젊은이들의 넘치는 자유를 발산하기 가장 좋은 동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부유한 독일인이나 러시아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지역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쿠어퓌어슈텐담 Kurfürstendamm (줄여서 쿠담 Ku'damm 이라 부른다) 은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조용하며 전체적으로 중후한 유럽의 느낌을 풍긴다. 베를린의 샹젤리제라고도 불리며 독일 최고급 백화점인 카데베 Kadewe와 명품 부티크들이 위치해 있어 주머니 두둑한 관광객들로 항시 붐비는 곳이다.


2010년 내가 베를린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은 크로이츠베르그, 그중에서도 가장 번화가인 1호선 괼리쳐 반호프 U1 Görlitzer Bahnhof 역 근처였다. 역을 기준으로 반경 500미터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 펍, 클럽 등이 위치하고 있어 조용할 날이 없는 곳으로 2014년 마리의 임신소식과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의 이사를 계획하기 전까지 레스토랑 컨설턴트로 일하며, 친구들과 밤새 떠들고 마시며 젊음을 즐겼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우리에게 그곳은 아이를 키우기보다는 청춘을 불사르기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역주변이나 공원을 점령하고 있는 마약상들, 놀이터의 모래사장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코카인 봉투 그리고 온갖 종류의 파티로부터 흘러나오는 끊임없는 소음 등이 육아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적어도 우리에겐 말이다. 정해진 곳은 없었다.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모르는 이웃과도 이제 안녕이라는 생각에 부지런히 이사 갈 집을 찾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윗 집의 중2병 걸린 세입자들이 생각난다. 그 힙스터 워너비 Hipster Wannabe 곱슬머리를 다 뽑아주고 왔어야 하는 건데...


베를린의 인기가 높은 지역에 집 구하기는 로또 당첨만큼 어렵다는 말이 있다. 세입자 보호법이 워낙 발달되어 있어서 한 번 계약하고 나면 사실 평생계약이나 다름없고 해지 또한 까다롭기 때문에 집주인은 세입자를 너무너무 까다롭게 고른다.(보통 부동산 중개인을 고용한다.) 제출해야 하는 수많은 서류들 중에는 지난 6개월 간의 소득증명서와 신용등급 증명서는 물론 전 집주인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증빙서류도 있다. 그동안 별문제 없이 월세 꼬박꼬박 내며 살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부동산 중개나 거래방법도 한국과 많이 다르다. 보통 세입자들은 인터넷을 이용해서 매물 검색을 많이 하는데 집마다 방문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관심이 있는 세입자들은 무조건 그 시간에 맞춰가야 한다. 방문 횟수는 보통 한 번, 많아도 두 번으로 인기 있는 집 같은 경우에는 수십 명이 한 번에 몰리기도 하는데 관련 서류를 준비해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부동산 중개업자는 짧은 시간에 많은 세입자들의 면접과 서류심사를 한 번에 치르는 셈이다. 그리곤 계약이 성사되면 적게는 한 달치에서 많게는 세 달치 월세를 수수료로 챙긴다. 아, 돈 벌기 정말 쉽다!


4개월 정도 그 짓을 하다 지쳐갈 때 즈음 인터넷에서 프렌츨라우어 베르그 Prenzlauer Berg에 위치한 마음에 드는 아파트 하나를 발견하고 임대인 관련 정보를 읽던 중 흔치 않지만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가 그 당시 살고 있던 집의 집주인 이름! 더욱이 아파트가 위치한 프렌츨라우어 베르그의 그 동네는 우리가 가장 원하던 주거지역이었기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바로 전화를 했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게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월세 한 번 밀린 적 없이 조용히 살던 나와 마리를 좋아하던 그녀였기에 프렌츨라우어 베르그에 위치한 그 집을 기꺼이 우리에게 내줬다!


몇 년 전 한가한 일요일. 브런치 메뉴로 유명한 프렌츨라우 베르그의 카페 안나 블루메 Café Anna Blume에서 마리와 느긋한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아, 이 동네 살고 싶다!”

“오빠는 또 그 소리네. 난 지금 우리 집도 좋아. 그리고 이 동네로 이사 오면 한 달에 최소 500유로 이상 더 내야 할 텐데, 지금 우리 형편에는 어렵잖아.”

“나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만 여기가 더 좋다는 거지. 돈이야 더 벌면 되는 거고.”

“어떻게 벌게? 집세로만 한 달에 500유로 더 내는 게 쉬운 줄 알아?”

“이 곳에 오면 왠지 500유로 더 벌 수 있는 일이 생길 것 같은데?”

“농담하지 말고.”

“당장은 못 오더라도 항상 꿈꾸고 이야기해야 이루어지지.”


마리는 이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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