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자의식 과잉이다.
설거지를 하며 유튜브를 보았다.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하는 한 프로그램에 배우이면서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아이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었다. 인터뷰를 하던 박사님은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하다는 말씀으로 조언을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것보다 '타이틀'에만 집중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다소 자의식 과잉으로 보인다고 영상 주인공에게 말했다.
영상을 보면서 문득 '아... 내가 자의식 과잉인 사람이구나.'를 깨달았다. 거울로 비쳐 본 내 모습이 현실의 나와 같은 크기로 인식해야 하는데 스스로 더 크고 과한 사람으로 인식하면서 '내가 할 일은 이것보다 더 나은 일이 여야지.', '누구는 그 자격증을 취득했다는데 나도 당연히 가능하지.'등등 20대의 부끄러웠던 내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20대 나는 고 구본형 작가의 책을 읽고 그의 통찰력에 반해 무작정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그때부터 '자기 동기부여'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나도 빨리 작가님처럼 강의도 하고 책도 쓰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꿈을 가졌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며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축적하여 쌓은 지혜를 난 30세에는 얻고 싶었다.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이상하게 30세에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 탓에 사교육에 매달렸다. 기업 강사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 자격증이라면 길게 따져보지도 않고 대부분의 월급을 소비했다.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으면 등록했고 매일같이 비싼 카네기 코스도 훔쳐보다가 금액에 좌절해 유사한 프로그램을 찾았다.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 들어갈 실력이 되지 않으니 '수료증', '자격증'으로 커다란 간극을 메꾸고 싶어 교육 시장의 호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을 들여 나를 다듬고 성장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빠르게 '기업 교육 강사' 또는 '동기부여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못한다.'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주 평범했는데 대학교에 가서는 평생 들어보지 못한 칭찬들을 받았다. 그 덕분인지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고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작하면 남들보다 못하는 것이 있는 게 당연한 것인데 속상했다. '어? 왜 나보다 저 친구가 더 잘하지?',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 등 나를 과대평가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혀왔다.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까지만 했었어야 하는데 실제의 나보다 더 큰 그림자를 만들어 그 안에 갇혀있었다.
그렇다면 40대가 된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여전히 자의식 과잉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글쓰기를 통해 나의 모난 부분을 인정하고 내려놔야 함을 알게 된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한 소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행동했고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아... 내가 이런 점 때문에 그랬구나.' 하며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는데 이때 나의 자의식이 조금씩 줄어드는 기분이다.
여전히 나는 자의식 과잉인 사람이다. 하지만 20대처럼 '타이틀', 과 '속도'에만 집착하지 않게 된 40대가 되어 조금은 다행스럽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