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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움 Feb 28. 2024

나쁜 딸도 되기 어렵구나.

내 마음을 달래줬던 글쓰기

작년 11월 말부터 '나쁜 딸이 되어보겠다.'라는 어이없는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엉뚱한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글 한 개를 포함하여 총 10개의 글을 썼고 오늘은 마무리를 지어보려 한다.


'나쁜 딸'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부모님께 거절을 하지 못하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는 부모님과의 통화에 혼자 안절부절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며칠 전전긍긍하다가 부모님과의 통화가 별 일 없이 끝나면 안심하는 마음과 허탈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는 내가 이해되지 않아 글자로 생각을 정리했다. 글자로 쏟아져 나온 마음은 생각보다 어리고 유치한 감정이 가득해 민망했다. 하지만 글쓰기의 효과를 알기에 부끄러워도 글을 썼다. 


어떻게 보면 이 시리즈 글은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와 연결되는 글들이다. 어릴 때의 기억이 마흔이 넘은 지금도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나이 드신 부모님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면서 여전히 자라지 못한 마음속 나를 발견하여 다독여주는 것이니까. 글을 쓰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나는 평생 엄마, 아빠의 말을 대차게 거절하는 나쁜(멋있는) 딸이 되지 못한다. 칩에 프로그램이 인식되어 있는 로봇처럼 내 세포에 '착한 딸 세포'인두가 여기저기에 찍혀있기 때문이다. 파낼 수 없이 깊다. 그렇다면 그 자국에 '위로'라는 연고를 발라 조금이라도 옅어지게 만들면 된다. 아빠와 통화하고 나면 스스로에게 다독여준다. 그리고 차분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한다. 이제 말투에 짜증도 섞여있다.


"알았어. 큰 딸. 아빠가 미안해. 다음에는 전화 안 할게."


술주정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의 반복되는 전화는 전화기에서 귀를 멀리 떨어트리는 얄팍한 수로 나를 보호하고 수긍할 내용은 빠르게 대응하여 통화 시간을 줄인다. 다행히 엄마는 예전과 달리 많이 유해지셔서 상처받는 일은 거의 없다. 남아있는 마음의 흉터만 잘 관리하면 된다.


처음의 다짐과 달리 '나쁜 딸'이 되지는 못했지만 나의 선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은 편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야.'라는 말로 나를 다독여주면서 크게 숨을 쉬며 안정을 찾는다. 엉키고 엉켰던 마음이 글자로 쏟아져 나온 뒤 다시 제자리로 찾아갔다. 잔여물은 그대로이지만 엉킴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마음에 공간이 생겼다. 다행이다. 글쓰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글로 나를 다스리고 안아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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