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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Sep 18. 2023

권태 없는 삶이 어디 있어요

나는 삶이 복잡하고 어렵게만 생각됐다. 20대에는 결혼과 직업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서 내 모습조차 모르고 있다가 방황의 시기를 갖었다. 나는 누구이며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말이다.


삶에는 무언가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벗어나면 무언가 새로운 것이 또 나타날 것만 같은 것 말이다. 어느 날 수도회의 한 수사님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삶은 단순하다네." 난 그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나는 복잡한 삶에서 일탈을 감행해서 또 다른 꿈을 꾸고자 했다. 그때의 난 나의 상황을 알 수도 없었다.


영화 '변함없는 자들의 마을'에서 50대 중년 남자의 권태로운 삶을 다룬다. 나는 결혼은 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면 생계를 위해 일을 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부터 가끔 해방되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부부간만이 아니라 자녀가 있게 된다면, 책임이 뒤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한 친구들은 대부분 젊은 시기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나 일을 하면서 삶을 살았다. 결혼 초반을 지나 10년 가까이 생활을 하면서 이들은 대부분 어린 자녀가 있어 생계를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많아졌다. 언젠가 결혼한 친구를 만나면 대부분 집에서 아내에게 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테면, 아내에게 못 받은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모습 말이다. 또 결혼한 친구는 만약의 전제 조건을 걸면서, "만약 내가 너라면" 뭘 하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


난 그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저렇게 말을 할까 싶었는데, 결혼을 안 한 나로서는 잘은 모르겠지만, 결혼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로 인해 나로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많아서 저런가 보다 싶었다. 결혼을 안 할 때는 막연한 결혼에 대한 환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막상 결혼하고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들은 '가정 봉사'를 하고 있어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살아가도 가끔 권태가 온다. 반복되는 일상이 가끔은 지루하게 여겨지는데, 매일 먹는 음식이 질릴 때가 있고, 살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귀찮을 때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삶이 지루해서 누워 있을 때가 있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가끔 외로울 때는 결혼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그들도 쌓인 스트레스를 슬며시 늘어놓을 때도 있지만, 결국 헤어질 때는 집으로 재빨리 사라진다.


그런 모습을 보면 결혼 생활을 한 친구들은 소속된 가정과 자녀를 위해 봉사를 하지만, 또 봉사에 뒤따르는 보람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때도 있다. 난 혼자 살아가면서도 권태를 느끼는데, 가정을 갖고 있는 친구를 보면 권태기가 없을 수 없겠구나 싶다. 어쩌면 권태는 내가 나로 살 수 없다기보다는 새로움을 잊어 먹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삶을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열정적이고 긍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친다. 그로 인해 나도 건강함을 되찾게 된다. 어제 뉴스에서 80넘으신 할머니가 한글로 랩을 하신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글을 못 배운 응어리가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나도 그렇다. 지금 나의 답답함이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줄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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