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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미 Oct 17. 2020

두 시간 안에 돌아올게

시간의 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다섯 명의 가족이 함께 생활한 집이었기에, 혼자 있는 공간과 시간이 절실했다. 방문을 닫고 공부라도 하려고 하면 거실에서 티브이 보는 소리, 엄마 전화하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그렇게 어릴 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게 되는 공간의 대부분이 독서실이나 도서관이었다. 근데 또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독서실에서 공부해서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주변의 어떤 것도 시야에서 보이지 않도록, 숨 쉬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도록 만든 조용한 환경이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가는 거리여도 시험 준비를 할 때는 동네에서 제일 큰 중앙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은 크고 넓고 적당한 소음이 있어서 좋았다.

아무튼 그 시절의 영향인지 혼자 있고 싶을 때 집이 아닌 공간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그중에서도 적당한 소음이 있는, 사람들이 시야에 보이는 공간을 찾았다.


임신했을 때 육아를 떠올리며 걱정한 부분이 집에만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까 하는 것이었다. 하루를 쪼개서 활용하는 걸 좋아하고, 하루하루가 다르고 조금이라도 새롭거나 자극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물론 출산 후 산욕기라고 불리는 6주 동안은 체력도 돌아오지 않고 정신도 어딘가 멍하기에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아기가 밤에 길게 자지 않고 육아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는 시간들로 하루가 훌쩍 가기 때문에 어떤 생각조차 할 틈이 없다. 그러다가 아기가 울 때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인 나를 제외하고 남편이나 가끔 와주시는 시어머니가 있다면 그때부터 다른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 품에 오면 아기가 울지 않고 잘 잠드는 것을 남편과 시어머니가 부러워할 때, 적극적으로 자세를 잡아주면서 잘할 수 있도록 북돋았다(내겐 계획이 다 있었다^^).


그렇게 첫 외출의 가능성이 보이는 날이 찾아왔다. 생각보다 비교적 빨리. 아직은 컨디션이 완벽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뭐든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다 보면 컨디션도 외출의 스킬도 늘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외출을 위해 며칠 전부터 속으로 스케줄링을 열심히 했다. 언제 나가는 것이 좋을지부터 생각했다. 평일에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왔을 때가 나을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아기를 돌봐줄 주말이 나을지, 시어머니가 오셔서 남편과 함께 봐 주실 때가 나을지, 계획이 확실히 설 때까지 열심히 구상했다. 그리고 다음엔 무엇을 할지를 생각했다. 친구를 만나는 게 나을지, 오랜만에 사무실에 들를지,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지. 짬나는 시간이 생겼을 때 무엇을 해야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며칠 정도는 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지를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몰입해서 일이든 공부든 해야 할 때가 늘 있는데, 그 시기를 버티려면 틈틈이 놀거나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지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지금 하는 메인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난 더 열심히 짬을 만들고 일하는 것만큼이나 몰입해서 그 시간을 즐겨왔다.

육아에서도 이 습관을 잘 활용하면 육아를 하면서 스스로 지치는 것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때 짬을 내는 시간은 육아를 하기 전의 삶에서보다는 현저히 짧다. 근데 여기서 이 시기에 긴 시간까지 바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가기 전에 나갈 계획을 세울 때부터 이미 기분이 들뜬상태가 되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한 계획대로 집 밖으로 나가는 기회를 만들었다. 외출 시간으로 두 시간을 예상하고 며칠 전부터 생각나던 카페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기에게 “엄마 두 시간만 다녀올게”라고 안심시키고 집을 나섰다(알아들을 시기는 당연히 아니지만). 카페까지 가는데 30분, 도착해서 주문도 하기 전에 걸려온 업무 전화에 30분을 썼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1시간이 흐른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속상하지는 않았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짧게 있으려고 나온 것인지 허무해했을 수 있는데, 그저 밖에 나와서 집 안에서의 시간과는 다르게 집중하고 있는 사실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도 카페에 와서 혼자 보낸 시간은 많았지만 그때는 시간의 유한함을 요즘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한참 떨 때 우리 30분만 수다를 떠는 거야,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정신없이 수다를 즐기다 보니 “벌써 두 시간이 흘렀네”라고 알게 되는 경우가 보통이니까. 그런데 이제는 시간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할 뿐, 시간의 총량에 얽매이지 않을 것 같다. 두 시간의 외출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아기도 엄마를 기다려줄 수 있을만한 시간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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