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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Sep 28. 2023

여성은 남성보다 말을 더 잘한다

이틀 전 병원에 들러 약을 타러 갔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3시 반쯤 병원에 도착하니 어르신이 많이 계셨다. 이 병원은 어르신이 많이 오는 병원인데, 그날따라 추석 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이 많았다. 어신 중에도 할머니가 많았는데, 난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앞열에는 할머니가 자리를 잡고 계셨다. 80대 정도 되시는 분이 앞뒤에 앉아서 무슨 말씀인지는 몰라도 계속 말을 하고 계셨다. 난 빨리 병원에 가서 약을 타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사람이 많아 대기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단념하고 티브이를 보다가, 광고판에 '형광펜으로 쓰인 코로나 후유증 회복 주사' 글씨를 보았다. 비용은 6만 원부터 11만 원까지 다양했다. 아무래도 어르신이 많아서 그런지 병원에서도 다양한 홍보를 하는구나 싶었다. 간호사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간간히 할아버지가 보이셨는데, 할아버지들은 간호사에게 몇 마디 궁금한 점만 물어보고 지시에 의해 나가셨다. 그런데 할머니들은 달랐다. 병원에 들어선 지 20분째가 다되어가는데, A할머니는 병원 도착 후부터 끊임없이 말을 하고 계셨다.


무슨 말일까 싶어서 귀를 열고 들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들은 다 모르는 분들이셨는데, 자신의 차례가 되기 전에 그냥 말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난 개인적으로 좀 웃겼다. 모르는 사람이랑 저렇게 끊임없이 대화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A할머니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손녀 뻘 간호사에게 "언니야 나 접수됐나"라는 말을 하셨다. 난 '언니? 간호사 손녀뻘인데, 언니라니 이게 무슨 말이지' 다. 간호사는 늘 있는 일처럼 '좀 기다리세요'라고 말했다. A할머니는 앞에 계신 B할머니에게  "이 병원이 약이 잘 듣는다"면서 얘기를 하시다가 B할머니가 진료를 받으러 가셨다.


이어 다음 C할머니가 오셨는데, 이분은 좀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한다. 60정도로 보이시는데, A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가시면서 "내가 무릎이 한 30년 정도 아펐는데 말이야" 하시며 말씀을 하셨다. 난 '무릎도 30년 아프다'는 그 말씀이 약간의 허세 아닌 허세로 들렸다. 아픔도 오래가면 허세될 수가 있구나 싶었다. 듣고 있던 C할머니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묻자, A할머니는 "? 86세 호랑이띠"라며 운동무지하게 한다면서 자신의 말씀을 이어가셨다. 듣고 있던 C할머니는 입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는 사라지셨다.


A할머니는 아직도 자신의 차례가 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그래도 아까 전보다는 병원에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는 지루하셨는지 간호사에게 직접 가셔서, "언니야, 나 당검사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며 물으셨다. 간호사는 "그건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세요" 하고 마루리 졌다. A할머니는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언니야, 오래 기다야 돼?" 묻자, 간호사는 "" 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몇 분뒤 A할머니 성함이 들렸다. A할머니는 "고마워. 아이고아이고 힘들다." 하시며 끝까지 자신의 말을 하시고 진료실로 들어가셨다.


 기다리기 지루해서 할머니 말을 들으며 글을 적었다. A할머니는 화장까지 하시고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가시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100세 시대라 그런지 할머니는 병원이 놀이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분과 두루자신의 말을 하시고, 병원에 와서 약도 챙겨가시고 하는 모습말이다. 30분간 기다렸는데, A할머니가 30분 동안 쉬지 않고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끊임없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병원진료실로 들어갔는데 모르는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난 진료를 보면서 묻고 답하는데 2분 정도 시간이 걸리고 나왔다. 병원을 빠져나와 난 약국입구에 서있었는데, 한 할머니가 반대편 문에 들오더니 내 앞을 지나가시면서 혼잣말로 "아이고 내가 문을 잘 못 나갔네" 하셨다. 혼자서도 말씀을 잘하신다. 약국 10분을 대기하고 약사선생님도 여성분이셨는데, 친절하게 설명을 하셨다.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재빨리 나왔다.


병원에 가서 진료 보는데 2분, 약타는데 1분, 총 3분 안에 끝나는데, 대기 시간만 총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할머니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의 말을 하는 것도 어쩌면 좋은 일일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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