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격이 문제인 건가
지난 일요일 아이들과 함께 외할머니댁으로 향했다. 사정이 있어 아이들만 데리고 저녁만 먹고 오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이모들과의 수다가 즐거워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친척 동생도 볼 겸 이야기도 더 나눌 겸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막내 이모 집으로 향했다.
나에게는 총 4명의 이모가 있다. 그중 셋째, 넷째 이모들은 다른 이모들에 비해 나이차도 적고 어릴 때 추억을 조금 더 공유해서인지 친숙하다. 이모라기보다는 나이가 좀 많은 언니들 느낌이다. 외모로도 나와 비슷해 보인다. 우리 아이들에게 '할머니'라고 불리는데 그럴 때 종종 민망할 정도로 젊어 보인다. (참고로 막내이모는 나보다 12살 많다.) 이미 마흔이 넘은 조카와 함께하는 술자리가 즐거운지 두 이모가 계속 자고 가라고 꼬셨다. 다음 날 일정이 있어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수다를 떠는 시간이 쌓일수록 내 엉덩이도 점점 무거워졌다. 결국 큰 아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마도 친척들이랑 좀 놀자!'라고 외치고 맥주를 들이켰다. (그전까지 운전 때문에 물만 마시고 있었는데 얼마나 맥주가 마시고 싶던지)
시간이 흐르면서 빈 병과 빈 캔의 개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의 이야깃거리도 급증했다. 그러다 외할아버지에 대해 각자의 추억을 말하는데 셋째 이모와 막내 이모가 외할아버지(이모의 아버지)에 관해 갖는 감정이 상반됨을 알았다. 다른 이모들보다 먼저 상경해 외할아버지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많은 막내 이모는 자신에게 연탄을 집어던지는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고 했다.
"언니들이 가끔 아빠 그립다는 말을 하는데 난 전혀 그렇지 않아."
"그래? 난 아빠가 그리울 때가 있는데."
"난 서울에 있을 때 아빠가 나한테 하던 거 보면 정말....... 아빠는 본인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어."
"그렇지. 그건."
"난 엄마한테도 이혼하라고 말했어."
"그래? 몰랐어. 그정도였어?"
아마도 막내 이모가 외할아버지와 서울에 살 때 다른 이모들은 고향에 머물러 있어 그 시간들을 함께 하지 못해 외할아버지의 거친 모습을 덜 봤던 덕분에 그리운 마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의 결론이 났다. 청자의 입장인 나는 이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동생을 떠올렸다.
동생은 아이들 방학 때 조카와 함께 우리 집을 방문하는데 옆에서 엄마와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면 어쩜 나와 저리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달리 애교스러운 말투로 농담도 던지며 "00 씨~ 밥 먹었어?" 하며 엄마 이름을 장난스럽게 부르는 동생이 조금 부러울 때가 있었다. 통화하는 동생을 부러움 반 신기함 반을 담은 눈길로 바라보다가 종종 어릴 때 이야기를 꺼낸다. 서로 대화를 해보면 동일한 기억도 있지만 서로 느끼는 감정은 다를 때가 많아 놀랄 때가 있다. 나에게는 힘들었던 시간과 감정인데 동생은 크게 개의치 않게 넘어갔다. 또 아직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들이 있는데 동생에게 털어놓으면 어른처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막내이모와 나의 성향은 결이 유사하다. 생각이 많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성적이다. 그에 반해 셋째 이모와 동생은 밝고 좀 더 시원시원하게 타인을 대하는 성격이다. 이모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자매라도 성격에 따라 부모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다르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상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과 다르게 내 성향이 키워낸 허상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도 들었다. 무엇이 맞는 것일까? 그저 '내가 소심해서 더 크게 받아들였나 보네. 엄마 아빠는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게 아닌데.' 하며 털어내야 하는 걸까? 마흔이 넘은 지금도 이런 걸로 흔들리는 것을 보면 난 여전히 크지 못한 어른이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