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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Jan 13. 2023

흰머리의 의미

 

Unsplash의Siarhei Plashchynski


언젠가부턴가 흰머리가 생겼다. 대수롭지 않게만 여겨졌던 흰머리가 하나둘씩 생기더니, 흰색 브릿지 염색이라도 한 듯 싶다. 흰머리가 주는 개인적인 메시지는 아마도 나이가 드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의 하나 아닐까 싶다. 나이 든다는 것은 때론 서글픈 일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화 현상의 하나인 흰머리는 그만큼 살아온 세월을 의미하며, 그 숱한 세월을 견뎌내 온 증거이니만큼 자긍심을 갖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흰머리의 추억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는 일을 마치시면, 티브이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시곤 하셨다. 아버지 특유의 냄새가 있었는데, 그런 아버지의 향수(鄕愁)가 좋았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둘러보시며, '리모컨'이라는 아버지의 권위를 한 껏 뽐내셨다. 강아지 한 마리처럼 아버지 옆에 붙어 있다가 제안을 하신다. "흰머리를 뽑아다오."      


흰머리 뽑기 제안 흰머리 한 개당 10원에 합의했다. 초등학생이 원한 것은 팽이와 조립식 자동차였다. 그것을 살려면 최소한 1000원에서 5000원 이상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1000개의 흰머리카락을 뽑아야 하는 결론이 나온다. 다행히도 아버지의 만류에 하루 30개로 제한을 두었다. 아버지의 젊음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바치리라는 각오로 시작했다. 또 나의 팽이와 자동차를 위해서.

   

아버지는 잠이 드셨고, 식사 시간이 다되어 일어나셨다. 아버지는 일어나서 300원 치의 흰머리카락을 보면서, ‘이러다가 대머리 되겠다..’ 하시면서 나의 열정을 식혀 주셨다. 아직 장난감을 살려면 더 뽑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아버지는 늘어가는 흰머리가 야속하기도 했을 것이다. 또, 당신의 흰머리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젊음 앞에서는 그 어떤 돈과 명예와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흰머리는 자신의 삶에 노력의 대가(代價)이다. 그만큼 삶의 무게를 견디어 가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무는 나이가 먹으면, '나이테'로 그 나무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그 수많은 세월 동안 견디어낸 나무의 웅장함을 보면서 겸손함을 배우듯, 우리네 부모님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늘어가는 흰머리 앞에서 세월의 야속함보다는 자신이 그 세월 속에서 그만큼 견디어 낸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줄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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