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훈 Sep 14. 2023

나는 글 뒤에 숨어서 살고 있습니다

Feat. 영화 '동주'

"시인이 길 원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가 한 대사다. 글 뒤에 숨어서 살 수밖에 없는 시대적인 상황과 어려움, 아픔한 말이다. 나는 영화 끝에 눈물흘렀다. 일제강점기에 나라의 권을 빼앗겨 글도  당당히 쓰지 못한 현실안타깝고 절망스러워 쓴 말에 눈물이 났을지도 모른다.


영화 동주의 한 장면에서 '별 헤는 밤' 윤동주 시가 흘러나왔다. 옥중에 윤동주가 작은 철창을 바라보며 별과 하늘이 보이는 그의 시를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단순히 학창 시절에 읽었던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언젠가 나는 글은 단순히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을 글로 옮겨 본들 그것은 단지 글뿐이라고 여겨졌다. 글을 잘 몰라서, 글이 삶이 되고 삶이 글이 되는 거야 하는데, 내 삶은 언젠가부터 정체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바쁜 일상을 살다가 하는 일없이 글을 적게 되고 막연히 적어간 글이 글뿐이라는 것이 나를 더 힘들게 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결혼 생활을 하며 삶을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 힘들다 하는데, 나는 나 자신 하나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어 글토해고 토로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나는 일을 하고 바삐 안산 것도 아닌데, 현재 나는 글 뒤에 숨어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니 씁쓸했다.


삶을 치열하게 살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해나가며 이상을 다가 현실치여 삶을 도피하듯 살았다. 결국 나의 아픔을 인지 못하고, 힘들고 어렵게 산 내 탓과 남의 탓으로 글을 적어 내려갔다.


삶은 나 뜻대로 되지 않는 다던 누군가의 말처럼, 이 글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부유한 환경에 자라 풍족해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아직도 철없는 나 자신을 볼 때면 한 없이 부끄럽게여겨진다.


가을이다. 윤동주 시인이 썼던 '별 헤는 밤'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별 혜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1941. 11. 5.)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쓰려면 사전이 필요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