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울고 싶었다.
2020년 어느 날 친정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친정을 찾았다. 두 아이를 신랑에게 맡기고 간 병원에서 본 엄마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말했던 것과 달리 무척 기운 없이 병원 침대에 누워 계셨다. 30분 안에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라는 의사의 말만 듣고는 딸보다 가까이 사는 이모만 불렀던 엄마는 마취가 풀리자마자 후회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주말이라 내가 엄마의 병간호를 할 수 있었다. 느껴지는 통증 강도나 부위를 들어보니 제왕절개 후 겪는 고통과 유사해 보여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엄마! 살 좀 쪄야겠다. 다리가 너무 말랐어!” 이불 밖으로 드러난 엄마의 앙상한 다리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그녀는 평생 44,55 사이즈 이상의 옷을 입어 본 적이 없다. 6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지금도 단백질과 섬유질 위주의 식단관리를 하는 엄마가 내 말을 듣더니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네가 너무 찐 거야! 너 더 이상 찌면 안 돼. 살 빼야 해. 애들은 살찐 엄마 싫어해 "라며 자리에 없는 내 딸들까지 끌어들였다.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기분 탓인지 더 말라 보이는 엄마의 다리만 미리 찍어둔 사진처럼 잔상으로 남아있다.
퇴원 후 엄마 집으로 온 나는 이불 펴는 것도 귀찮아 거실 소파에서 누워 잠을 청했다. 아이들 없이 혼자 TV도 보고 좋아하는 웹소설도 읽으니 몸은 편했다. 하지만 잠들면서도 뒤척이는 움직임을 힘들어하는 엄마의 앓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불편했다. 최대한 누워있으라고 했지만 그 누구보다 의지가 강한 엄마는 아파도 자주 움직여야 빨리 낫는다며 나의 도움을 거부한 채 주방에 섰다. 나의 살림 솜씨를 믿지 못해 맡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뒤에 서서 엄마의 부름을 기다렸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하루를 보낸 다음날 오후 둘째가 나를 많이 찾는다는 남편의 연락을 받고 나서야 청소를 하고 엄마 드시기 좋게 수박을 잘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청소를 하면서 엄마와 대화를 나눴는데 어쩌다 보니 대화 주제가 엄마의 한 맺힌 시절로 넘어갔다. 사람과 술을 좋아했던 아빠 탓에 생활력 강한 엄마는 많은 고생을 하며 우리를 키웠다. 상승보다 대부분이 하락세였던 아빠의 사업 탓에 엄마는 안 해 본 일 없이 일하며 우리를 키웠고 그만큼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도 깊었다.
내가 2살 때 엄마의 뱃속에는 내 동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년생으로 아이를 키우게 된 엄마는 넉넉한 아빠의 월급으로 부족함 없이 나를 입히고 먹였다고 했다. 그러나 내 동생이 태어나기 직전 아빠의 잘못으로 우리 집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 덕에 나와 달리 동생은 엄마의 모유 외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어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100일을 기점으로 있어도 없는 듯 순했던 동생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빽빽 울어대기만 하는 예민한 아이로 바뀌어 입도 짧아 잘 먹지 않은 탓에 또래보다 한 뼘 적어 엄마의 애간장을 태웠다. 어렸을 때 동생은 여러 방면에서 나보다 뛰어났다. 같이 시작한 피아노도 성실하게 연습한다는 말만 들은 나와 달리 동생은 재능이 있으니 앞으로 꾸준히 시켜보라는 권유까지 받았으며 머리도 나보다 좋아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 글을 깨우쳐 책을 읽었다고 한다. 등치만 작았지 타고난 능력은 뛰어나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차지했다.
그에 비해 나는 순종하는 것을 잘했다. 사춘기라는 것도 겪지 않고 엄마가 시키는 예습, 복습도 곧 잘했고 먹기 싫은 반찬도 꾹 참고 먹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 부모님이 싫어할 행동을 피했던 탓에 나는 의젓하다는 말을 종종 들으며 자랐다.
엄마는 나보다 동생에게 관대했다. 물론 그 이유도 알고 있다. 나와 달리 동생은 우리 집이 어려웠던 시기에 태어나 나보다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엄마가 나와 다른 잣대로 동생을 대한다는 것을.
평소 같으면 엄마의 한 맺힌 스토리를 들어도 그냥 넘어갔을 텐데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 이은이가 날 많이 찾는다네. 오빠가 이렇게 연락할 정도면 많이 찾는 거야.”
“그래. 얼른 준비하고 가봐라.”
“응. 점심 먹었던 거 설거지해놓고”
“네 동생도 엄마 일하러 간다고 하면 다리 잡고 놔주지 않았어. 5살 때 엄마가 일 하러 갈 때마다 울면서 가지 말라고 엄마한테 매달렸어. 그 어린것이”
“개가 우니까 나는 울지 못했던 거야.”
엄마가 나를 쳐다보고 잠깐 말을 멈췄다. 그 뒤 내가 무슨 말을 더 했는지 엄마가 말을 이어서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갑자기 입 밖으로 삐져나온 말에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나는 무엇을 말했을까? 그리고 여러 번 들었던 스토리인데 갑자기 왜 내 마음을 드러냈을까? 생각만 했었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속 마음인데. 다행히 엄마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처럼 다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봤다. 왜 나는 그 말을 했을까? 그리고 엄마가 별 반응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인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