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거나 질병을 겪게 되면 인간의 행복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변하는, 너무나 단순한 이 3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라도 무너지는 순간,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수술 이후, 나는 처음으로 '먹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한 기적인지를 알게 되었다. 일시적인 장애로 인해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못한다는 의미 뿐만이 아니었다. 음식 한 숟가락, 물 한 모금이 목을 통과하는 그 과정이 이토록 많은 근육과 신경, 타이밍, 그리고 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수술 직후, 음식을 삼키려고 입에 넣으면 계속 사레가 들렸다. 기침이 나오려는데 수술 부위를 자극할까 봐 참아야 했다. 수술 부위가 터질 수 있으니 재채기도 하지 말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한 모금의 물이 폐로 들어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물 마시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그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 속을 맴돌았다.
예전엔 먹는 게 내 삶의 즐거움이었다. 좋은 식당을 찾아다니고,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졌고, 그 맛을 느끼는 순간이 하루를 위로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즐거움이 공포로 바뀌었다. 목을 통과하는 순간의 고통, 그리고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이, 가장 두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게 되었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이 평범한 행위들이 사실은 얼마나 기적 같은 일들인지.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말을 나누는 모든 순간이 얼마나 정교한 시스템의 조화로 이루어지는지를 말이다.
그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삶의 균형이 무너진다. 그리고 우리는 무너지고 나서야, 그제서야 깨닫는다. 평소의 '당연함'이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말이다.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생리적 행위가 아니다. 그건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느낀다'는 감각이며, '행복하다'는 가장 본질적인 표현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물을 마실 때마다 긴장한다. 혹시나 물이 폐로 넘어가지는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이 작은 한 모금이 주는 감사함과 축복을 느끼며 물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일상의 행복은 거창한 성취에서 오지 않는다. 몸이 허락해주는 순간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그게 진짜 행복의 시작이다.
천천히 물 한 모금을 삼킨다. 목을 지나 가슴으로 내려가는 그 짧은 순간, 이토록 복잡한 인체가 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조용히 감사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렇게 단순하고도 위대한 일이다.