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불빛이 너무 싫어.
학부모가 된 이후로 아침은 정신없다. 특히 아침밥보다 잠을 선택하는 큰 아이를 깨우는 것이 일이었다. 습관적으로 '5분만'을 외치는 큰 아이는 일어나서 10분 만에 등교 준비를 한다. 그걸 알기에 8시부터 5분 간격으로 아이에게 시간을 말해주며 잠에서 깨는 여유를 주었다. 하지만 신랑은 아이 방에 들어서면서 바로 불을 켜 깨우는 타입이다. 엄마와 아빠와의 깨우는 온도차에 둘째는 금방 적응했지만 큰 아이는 불만을 터트렸다. 결국 울먹이는 아이를 보며 신랑에게 말했다. 그렇게 깨우지 말아 달라고.
초등학교 4학년때인가 5학년때인가 엄마는 새벽 5시 반이면 우리 자매를 깨웠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일어나." 하며 바로 방 불을 켰다. 당시 각각의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나와 동생은 형광등 공격으로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엄마는 바로 나에게 다가와 이불을 걷었다. 한 번에 일어나지 못하면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 때문에 이불을 더 놓을 수 없었다. 그 뒤 엄마는 동생을 깨웠다. 그렇게 억지로 일어난 우리 자매는 아파트 뒷 산에 올라갔다. 부지런하게 살아야 성공할 수 있고 우리를 성공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던 엄마는 우리를 산으로 이끌었다.
정말 싫었다. 산에 올라갈 때는. 가끔은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는 어른이 계셔서 뿌듯한 날도 있었지만 그 기분은 아주 잠깐이었다. 내려가는 언덕길을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엄마는 깨울 때마다 언니라는 이유로 늘 나부터 깨웠다. 아무리 언니라고 하지만 동생과 겨우 1년 차이일 뿐 평소 동생은 나를 언니 대접도 하지 않았고 장녀라는 이유로 엄마 아빠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받으며 잔소리만 더 많이 듣는 것 같은데 왜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먼저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대들지 못했다. 왜 나부터 깨우냐고, 나 진짜 일어나기 싫다고 말할 법도 한데 말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왜 꼭 나부터 깨웠어?"
"네가 한 번에 일어나지를 않으니까. 네 동생은 깨우면 곧 잘 일어났는데 너는 그러지를 못했으니까."
엄마는 야무진 동생에 비해 나를 못 미더워했다. 아마도 잠에서 깨는 시간이 동생보다 더 걸리니까 나를 먼저 깨운 것 같은데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동생 깨우데 걸리는 시간에는 이불속에서 버틸 수 있으니 일어나지 않은 것인데.
어릴 때 이런 기억 때문에 아이들을 깨울 때는 기분 좋게 깨우려고 노력한다. 이야기를 틀어주거나 간지럼을 태우거나.(아이들이 간지럼을 크게 타는 편이 아니라 가능하다. 만약 간지럼을 심하게 타는 아이라면 이 방법은 추천하지 않는다.) 다른 날보다 잠에서 깨지 못하는 날이면 아침으로 식빵을 구워 코 앞에 갖다 대면 아이들은 코를 킁킁 거리며 일어난다. 큰 아이가 짜증 반 울먹임 반이 섞인 목소리로 엄마가 깨워야 일어날 거라고 말한 뒤부터는 신랑에게 아이들을 깨우는 것은 내가 하겠다고 했다. 신랑은 아이들의 기상 시간이 늦으면 학교에 늦을까 봐 염려되어 신경 써서 아이들의 방으로 향하는 것인데 큰 딸의 투정에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불부터 켜는 신랑의 모습에서 친정 엄마의 모습이 겹쳐져 말했다.
"자기야 바로 불 켜면 눈부셔서 애들이 힘들어하잖아."
"바로 못 일어나니까. 일어나서 준비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잖아."
"햇살이는 아침에 일어나는 거 힘들어하니까 시간 텀을 두고 2번 정도 깨우면 일어나. 나 어릴 때 엄마가 그렇게 깨웠는데 너무 싫었어. 불 바로 켜면 공격받는 것처럼 기분이 안 좋아."
아이를 키우면서 예전에 생각하지 못한 불만이 자꾸 나온다. 대부분 엄마 아빠에게 갖는 원망과 미련이다. 거기에 억울함도 한 스푼 더 해서. 내 자식을 키우면서 어릴 때 몸과 함께 자라지 못한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철없는 아이에 머물러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