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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움 Feb 07. 2024

내가 듣고 싶었던 말

네 잘못이 아니야.

  지난주 글을 쓰지 않았다. 쓰지 못한 것이 아니라 쓰지 않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투정만 부리는 어린아이가 되는 기분이라 부끄러워졌다. '너 이러려고 글 쓰기 시작한 거야?'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며 찐따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다 책 한 권을 읽었다. 인기를 끌고 있는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이다.



이상하다. 분명히 에세이인데 내게는 육아 지침서이면서 치유서처럼 느껴지는지. 작가분의 할머니는 몇 마디 안 되는 말로 작가의 어린 시절 평화로운 공간과 시간을 제공했다고 한다. 어른이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서 마음처럼 되지 않는 육아에 허덕이며 무너질 때마다 할머니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는 그녀의 고백이 조금은 부럽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인정과 관용을 받은 경험들이.


나는 매몰차게 할머니를 떠나고 무심결에 잊었다가 중년의 어느 날 고통과 슬픔으로 흐느끼면서 오래된 방문을 열었는데, 그곳에서 할머니가 가득 채워놓은 평화와 사랑을 발견했다. (67쪽)


아이를 키우면서 스스로 규칙 세운 것이 있다. 첫째라는 이유로 양보와 솔선수범 강요하지 않기와 무조건 응원해 주기이다. 아마도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지만 반대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닥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 껌딱지처럼 내 정신에도 붙어있어 이런 규칙을 정한 듯하다.



나는 외갓집에서 첫째 손녀로 태어났다. 엄마는 1남 5녀 중 둘째이자 큰 딸이었기에 가장 먼저 결혼하셨다. 덕분에 나는 외삼촌과 이모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1년 뒤 동생이 태어났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받았던 사랑보다는 첫째라는 이유로 받은 부당함과 부담감이 많았다. (명절이면 친동생을 포함해 총 10명의 동생을 이끌어야 했다.)


고3일 때 들었던 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네가 공부를 잘해야지. 너 재수하면 동생들 다 재수하는 거야. 네가 잘해야 한다.."



사실 지금에서야 그 말이 옳지 않음을 알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말들을에 위축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결국 난 재수를 하게 되었고 어른이 된 뒤에도 친척 동생들의 대학 합격 여부가 들려올 때마다 긴장했다.


  문득 할머니가 늘 하던 "에미 별나서"가 떠올랐고 어릴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숨은 의미를 찾아냈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게 나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있었던 거였다. 이것은 많은 불필요한 혼란을 건너뛸 수 있게 해 주었고 중요한 사고의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64쪽)



위의 글을 읽다 보니 자동적으로 그때의 기억이 다시 재생되었다. 당시 그 말을 했던 이모의 표정과 목소리, 말투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어쩌면 나는 어릴 때 싫었던 기억과 감정을 아이들에게 투영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방법이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일단 내가 싫었던 또는 피하고 싶은 말과 행동은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 그릇을 깨든 50점 이하의 점수를 받아오든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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