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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Oct 02. 2023

누가 나를 사랑해 주는가

방구조를 바꿨다. 10개월 전쯤 방의 배치도를 그리고 사용해 보니 나름 회장방 같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그도 그럴 것이 문을 열면 내가 의자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난 그 공간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고군분투중었다. 겨울과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 어느덧 가을이 왔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시간만  아닌지 싶은 생각을 하허송세월 보내는 건 아닌가 싶다. 추석 연휴라 며칠 전 지인과 술자리로 하루를 누워 보냈다. 지인은 1년 전부터 회사에서 승진 후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급구 사 오지 말라고 톡으로 대화를 했는데, 다 내려와서 지인의  무거운 사과를 들고 오니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다시 올라가야 했다. 무거운 선물을 들고 오는 사람에게 뭐라 말할 수도 없, 아무래도 지인이 오기 전에 하는 일이 많아서 신경을 쓰다 보니 허리에 힘이 들어가 아팠다.  맞춰주다 보니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풀어대는 얘기만 하 지인을 만나면 힘들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면 기분만 상할 테니 말이다. 사람이 그렇다.


다음 날, 늘을 보니 어디를 고 싶은 씨다. 그 고민을 하느니 며칠 전부터 방을 정리하겠다고 생각해서 책상과 책장을 옮겼다. 지난번 허리를 다쳐서 안 그래도 무리하지 않고 살살 옮겼다. 배치도대로 옮겼지만, 어딘가 어색해서 책장을 책상 옆으로 옮기고 옷걸이를 그 옆에 두었다. 이부자리는 그 맞은편에 배치해 안정감이 생겼다. 옮기면서 방 먼지를 닦아 내고, 책상 정리와 먼지를  내니 1시간이 흘렀다. 눈이 퀭하다 싶어 허리를 숙이다가 그만 허리에 통증이 왔다. 기분이 찝찝했다.


 다리에 베개를 대고 누워서 창문에 비친 하늘을 봤다. 그러다 잠이 들다 내 코 고는 소리에 깼다. 30분 잤을까 하늘은 여전히 맑았고 해는 이제 일찍 저문다. 넷플릭스를 틀어 시리즈 드라마를 선택해서 봤는데, 재미가 별로 없다. 몸을 살살 굴리는데도, 통증이 있어 기분이 별로였다. 얼음찜질을 하고 좀 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방에서 씨름하지 말고, 좋은 날 나갔다 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방구조를 바꾼다고 쓸 때 없이 힘을 뺐으니 말이다. 어머니가 성당에 다녀오시고 식사를 하시길래, 같이 나가서 한술을 떴다. 허리가 아프다 했더니 조금 무리하면 그렇다며 며칠 전 지인이 사 온 과일박스를 들다가 이런 일이 생겼다면서 "누구 탓이겠냐며 내 탓이지"라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쉬다 보니, 내 자격지심에 상대를 맞추다몇 개월 전부터 지인을 만나면 힘이 들었다. 예전 학교 절에는 술 한잔하고 노는 것이 좋았는데, 이제는 내가 힘에 부쳐 지인과 장단 맞추기가 힘이 들었다. 서로 입장과 시기가 달라 함께하기가 쉽지 않았다. 카톡으로 몇 주뒤에 갈 여행도 못 간다고 말을 했다. 가면 지인이 돈계산을 매번 다해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다. 지인은 밤늦게 전화가 왔다. 예전에는 돌려서 얘기를 했는데, 허리가 아파서 더 돌려 얘기는 쉽지 않아 다음에 보자고 했다.


몇 년 전, 가정이 있는 친구들은 나를 만나면 허리가 아프다 말이 떠올랐다. 20대처럼 혈기왕성하게 놀 때는 생각을 못했는데, 몇 년 전 나는 학업을 중도에 아파서 마쳤다. 그리고 친구를 불러 나의 힘듦과 예전 기분을 떠올리며 연신 연락을 했다. 외롭고 힘든 마음에 내 기분에 연락을 했지만, 가정 있는 친구들은 허리가 아프다는 그 말 조금 알 것 같다. 이제 다 각자의 처지가 달라 친구여도 컨디션이 바쳐주지를 못하는 걸 느낀다.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그래서 나이가 먹으면 싫다기보다 힘이 들어서 친구도 만나기쉽지 않다 하셨다. 나이가 먹으면 자신의 얘기하기 바쁘고 서로 이해하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푸는 얘기를 하다 보니 힘이 든다는 것이다. 내 상황과 상대방의 상황이 다르니 서로를 이해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도 그렇고 친구도 지인도 만나기가 점점 쉽지 않다.


서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 함께 가는 동료가 됐는데,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가니 나도 힘이 든 것이다. 누구 탓이겠는가. 일을 그만두고 남을 맞추다 보니, 솔직하게 표현 안 한 내 탓이지. 이제는 솔직하게 내 감정을 잘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나를 사랑하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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