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불편한 마음
지난 토요일 가족과 함께 공연장을 방문했다. 어린이 뮤지컬 공연 초대권이 생겨서 아주 오랜만에 하는 문화 나들이다. 공연이 끝나고 차에 탔는데 신랑이 장인어른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공연 중이라 받지 못했다고 해 폰을 확인해 보니 역시 나에게도 전화가 와 있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해보니 술을 많이 드셨는지 말투와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왜 전화를 안 받니?"
"공연 보느라 전화를 못 받았어요."
"사위도 필요 없다. 전화도 안 받고."
"오빠도 같이 공연 봤어. 그래서 못 받았어요."
"왜 전화를 안 받니?"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아빠는 하고 싶은 말을 나열했다. 분명 오전에 통화하실 때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시던 아빠였는데 전화를 제때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아빠에게 화가 났다. 전 같으면 전화를 종료하기 위해 아빠가 하시는 말씀을 듣거나 달래기 위해 노력했을 텐데 그러기 싫었다. 언제까지 아빠의 감정에 휘둘리면서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술 많이 드시고는 전화하지 마세요."
"뭐?"
"술 이렇게 많이 드시면 전화하지 마시라고요."
아빠는 이런 나의 답을 듣고 화를 내시더니 갑자기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예전이라면 다시 전화를 걸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술에 취하셔서 자세한 대화 내용은 기억 못 하실 거라 여겼다. 늘 그랬다. 내내 맘 졸이며 아빠의 반응을 걱정하다가 다음 날 전화해 보면 통화 기록으로만 나에게 전화한 것을 아시지 속 내용은 파악하지 못한 적이 여러 번이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여기고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아빠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반복해야 하는가? 하는 반항심도 있었다.(세상에. 마흔이 넘은 나이에 부모에게 반항이라니...... 부디 내 자식은 10대에 끝내주기를) 토요일로부터 5일이 지났지만 전과 다르게 아빠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없다. 그 말인 즉 다른 때와 달리 아빠에게 반항한 것을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결국 오늘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파를 핑계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토요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아빠의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오전, 점심, 오후에 각각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계속 잠들어 있다. 차라리 이대로 아빠가 연락을 안 했으면 하는 마음 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전화를 걸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반이다. 이 상황이 너무 싫다. 가슴에 돌덩이가 있는 기분이다. 신랑에게 감정을 털어놓으니 장인어른의 마음에 너무 몰입되지 말라고 조언해 줬다.(신랑은 나의 대나무숲이다. 뭐든 신랑에게 말하면 간결해지는 기분이다. 단 공감을 해주지 않아 짜증이 날 때도 많다.) 고민을 털어놓으니 살짝 가벼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신경 쓰인다. 아빠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꼭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듯하다. 마음이 다시 무거워지고 있다.
아빠 입장에서 서운하실 수도 있을 듯 하지만 더 이상 감정 쓰레기통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듣고 있음에도 아빠에게 강하게 말했다. 휘둘리는 내가 싫어 용기를 내었는데 편치 않다. 나는 뭐가 두렵고 불편해서 마음을 졸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